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졸려서 커피를 탔는데, 커피를 타고 나서 잠이 온다는 사실을 까먹었다. 텀블러엔 다 식은 커피가 남아있다.

요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환상과 현실이라는 구분을 비트는 내용의 소설과 추리소설을 주로 읽는 편이다(많이 읽었다거나 잘 안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고). 작가는 대부분 일본어를 자국어로 쓰는 사람들. 그래서 위시리스트엔 관련 소설이 잔뜩 들어있다. 심지어 [판타스틱]이란 잡지를 정기구독 할까, 하는 고민을 진지하게 하고 있을 정도. 지금까지 정기구독을 해서 받은 잡지가 없다시피 하니, 요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알만하다. 지금까지 트랜스/젠더 이론, 퀴어 이론, 페미니즘 등과 관련 있는 책을 주로 사서 읽었고, 선생님은 영문학 전공인데, 석사논문주제로 일본(추리/환상)소설과 관련해서 쓴다고 하면 사람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일까? 혹은 ‘루인스럽다’고 반응 할까?(‘루인스러운’ 게 뭔지는 모르지만.) 물론 농담이다. 아무려나 요 몇 년간 못 읽은 소설을 부담 없이 읽으니, 여러 가지로 많은 자극을 받고 있다. 기쁘기도 하고.

교보에서 놀다가, 주제 사라마구의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가 나왔더라. 이 작가도 읽기 시작하면 쉽게 놓을 수 없는데. 그래도 기대 중. 아울러 벌써 오래 전에 읽겠다고 제본해선 읽을 시기를 가늠하던 [바이센테니얼 맨]을 시작했다. 물론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이번 주가 가장 바쁜 시기면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일도 별로 없다. 띄엄띄엄 읽겠지만 시작부터 흥미롭다.

공격

아멜리 노통브, [공격], 김민정 옮김, 열린책들

카지모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독자들은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불쌍하니까…. 그는 너무나 못생겼다. 독자는 그를 불쌍히 여긴다. 희생자로 운명지어진 그를.
카지모도가 에스메랄다에게 홀딱 반하는 장면에서 독자는 미녀 에스메랄다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을 것이다. “그를 사랑해야 해! 얼마나 착한 사람인데! 겉모습만 보고 지레 겁먹지 말라니까!”
상당히 괜찮은 생각이다. 하지만 왜 에스메랄다한테만 올바른 태도를 요구하는 걸까? 카지모도한테도 그래야 하는 것 아닐까? 사실 그는 여자의 겉모습에만 관심을 갖지 않았던가? 우리는 그가 겉모습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인물이라고 알고 있다. 그렇다는 그는 이 빠진 노파와 사랑에 빠져야 마땅하다. 그래야 그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되지.
그런데 그가 마음에 품은 것은 누구든 반할 수밖에 없는 어여쁜 집시 처녀다. 그런데도 이 꼽추 사내의 영혼이 순수하다고?
단언하건대 그의 영혼은 더럽고 천박하다. 나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내가 바로 카지모도니까.
(p.10-11)

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난 세상에서 가장 못생겼지. 그게 바로 우리가 서로를 위해 태어났다는 증거야. 나는 네 아름다움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고, 넌 내 추함으로만 더럽혀질 수 있으니까. 난 타고난 추접스러움 때문에 괴로워하는 인간쓰레기, 이런 나 없이 넌 타고난 순수함에 희생된 인간 천사에 지나지 않아.
(p.157)

글만큼 육체적인 건 없어.
(p.169)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 때의 고통스러움. 고백하는 순간 헤어질 수밖에 없음을 알기에 고백할 수 없음의 고통들.’

노통브 식의 “미녀와 야수”를 읽다가, 이런 고민을 했다. 이런 내용이 없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노통브의 어떤 소설들은 읽는 것 자체가 좀 끔찍하거나 힘든 경우가 있다. 내용이 아니라 기술하는 방식이 끔찍해서. 이 소설도 좀 그렇다. 그래도 “글만큼 육체적인 건 없어.”란 구절은 무척 좋다.

아무려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읽은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