온다 리쿠

논픽션? 난 그 말 싫어요.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고 주장해도, 사람이 쓴 것 중에 논픽션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저 눈에 보이는 픽션이 있을 뿐이죠. 눈에 보이는 것조차 거짓말을 해요. 귀에 들리는 것도, 손에 만져지는 것도. 존재하는 허구와 존재하지 않는 허구, 그 정도의 차이라고 생각해요.([유지니아], 23쪽)

01
지난달에 읽은 미야베 미유키(미미)의 [이유]와 최근에 읽은 안드레아 마리아 셴켈의 [살인의 마을 탄뇌드]가 떠올랐다. 물론 작품 발표순으로는 [이유], [유지니아], [살인의 마을 탄뇌드]지만. 세 작품 모두 살인 사건을 소재로 다루고 있고, 사건과 관련 있는 사람들의 인터뷰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인터뷰와 여러 명의 3인칭 화자를 통한 전개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도 대체로 비슷하다. 하지만 셋은 확실히 다르다.

각각의 작품을 퍼즐에 비유하면 좀 쉬울 듯. [이유]는, 첨엔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는 내용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도대체 이 조각은 왜 있을까 싶은데, 나중에 보니 가장 중요한 조각이거나, 꼭 필요했거나 싶은 조각이었단 걸 깨닫는다. [살인자의 마을 탄뇌드]도 이와 비슷하다. [이유]와 [탄뇌드]의 차이라면, [이유]가 중간 즈음 가면 범인을 예측할 수 있는 단서를 주지만, [탄뇌드]는 마지막에 가서야 범인이 누굴까를 알 수 있는 단서를 준다(그럼에도 중간 쯤 읽으면 대충 예측할 수 있다). 아울러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를 인식하고 통찰력을 드러내는 데에 있어 미미가 좀 더 날카롭다. [탄뇌드]의 결말이 좀 진부해서 미미의 작품이 더 좋은 걸 수도 있지만. 아무려나 이 소설들에 등장하는 인터뷰와 3인칭 화자를 통한 서술은 서로 아귀가 잘 맞아, 꼭 필요한 조각들을 모았다는 느낌이고, 그래서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뭔가 깔끔한 느낌도 든다.

여기서 [유지니아]의 변별성이 나타난다. 인터뷰와 3인칭 화자를 통한 서술이 더 이상 새롭지 않음에도 이 소설이 낯선 건, 퍼즐에 들어갈 조각들 어느 하나도 정확하게 맞는 게 없기 때문이다. 사건을 알고 있거나 사건 발생 당시 마을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하지만, 각자가 기억하는 사건의 내용은 미묘하게 다르고, 그래서 서로 조금씩 다른 내용을 말한다. 각각의 퍼즐 조각들은, 분명 그 자리에 들어갈 게 맞긴 한데, 뭔가 안 맞아서 튀어나온다. 그래서 사건을 봉합할 수는 있어도 명확하게 해결할 수는 없다. 진범의 혐의가 짙은 이를 소설 초반부터 알려주지만, 그 사람이 진범이 맞는지 아닌지는 결코 알려주지 않는다. 혐의는 있어도 물증이 없기 때문에 봉합했지만, 봉합사로 꿰맨 사건은 계속해서 터지고 터진 부분에서 피가 나오기도 하고 강한 충격을 주기도 한다.

이것이 온다 리쿠의 매력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이 글을 시작하며 위에 인용한 구절처럼, 그 어떤 사건도 각자의 맥락에 따라 해석하고 기억하지, “완벽하게 객관적인 기억”이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렇지만, 이렇게 쓴 리쿠의 소설은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거나 약간의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02
최근에 번역되어 나온 두 권([메이즈]와 [클레오파트라의 꿈], 물론 곧 읽을 예정;;)을 뺀 온다 리쿠의 소설을 다 읽었다. 20권정도 되려나. [라이온 하트]는 지루해서 비추지만, 그 외엔 다들 하나같이 재밌었다. 그러며 온다 리쿠는 분명하게 이분법으로 나뉘는 걸 무척 싫어하는 구나, 랄까. 대충 이런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좋아하고.

초기 소설에 비해 비교적 최근(?) 소설에 들어오면 등장인물을 통해 여자는 이렇고 남자는 저렇고, 하는 내용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동시에 이성애 관계가 당연한 것처럼 얘기하는 구절들이 꽤나 나온다. 사실 이런 구절들을 접한 당장엔 꽤나 당황했다. 초기작품만 해도 이런 경향이 거의 없었는데 이 사람 왜 이러나, 싶었다. 하지만 조금만 유의해서 읽으면 이런 식의 말들이 분명하게 나뉘는 이분법을 흔들기 위한 방법임을 알 수 있다. 일테면 [흑과 다의 환상]이 그러하다. 주인공들은 여자는 이렇고 남자는 저렇고, 이성애 관계가 당연해 란 식의 말이나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들 개개인의 성격은 이런 식으로 분명하게 나뉘지 않으며 자신의 말과 모순이 되는 행동을 한다. 이성애 관계 역시, 규범적으로 이성애관계가 당연하다고 믿지만 비이성애 관계를 맺는 이들이 등장하고, 이를 알면서도 이런 관계가 문제라기보다는 강한 질투를 표현할 ‘뿐’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분법과 통념에 따른 설명은 작품 속에 너무 잘 묻어가는 느낌을 주지만, 이는 이런 이분법과 통념이 있음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이런 저자의 고민이 [유지니아]에서 정점을 이룬다. (최근작이라서 이렇게 표현한 것 뿐.) 물론 더 최근에 쓴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은 이런 식의 구분에서 좀 더 벗어나긴 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 아직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서사에 익숙하단 점에서 [유지니아]에 한 표. 흐흐. 사실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을 신인 작가거나 처음으로 자신의 작품을 출판사에 투고하는 작가가 쓴 작품이라면 출판이 가능했을까 싶다는;;;

아무려나 이런 고민을 이렇게 흥미롭게 표현하는 작가가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간성, intersex, hermaphrodite

어떤 책에 들어갈 용어설명으로 쓴 글. 그 책엔 이걸 어느 정도 요약해서 사용할 예정. 무식함을 자랑하고, 욕먹을 내용도 많지만, 그래도 관련한 내용이 인터넷으로도 퍼지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공개. 문제제기와 지적은 언제나 환영해요. 🙂

#글을 보면, 내가 수학을 공부했다는 티가 너무 난다. -_-;;

간성(혹은 양성구유, 어지자지, 남녀추니, 반음양, “사방지” 등으로도 알려진)이란 말을 들어본 사람들이라면, 한 개인이 “남성과 여성의 성적 기관과 특질을 모두 지니고 있는 이들”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이미지가 아주 잘못된 건 아니지만, 이는 간성을 상당히 제한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한 개인의 몸에 고환(정소)과 난소가 모두 있고, 2차 성징을 거치며 “여성적 특질”과 “남성적 특질”을 모두 지니는 이들은, 의학적으로 진성 양성구유(true hermaphrodite)라고 부른다. 하지만 진성 양성구유는 간성 인구 중 소수이다(간성 인구 중 4% 정도라는 말도 있다). 두 개의 난소와 XX 염색체를 지녔지만 “남성적 외부성기형태”를 지닌 이들, 두 개의 정소와 XY 염색체를 지녔지만 “여성적 외부성기형태”를 지닌 이들도 많다. 그러니 난소나 정소, 염색체 형태, 외부성기형태, 2차 성징 이후 신체변화 등의 조합은 상당히 복잡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결국 “진성”이 소수라는 건, 의학에서 간성을 규정하고 이런 규정에 따라 “참/가짜”(true/pseudo)를 판별하려는 기획과 의도가 있음을 알려준다. 아울러 이른바 비-간성인 “여성”과 “남성”의 몸이라는 것, 일테면 한 “여성”이 두 개의 난소, XX 염색체, “여성형 외부성기형태”, 유방형성, 월경 경험 등을 동시에 지니는 건, 이런 다양한 조합의 한 형태일 뿐이다.

사실 한 개인을 간성으로 판정하는 방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는, 태어났을 땐 간성이 아닌 “남성”/“여성”이란 성별을 할당받았는데, 20살이 넘어 우연히 유전자 검사를 하고서야 자신이 간성임을 알게 된 이들이 적지 않다는 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성별을 판정하는 방법은 외부성기의 형태가 어떠한가에 따른다. 물론 태아의 성별을 판정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외부성기의 형태가 페니스인 것 같으면 “남성”, 페니스가 아니고 클리토리스가 있으면 “여성”으로 우선적으로 판정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이런 구분의 기준도 애매한데, 클리토리스(혹은 페니스)의 길이가 0.9㎝ 이하이면 여성으로, 페니스(혹은 클리토리스)의 길이가 2.5㎝ 이상이면 남성으로 구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이의 길이면 간성으로 판정한다. 이 말은 0.1~0.2㎝ 정도의 차이로 간성으로 판정 받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즉 간성과 비-간성을 구분하는 의학 기준이 임의적이라는 걸 의미한다. 간성에 따라선, 태어났을 땐 남자아이로 보여 남성으로 구분했는데 2차 성징이 시작하면서 유방이 발달하고 생리를 하는 이들 역시 적지 않다.

만약 아이가 태어났을 때, 간성으로 판정 받았다고 해서 그 아이가 “간성”으로 자라는 건 아니다. 외부성기 형태가 “모호”하여 여성/남성으로 판정하기 쉽지 않은 경우, 의사들은 아이가 간성으로 자라면 불행할 것이라 단정하고, 의사 임의로 혹은 부모들을 협박하여 외부성기재구성수술을 한다. 이때 부모를 설득하는 방법은 아이가 간성으로 자라면 불행할 것이다, “비정상”으로 놀림 받을 것이다, 건강에 안 좋아 일찍 죽을 것이다, 외부성기재구성수술을 하지 않으면 동성애자가 될 것이다, 등이 있다. 간성의 성별을 결정하는 건 의사의 판단에 따른다. 어느 정도 “남성형 페니스”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여성의 성기 형태로 수술하고 호적상의 성별을 여성으로 할당한다. 이는 페니스의 크기가 상당히 작은 남성으로 자라 삽입을 할 수 없으면 굉장히 불행할 것이라는 판단, 남성의 고통이 여성의 고통보다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발생하는 동성애 혐오/이성애주의와 여성혐오 뿐 아니라, 간성 개인들이 경험하는 큰 문제는 자신이 스스로 원하는 성별을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의사가 임의로 간성의 행복과 운명을 결정하고 이에 따라 살아갈 것을 강요한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이다. 아울러 많은 경우 부모와 의사는 아이에게 간성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르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많은 간성들은 자신들에게 정보를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아서 더 불행하다고 얘기한다.

간성과 관련한 또 다른 이슈는, “간성을 남성과 여성의 성적 기관과 특질을 모두 지니고 태어난다”는 설명에서 발생한다. 이런 식의 설명은, 개인은 “남성”과 “여성”으로 태어나고 아무 문제없이 자라는데, 유독 간성만 문제가 있다는 식의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생물학 교과서에는 간성을 잘못 태어나서 문제가 있는 이들로 다루며 일종의 증후군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간성을 젠더이분법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문제는, 트랜스젠더 이슈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개인은 “여성”/“남성”으로 태어나지도 않고, 호적제도가 할당하는 방식의 성별로 자라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오직 “여성”과 “남성”으로만 태어나고, 할당받은 성별대로 자랄 것이라는 인식은 간성과 트랜스젠더 모두가 곤란함/갈등으로 경험하는 지점이다.

사실 이 용어 설명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점은 ‘용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이다. 현재 한국에서 간성운동이나 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어서(순전히 내 무식과 게으름의 문제이다), 운동과 커뮤니티에서 용어를 어떻게 사용할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 운동의 경우,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는, 단체이름을 통해 성전환자가 아니라 트랜스젠더를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간성운동에선 양성구유를 사용할지 간성을 사용할지 혹은 지금 내가 모르는 다른 용어를 사용할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니 지금 사용하고 있는 간성이란 말은 임시로 사용하는 것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간성과 intersex를 대응하고, 양성구유와 hermaphrodite(헤르메스Hermes와 아프로디테Aphrodite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이름이 어원이다)를 대응하는 것도 논쟁적이다. 이는 향후 지속적으로 고민할 사항이기도 하다. [루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