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외전: 몸의 형태가 전하는 말

일전에도 적었듯, 부산에 갈 때, 혼자가지 않았다. 서울에 사는 줄 처음 안, 먼 친척을 비롯해서 몇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하는 이들 세 명과 같이 내려갔다. 그렇게 하니 기차표 가격이 무척 싸더라는;; (KTX의 동반석인가 해서, 네 명이 마주 앉을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같이 가고 싶지 않은 건, 아주 어렸을 땐 친했는지 몰라도 지금은 서먹한 사이이고, 루인은 막연하게 그 사람들에게 보수적인 면이 있다고 지레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어색한 사람들과 만나는 건 어색함 이상을 견뎌야 하기 마련.

아무튼 그렇게 먼 사촌들과 내려가는 동안, 썰렁한 얘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그런 와중에 루인의 손톱을 눈치 채기 시작했다. 이른바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 세 사람의 반응은 각기 달랐다. 일단 다들 침묵했다. 말해선 안 되는 무언가로 간주하는 건지, 말할 엄두가 안 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그런데, 놀랍게도 한 명이 집요하게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사람들의 반응은 더욱더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질문하는 사람과, 힐끔 쳐다보곤 매니큐어는 일단 무시하고 얘기를 나누는 사람, 말도 안 거는 사람. 매니큐어와 관련해서 계속 질문하는 사람은, 직접 칠했느냐, 네일아트도 자주 하느냐, 예쁘다, 내 손톱은 너무 못 생겼다, 등등의 말을 했다. 의외로 관심이 있는, 자신도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어 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이런 ‘관심’속에서 그 “질문하는 사람”은 “여자 친구 있느냐”는 질문을 했고, 없다고 하자 “네가 여자라서 그렇구나”라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그 사람의 맥락에선 농담이었지만, 이 말이 살짝 재밌다고 느꼈다. 당연히 그 사람은 루인의 이러저러한 상황들을 모르기에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한 것과 현재 “여자친구”가 없다는 이유로, 젠더를 이렇게 표현할 줄이야…. 그런 후, 지금까지 사귄 적은 있느냐고 물었는데, 이때도 없다고 했다. (현재 있는지 없는지, 지금까지 있었는지 없었는지의 실제 여부와는 무관하게 이런 자리에선 그냥 없다고 하는 게 상책이다. 아니면 여러 가지로 피곤하다.) 그러자 그 “질문하는 사람”은 “혹시 남자에 관심이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라는 질문을 했다. 이 놀랍고도 곤혹스러운 질문이라니!

놀란 건, 그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같이 내려가는 세 사람은, 상당히 보수적인 동시에 섹슈얼리티나 성적지향과 관련해선 무관심으로 지낼 거라 짐작했는데, 다른 어디서도 듣기 힘든 이런 질문을 듣다니. 그래서 상당히 놀라면서도 곤혹스러웠음에도 일단 “그렇지는 않아요”라고 답했다. (여기서 어떻게 대답하느냐가 중요하지요.)

하지만 이렇게 대답하기까지, 상당한 갈등과 곤혹스러움이 있었다. 어쩌면 “그렇지는 않아요”가 아니라 “아니다”라고 답했어야 정확한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렇지는 않아요”라는 대답도 쉽지 않았던 건, 이런 식의 부정이 단순히 “나는 게이가 아니다”만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게이가 아니다”라는 말은 “나는 규범적인 이성애 남성이다” 혹은 “비록 규범적인 젠더표현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나는 이성애 남성이다”란 의미를 내포한다. 예전에 이런 저런 방식의 설명이 귀찮기도 했고, 한창 고민을 하고 있던 상황이어서, 그냥 “비이성애자”라고만 말했던 적이 있다. 놀랍게도(놀라는 것이 이상한 건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비이성애자”란 말을 곧 “게이남성”으로만 해석했고, 그래서 나의 위치를 “게이남성”으로 고정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레즈비언이나 레즈비언 트랜스일 가능성을 언급한 사람은 없었다. (어떤 사람은, “저, 트랜스예요”라고 말하자, 게이남성을 설명할 때 나를 지칭하기도 했다. 물론, “모든 트랜스젠더는 이성애자”란 식의 언설이 지배적인 상황에선, 게이남성이나 트랜스여성이나 차이가 없어지는 지점이 있긴 하다-_-;;)

의미가 유사하다는 점에서 “남자에게 관심이 있느냐?”란 질문을 “너는 게이냐?”란 질문으로 바꿀 수 있고, 대답이 결국 “예” 아니면 “아니오”로 수렴되기 마련이란 점에서 곤혹스러웠다. “그렇지는 않다”라는 말은, 나의 비이성애적 상황, 퀴어인 상황, 비이성애 트랜스인 상황들이 모두 지우기 때문이다. “그렇지는 않다”라는 말은, 트랜스젠더로서의 상황이나 레즈비언으로서의 상황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게이남성”으로서의 상황만을 부인한 것임에도, 이 모든 것을 다 부인하고 “규범적인 이성애 남성”으로 나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차라리 침묵을 택하는 것보다 더 곤란한 갈등을 일으켰다.

물론 이런 갈등은, 그 상황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항상 경험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경험은 아니었다. 그저 이런 상황을 극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이럴 때마다, 낯설게 내 몸의 상황을 깨닫는 동시에, 몸의 형태가 그 사람의 무엇을 알려주는지 다시 한 번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추가)

공부를 그만 둬야 하나?
학제에서의 공부를 계속해도 되나?
내게 학제에서 공부할 능력이 있긴 하나?

요즘 들어 부쩍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 예전엔 박사과정을 밟고 싶었지만, 지금은 석사학위 논문도 의심스럽다. 공부 자체는 즐겁지만, 학제에서의 공부는, 잘 모르겠다. 시간이 흐를수록 의심만 쌓여간다.

+
주변에 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다들 알다시피 고시란 게 중독과 같다. 그래서 조금만 더 하면, 한 해 만 더 하면 될 것 같다는 자기 암시를 하다가, 어느새 10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 고시나 공부나 중독과 같다. 조금만 더 하면 되겠지, 하면서 끝없는 자기 암시와 자기 위로 사이에서 반복하다보면 몇 년, 몇 십 년, 금방 흘러간다. 이른바 희망중독이다.

어떤 웹툰에 보면, 오아시스를 몇 미터 앞두고 포기하는 내용이 있다. 예전엔 벼룩과 코끼리 이야기를 쓴 적도 있다. 재능이 있고 그래서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되는데, 마지막 단계에서 포기하거나, 스스로 재능이 없을 거라고 믿으며 애초에 포기해서 결국 이루지 못 한다는 내용.

내게, 스스로를 냉정하기 판단한다는 건 언제나 불가능하다. 희망중독과 자포자기를 반복할 뿐. 재능이 있다고 해서 아무런 노력 없이 깨달을 수 있다는 것도 아니고, 노력을 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것도 아니다. 비극은 여기서 출발하겠지.

요즘 나의 처지가, 고시공부를 하는 사람 같다. 그저 하면 되겠지, 하는 막연함, 자신의 길을 찾지 못 하고 학비와 책값을 들이붓고 있는 신세. 그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 대가가 너무 커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도 쉽지 않다. 계속해서 뭔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입하는 사회에서, 뭔가를 하지 않고 그저 지내고 싶다는 바람은 시대착오적인 망상이거나 “시대낙오자, 패배자”의 변명일 뿐이다. 이런 사회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기도 쉽지 않고 하기도 쉽지 않다. 그저 무수한 낙방을 경험하면서도 또 준비하는 고시준비생 같다.

그러면서도 조금만 더 하면, “오아시스”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중독에 빠진다. 어쩌면 “그 오아시스”는 없는지도 모른다. 이 길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오아시스”가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계속해서 걷고 있는 희망중독. 이렇게 포기하지 말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되겠지, 하는 희망중독. “하면 된다”, “노력하면 된다”라는 새마을운동의 구호에 너무도 익숙한 건가, 싶기도 하다.

불안불안하다. 이런 불안을 견디며 지속하는 거라고, 믿고 싶지만, 이런 믿음마저 의심스럽다.

자아검색 ?

사이트는 selfsearch.co.kr/

이 자아검색 사이트를 소개하려는 건 아니고, 결과를 소개하는 방식이 무척 흥미로워서.

학과 사무실 겸 연구실 컴퓨터의 즐겨찾기에 “나는 누굴까 자아검색”이라는 사이트가 있었다. 뭔가 싶어서 그냥 들어가 봤고, 이런 건 또 그냥 지나치지 못 하니, 검색을 했다. 성별을 둘 중 하나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 일단은 “여성”으로 했다. 그랬더니 이런 저런 결과와 함께 옆에 어떤 표가 나왔다.

이른바 “여성적 기질”이라는 것과 “남성적 기질”이라고 불리는 것의 분포였는데, 성별을 “여성”으로 해서 그런가 싶어서, “남성”으로도 했다. 근데 결과는 동일하다. 심지어 각종 설명글도 성별을 무시하고 있다. 성별에 따른 색깔 표시도 다르고. 오호랏?

좀 더 재밌는 건, 기질을 설명하는 그림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여성적”이 많다는 것이 곧 “수동적”이란 의미도 아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로 나온다. 아무 날짜나 하다보면 “남성적” 기질이 다수인데도 “수동적” 기질이 더 크게 나오는 경우도 있고, “여성적” 기질이 다수인데도 “능동적” 기질이 더 크게 나오는 경우도 있다.

같은 날짜라도 태어난 년도가 다르면 결과가 다르고, 성별은 큰 변수가 아니며, 혈액형도 기질에서만은 큰 변수가 아닌 듯 하다. 그럼 생년월일이 가장 큰 변수? 여러 설명글들은 자세히 안 읽어서 잘 모르겠지만, 이런 설명에선 조금씩 달라지려나?

이러나저러나 “능동적” 50%에 “수동적” 50%니 결국 우유부단한 성격이란 의미겠죠? 흐흐흐. (무척 찔림.;;)

다른 분들은 결과가 어떻게 나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