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스타샤

가난해도
달콤한 나의 나스타샤를 사랑해서,
잠시 잠깐 망각한다.

이틀을 내리 잠만 잤다. 아니, 종종 잠에서 깨어 밥도 먹었고, 인터넷도 잠깐잠깐 했다. 책은 거의 안 읽었고, 그저 매트리스 우에서, 이불 안에서 뒹굴뒹굴 빈둥빈둥. 오늘 아침엔 허리가 아파 잠에서 깨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 불안할 것 같았지만, 별로 그렇지도 않았다. 어젠 너무 잤는지 밤에 잠이 안 왔고, 책도 조금 읽었다. 옛날 철학자들은 참 잘 살았구나, 그래, 역시 돈이 많거나 계급이 돼야 사색을 할 여유도 생기는 거야, 라고 궁시렁 거렸다. 여전히 졸려, 눈을 몇 번이나 비비며 책을 읽다가 다시 잠들었다. 6시 조금 넘은 시간, 손석희의 목소리를 들으며 깨어났고, 이틀 동안 듣지 않은 라디오를 들으니 반갑다. (손석희도 무한도전 팬임이 틀림없다. 흐흐.)

연말과 연초라는 건 없다. 나의 휴가는 끝났고, 오늘부터 하기로 한 일을 시작하고 있다. 워크샵을 준비해야 하고, 다음 주부터 있을 세미나도 준비해야 한다. 읽고 싶은 책도 읽어야 하고, 활동에 지장 없을 그런 알바도 구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나스타샤.
허스키하면서도 달콤한.

주절주절

아무려나, 알바는 끝났다. 총 40분짜리 테이프 30(+1)개. 물론 혼자서 다 한 건 절대 아니다. 혼자선 결코 할 수 없는 분량이니까. 처음엔 하나 푸는데 하루 걸렸고;; 속도가 붙고 익숙해지자 이틀에 세 개를 풀 수 있었고, 마지막엔 하루에 두 개를 풀 수 있었다. 눈이 빨갛게 충혈 상태인데도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본 거지. 아무튼, 저의 하청인들도, 수고하셨어요. 흐흐흐 ;;;

며칠 간 휴식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월요일, 화요일은 玄牝에서 뒹굴 예정. 이불 속에서 밍기적 거리는 거 좀 해보려고. 걱정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정도. -_-;;

마지막 학기 성적이 떴고, 예상 이상의 점수가 나왔다. 물론, 이제까지의 학점에 비추면 평범한 점수지만 -_-v 그래도 이런 점수가 나올 거란 예상을 안 했기에 조금 놀랐다. 그저, 내가 취한 형식과 주제를 설득했다는 점에 의의를 가지면 될 거 같다.

보조안경을 하나 살까 고민 중에 있다. 지금 안경이 좀 무거워서;;; 알바비가 곧 들어오니 이런 상상을 하고 있다. 우헤헤. 하지만 정말 살지는 모를 일이다. 실제 사는 것보다 이렇게 살까 말까로 고민하는 게 더 재밌으니까. 돈이 생기니 이런 저런 상상을 하지만, 결국은 생활비도 살짝 빠듯한 상황인 걸.

알바를 구하려고 궁리 중인데, 활동에 지장이 없는 알바는 어떤 게 있을까?
내년부턴 영화관에도 갈 시간이 생기겠지?

근데, 녹취알바 또 하고 싶다. -_-;;; 크크크크크크크크. 이거 은근히 중독이라니까요. (진담)

알바 이야기 2

그때 그 배우들이라는 게 그 뭐 동시녹음이라는 걸 그렇게 깊이 (고개를 가로 저으며) 갈망하고 뭐 그런. 그러나 우리가 영화 질적으로 볼 적엔 동시녹음이 필요한데. 그럼 아니 열 개, 스무 개, 열다섯 개 이렇게 밤낮 겹치기 출연하는데 무슨 동시녹음을 하나. 언제 대본을 읽어, 언제 외워가지고. 그래 그 사람들이 바라는 건 아닐 거 아냐. 글쎄 그건 몰르겠, 본인들 소신은 난 몰르겠지만은 배우들 입장에서는 {예} 거 한두 편이라도 많이 하는 게, 동시녹음 시간 끌면서 그걸 원하겠어? 그러나 그 뭐 작품이 팔리지 않고, 뭐 예를 들어 ㅇㅇㅂ이 같은 사람. {예} 그 뭐 동시녹음 원했겠지. {예} 팔리진 않고 {예} 자기가 성우출신이고 뭐 해야 된다, 왜 동시녹음 안 하느냐, 해야지. 이런 주장 할 수 있겠지. 그러나 그 사람들이 잘 팔리고 바쁜데 {예} 그 동시녹음 누가 바래.

녹취알바를 한다고 하면 다들 정말 고생이라는 반응을 하는데, 사실 녹취알바가 은근히 고생이긴 하다. 녹취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스트레스가 될 정도로 간단한 일이 아니긴 하다. 이번 녹취의 경우, 인터뷰참가자가 1920~1930년대 태어난 사람들이라, 발음이 그다지 듣기 어려운 점도 있었다. 전에도 적었듯 윤문을 금지하고 있어서 “어 그 저, 뭐 무슨 그게 그러니까”란 식의 말을 그대로 다 풀어야 하는 문제도 있고.

그럼에도 녹취알바가 은근히 중독이고 재밌었다. 흐흐 -_-;; “어제 점심을 그 냥반과 먹었는데”를 “어제 그 양반과 점심 먹었는데”란 식으로 고치면 안 되는데, 한 번 들었을 때 이런 순서가 헷갈리면 몇 번을 반복해서 듣고, 종종 한 번에 순서를 정확하게 기록하면, 혼자서 괜히 뿌듯함을 느끼고. ;;; 흐흐흐.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용이 흥미로웠다. 아마, 영화와 관련해서 일을 하거나 공부하는 이들이라면(감독이건, 시나리오건, 촬영이건, 평론이건 뭐든) 정말 재밌는 알바겠다, 싶을 정도로. 1950, 1960, 1970년대 영화계의 상황과 관련한 인터뷰이고 이 시기에 촬영장비나 촬영 당시의 상황과 관련한 여러 얘기들이 나오기에, 그저 영화를 조금 좋아하는 루인도 이렇게 흥미로운데 관련 있는 이들은 얼마나 재밌을까.

위에 인용한 구절은 특히나 재밌는 부분이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가 성우들의 전성기라고 한다. 이유는 동시녹음 기자재가 없었기 때문. 동시녹음이 뭐냐면, 영화촬영소에서 배우들이 목소리를 내며 연기를 하면, 그 현장에서 바로 목소리와 주변의 소리를 녹음하는 것. 하지만 당시 녹음기사들이 동시녹음을 할 능력은 있었지만, 이를 실현할 기자재가 없었기에(동시녹음을 할 수 있는 기계인 나그라는 1970년대 중반에 들어왔다고 한다) 후시녹음을 할 수밖에 없었단다. 성우들이 더빙하는 걸 후시녹음이라고 하고.

요즘이야 영화 촬영 후 후시녹음을 해야 할 상황이 있어도 출연 배우들이 직접 후시녹음을 하지만, 그땐 전문성우들이 후시녹음을 했다고 한다. 일테면 엄앵란씨의 목소리 대부분을 전담한 성우는 고은정씨고 신성일씨의 목소리 대부분을 전담한 성우는 이창환씨고. 전문성우들의 더빙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컸는지는, 당시 출연배우들이 직접 목소리를 연기한 장면이 단 몇 컷만 있어도 영화제에서 상을 받을 수 있을 정도라는 사실을 통해 역설적으로 알 수 있다. 엄앵란씨의 경우 영화출연 11년 만에 자기 목소리를 직접 더빙을 하는 “육성연기”를 했다는 기록이 있기도 하고. 어떤 연기자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는 하는데 녹음을 하려고 마이크 앞에 서면 얼어서 한 마디도 못 했다는 말도 나온다.

위에 인용한 구절이 특히 재밌는 건, ㅇㅇㅂ씨가 인기가 별로 없고 영화에 출연을 많이 안 했기에 동시녹음이 가능했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지레짐작하길 일 년에 한두 편 했나보다, 했다. 그러며 KMDB(www.kmdb.or.kr)에서 찾아봤는데… 허허허. ㅇㅇㅂ씨는 작품 편수가 (지금 기준으론) 무척 많은 편이었다. 그래서 연도별로 세어봤는데, 어허허, 한창 출연하던 시기엔 일 년에 5~10편 정도는 꾸준히 찍은 것으로 나왔다. …응? 그러니까 일 년에 5~10편 정도를 꾸준히 찍은 건 인기가 없는? 요즘은 일 년에 두 편만 개봉에서 “많이 출연한다”, “겹치기 출연이다”, 이런 소릴 듣지 않나?

그래서 당시 유명하다는 배우들을 찾았다. 일테면 엄앵란은 한창 많이 찍을 땐, 일 년에 30편이 넘는다. 헉… 최은희씨는 2~30편씩은 아니어도 꾸준히 10편 이상은 찍었다. 그리고 신성일을 찾았는데… 허억. 한 해에 2~30편은 찍은 것도 아니다. 1968년엔 47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허걱. 하긴 이 정도 작품에 출연하려면 대사를 외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겠지. -_-;; 근데, 자기가 지금 찍고 있는 영화가 무슨 내용인지는 알았을까? 그리고 이 정도면 일주일에 한 편은 개봉을 한다는 소리고 신성일이 출연하지 않은 영화를 찾기가 어려울 상황이다. 요즘 유명한 MC들이 대여섯 개의 프로에 겹치기 출연한다고 욕을 먹는 듯한데, 참….

하지만 겹치기 출연이건 많이 출연했건 그건 별로 중요 않다. 일 년 동안 47편을 출연한 걸 확인하자, 갑자기 68년에 출연한 영화를 모두 읽고 싶다는 바람이. 흐흐흐. 이렇게 많은 작품에 출연했음에도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특성을 잘 살렸는지, 그게 궁금했다. 아니면 “신성일”이라는 어떤 캐릭터가 있어서, “신성일”이라는 캐릭터에 맞춘 영화들이 나왔으려나?

아무려나, 일 년에 대여섯 편씩 출연하는 건 무척 인기가 없었다는 의미라는 말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