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2008.01.17. 14:30, 아트레온 1관 지하3층 G-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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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레온 지하 1층에 “프리 존”이라고 컴퓨터도 공짜로 사용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에 음식점이 들어서서 아쉬웠다. 비록 사용한 적은 한 번 뿐이지만 공짜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좋았는데.

02
일단 기대치를 낮추자, 통속적인 그래서 너무도 ‘현실’적인 상황들에 눈물이 났다. 웃다 울다 하니 영화가 끝날 무렵이었다. [스위니 토드]보다는 탄탄한 구성을 갖추고 있었다. 오전에 알러지성 비염이 터져서 약을 먹고 멍한 상태였는데, 이 영화를 보는 동안은 비염약을 먹고 몽롱한 상태란 걸 잊을 수 있었으니까.

03
영화를 읽는 내내 강코치(최욱 분)가 어찌나 짜증나든지. 김혜경(김정은 분)이 감독대행으로 왔을 때, 강코치는 뒤에서 실실 비웃고 가소로운 표정으로 김혜경을 대한다. 일테면 “네가 잘하면 얼마나 잘하는지 한 번 보자.”하는 표정이다. 김혜경을 감독으로 존경할 리도 없고 감독대행으로 대할 리도 없다. 반면, 안승필(엄태웅 분)이 감독으로 오자, 표정은 180도 변한다. 깍듯이 존경하는 표정을 지으며 감독이 무슨 말을 하건 “다 옳으신 말씀입니다.”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김혜경 대신 안승필을 감독 자리에 앉히려고 할 때, 위원장이 김혜경을 감독대행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려고 이혼경력을 들먹이는데 이에 김혜경이 “남자감독이었어도 이혼이 문제가 되었겠냐.”고 따져 묻는 장면도 있다. 하지만 직접적인 말보다, 표정의 변화를 통해 젠더에 따라 태도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생생하게 드러내는 장면들이, 이 영화가 지닌 미덕의 하나라고 느꼈다. 여러 상황들(젠더, 인종, 나이, 장애, 성적지향, 학벌 등등)에 따른 태도의 변화는, 직접적으로 말하는 경우보다 이런 미세한 표정(물론 강코치는 너무 노골적이었지만)과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올림픽 결과를 몰랐다. 근데, 이겼다면 오히려 실망했을 거 같다. 물론 실제 경기에선 이기는 것이 좋았을 테지만, 영화라는 맥락에선 이기고 지고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스위니 토드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 2008.01.17. 15:00 아트레온 2관 3층 G-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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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인근에 있는 백화점의 식품관에 갔다가 델리카트슨이란 이름의 정육점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정육점 이름을 델리카트슨으로 지은 사람은 영화를 봤을까? 영화 [델리카트슨 사람들]을 읽은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영화엔 정육점이 나온다. 하지만 정육점에서 파는 고기는 다름 아니라 사람고기. 그 건물에 처음 오는 사람이나 나이든 사람을 죽여서 고기로 팔고, 그 건물에 사는 사람들은 인육인 줄 알면서도 사 먹는다. 정육점의 이름을 지은 사람은 이걸 알고 있었을까? 인육처럼 맛있다는 의미일까?

[스위니 토드]를 읽으며, [델리카트슨 사람들]이 떠올랐다. 분위기도 대충 비슷하고 어떤 상황들도 비슷하다. 물론 결말은 전혀 다르지만. 고어영화를 싫어하진 않으니 나쁘진 않았지만 종종 긴장감이 떨어졌고 끔찍하거나 섬뜩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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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화된 모습들이 상당히 거슬리지만, “거지”(루시. 이름을 쓰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의 존재는 매력적이다. 지저분하다는 런던보다 더 지저분한 존재로 취급받으며, 마을 사람들에게 문전박대 받고, 그래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여겨진다. 사건을 예고하지만 “거지”라는 상황으로 예고는 헛소리가 되고, 살아있지만 죽은 것과 같다. 살아있는 죽음이 죽어가는 죽음으로 변하는 건 예기치 않은 순간에 발생하고.

“거지”(혹은 루시)는, 예언을 할 수 있지만 누구도 그 예언을 믿지 않는 저주에 걸린 카산드라 같고, 자신의 주장을 통해 죽을 수도 있지만 지배규범의 한계를 명징하게 드러내는 안티고네 같다. 동시에 이 영화가 전개하는 이야기의 종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중심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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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반에 토드가 이발사 시절에 사용하던 면도칼을 다시 손에 쥐자 “드디어 나는 완전해 졌다”란 의미의 말을 한다(대충 이와 비슷한 말을 하는데 정확하겐 기억이 안 나서;;). 이 말이 재밌었다. 면도칼이라는 별도의 기계를 몸에 지닐 때에야 완전함을 획득할 수 있다는 건, 토드가 사이보그일 수도 있는 가능성을 연다. 물론 영화의 맥락에서 이 말은, 오랜 세월 이발사로 살아왔다는 점에서의 편안함, 복수의 다짐이자 출발을 의미하는 말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유기체와 무기물의 결합을 통해 완전함을 획득한다는 점에서 토드는 사이보그일 수도 있다. (뭔가 좀 다른 얘기를 쓰려고 했는데, 정리가 안 되어서 생략.)

+
오랜만에 영화를 접하니, 정리가 쉽지 않다. 적응 기간이 필요해.;;

나름 사진 공개;;;

며칠 전 한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간단한 대담에 참가한 적이 있다. 대담이니 혼자는 아니고 다른 몇 명의 사람들과. LGBTQ와 관련한 수다를 떠는 자리였는데, 기사에 사진이 필요해서 사진도 몇 장 찍어야 했다.

사진을 찍을 때 사진기자에게 말한 조건은, 아직 가족에겐 말하지 않았으니 가급적 얼굴이 덜 나가는 방향으로 찍었으면 한다, 였다. 일테면 장난치면서 손을 흔들다 우연히 얼굴을 가린 사진을 싣는 방식으로. 그리고 어제 밤, 그 기사가 인터넷으로 처음 공개되었는데… 이럴 수가… -_-;; 얼굴이 대놓고 나오는 사진들만 실렸다. 그것도 댑따 크게. 인터넷은 그렇다 치고 아침에 신문을 사서 확인했더니, 사진이 좀 작게 나왔다. 그렇다고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고. 아는 사람은 딱 알아볼 수 있게 나왔다. -_-;;

그렇다고 사진기자에게 뭐라고 따지고 싶지는 않은데(귀찮아서;;), 고민은 나의 어떤 상황들(레즈비언 트랜스라는)을 설명하지 않은 사람들이, 설명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이 그 기사를 보고 반응을 할 때, 어떻게 할까, 이다. ;; 아, 귀찮고 피곤하다. 가족들이 이걸 보곤 연락하면 또 어떻게 할까, 하는 고민도 동시에 하고 있다.

물론, 내가 인지하는 범위 내에서 가족들 중에 그 신문을 볼 사람은 없다(문득, 확신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세상일은 모르니까. 즉, 내가 공중파 방송(일테면 MBC뉴스데스크)에 얼굴을 내도 가족이나 친족들은 전혀 모를 수 있는가 하면, 정말 누구도 안 볼 것 같은 곳에 얼굴을 냈는데 모든 가족과 친족들이 다 봤을 수도 있다는 거. 그러니 이건 우연의 문제일 뿐이다.

가장 우려하는 상황은 가족이나 친족들이 모두 알고 나선, 호적에서 판다고 하면 그건 괜찮은데, 또 한 번 뒷덜미 붙잡혀 부산으로 끌려가는 경우. 크크크. -_-;;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거.

이러나저러나 피곤하고 귀찮은 일인 건 확실하다.

아무튼 살짝 긴장하고 있다. 이 긴장을 즐기는 건지도 모르지만.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