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

하지만 사실 그 시간에 잠을 자고 있었던 건 아니다. 12시 30분까지만 읽고 자야지, 했던 책을 새벽 2시까지 읽고 있었다. -_-;; 흐흐. 그래도 밤 11시에서 아침 6시 사이에 오는 문자나 전화는 너무 싫다.

R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내가 늘 내색하지 않고 R의 표정을 살피고 있다는 것을, R은 눈치 채고 있을까. 내가 R이 말을 할 때마다 뭔가 힌트를 얻으려고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고 머리를 굴린다는 사실을. 겉으로는 너무나 평화롭고 지루한 날들! 그러나 그런 날들 뒤에서, 나는 숨이 막힐 것 같다. (16)

행복이라는 것은 얼마나 그로테스크한가. (301)

그 사람은 꼼짝 않고 그곳에 서 있다. 돌아보길 원하는지, 그대로 있길 원하는지, 내 존재를 눈치 채길 원하는지, 무시하길 원하는지. 내 마음은 왠지 절망으로 가득 차고, 절망이 몰고 온 둔한 통증을 끊임없이 견뎌낸다. (314)

잠 든 시간에 오는 문자나 전화

부산에서 혈연가족들과 살던 시절, 집에 있는 전화기는 말 그대로 집전화였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핸드폰도 생겼지만, 누가 받을 지 알 수 없는 그런 집전화만 있었다. 혼자 살지 않는 사람의 집에 전화를 한다는 건, 누가 받을지 알 수 없는 일이기에 어떤 예의 같은 게 있었다. 일테면 밤 9시 즈음부터 아침 8시 즈음까진 전화를 하지 않는 것. 이건 일종의 암묵적인 약속이자, 부모님들의 반응에 기인했다. 밤 9시 넘어서, 혹은 아침 8시도 안 된 시간에 누군가의 전화가 오면, “이 시간에 누가 전화를 하냐”는 말을 하며 전화를 받으셨다. 물론 이럴 경우, 상당히 긴급하거나 꽤나 중요한 내용이 대부분이었고.

돌이켜보면 이런 경험들이 몸 깊숙이 새겨져 있는 것 같다. 학교로 서울에 와야 했을 때, 사실 핸드폰은 사고 싶지 않았다. 그저 “핸드폰이 없으면 알바를 못 구한다”는 협박에 핸드폰을 사긴 했지만 번호를 알려준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렇게 몇 명이 핸드폰 번호를 알던 시절이었나. 밤 9시가 넘은 시간에 전화가 왔다. 지금에야 이 시간에 전화가 오는 것 즈음 별거 아니지만, 그땐 깜짝 놀랐고 속으로 ‘아니, 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전화람.’이라고 궁시렁거렸다. 부산 집에서 20년간 살며 몸에 익은 반응들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집전화는 몰라도 핸드폰으로 밤 9시에 전화하는 게 드문 일이 아니란 사실에 익숙해지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고, 여전히 낯설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가 정말, 밤 11시부터 아침 6시 사이에 전화건 문자건, 핸드폰으로 연락하는 걸 엄청나게 싫어하는 건, 이런 체화된 경험들 때문만이 아니다. 실제 몇 시에 잠들고 몇 시에 일어 나는지와는 별도로 이 시간은 “공식적으로” 잠든 시간이다. 자는 시간이라서 문제가 아니라, 한 번 잠에서 깨면 다시 잠들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렇게 중간에 한 번 깨면 그 효과와 스트레스가 며칠을 지속하는 편이다. 일테면 중간에 한 번 깨면, 다음날 하루 종일 졸린다거나 며칠 동안 멍한 상태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더군다나 그 연락이 그렇게 늦은 시간에 해야 할 만큼 급한 내용도 아닐 때, 스트레스는 더 심하고, 그 시간에 내가 자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그랬다면, 종종 짜증도 밀려온다. 무슨 일을 해야 한다거나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식의 내용일 경우, 연락을 받고 바로 확인을 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스트레스로 일 자체를 아예 안 하는 경우도 많다.

이 글도 며칠 전에 늦은 시간에 온 몇 통의 문자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쓰고 있다. -_-;; 12시 넘어서 온 문자까지는 그렇다고 해도 새벽 1시 반 즈음에 문자를 보낸다는 건, 정말이지…. 어제부터 스트레스를 잔뜩 받고 있는데, 스팸으로 등록할까, 수신거부를 할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번엔 그냥 넘어가도 나중엔 진짜 실행할 지도 모른다. 문제라면 스팸이나 수신거부 번호로 등록했을 때 나중에 취소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거.;;; 크크크

불안정한 수입

그 해 마지막 날 정산을 하니 연봉이 3,000만 원인 사람이나 1,000만 원인 사람보다 1,500만 원인 사람의 생활이 더 불안정하고 빈곤할 수 있다. 1,500만 원을 번 사람의 씀씀이 헤프지 않을 때에도 이런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어느 실험에선가, 엄마 쥐와 아기 쥐를 같이 살게 하는 세 개의 조를 만들고 먹이를 주는데, 첫 번째 조엔 매일 먹기에도 남을 정도의 양을 주었다. 두 번째 조엔 혼자 먹기에도 빠듯한 양을 준다. 세 번째 조엔 먹이를 주긴 주는데, 양이 일정하지 않아 어떤 날은 너무 많이 주고 어떤 날은 너무 적게 주며, 며칠 계속해서 주다가 또 며칠은 안 주는 패턴을 유지했다고 한다. 이것은 이런 패턴이 양육과 정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밝히려고 진행한 아주 잔인하고 잔혹한 실험이다. 결과는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조는 그런대로 잘 지냈다고 하지만, 세 번째 조는 그렇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한 해 연봉이 1,500만 원인 사람이 1,000만 원인 사람보다 더 불안정한 삶일 수 있는 이유로 이걸 말하고 싶다. 어찌어찌하여 올 해 총 수입은 1,500만 원인데 내년도의 총 수입도 이러할 지는 예측할 수 없는 생활. 약간의 여유자금이 생기자, 더 빈곤하다고 느낀 건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하는 고민을 했다.
+그렇다고 나의 수입이 1,500이란 의미는 아니고;;; 한 해 수입의 총액이 1,000만 원 만 되어도 좋겠다. ㅠ_ㅠ

이번 달을 끝으로 조교 알바비를 더 이상 받지 않는다. 물론 많은 금액은 아니었기에 조교 알바비로 생활을 지속하기엔 부족했다. 하지만 지난 2년 간 꾸준히 들어왔기에 다음 달에 최소한 얼마의 수입은 있다는 어떤 확실성은 있었는데, 이젠 그런 게 없다. 이걸 서서히 좀 더 분명하게 체감할수록 약간의 여유자금이 생겨도 안심이 안 된다. 며칠을 더 살 수 있는 여유자금이란 느낌이 아니라 불안정한 수입 상태를 대변하고 증명하고 있다는 느낌뿐이다.

그러고 보면 재밌는 거. 혈연가족들과 사는 사람이(생계를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일 때) 자취하는 사람들에게, “자취를 할까 고민 중이다”라고 말을 하면 대부분이 말리는 거 같다. 나 역시 말릴 거 같다. 지출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혈연가족과 살 때는 충분할 수도 있는 한 달 생활비가 자취를 하는 순간 방값으로도 부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취하는 사람들에게 혈연가족들과 다시 살 수 있을 것이냐고 물을 때, 적어도 나는 부정적이다(오프라인에서 접하는 사람들 대부분도 부정적인 거 같더라는). 으으으.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정도랄까. 흐흐흐.

그나저나 몇 년을 상근자처럼 활동한 활동가들은 생계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
약간 딴 소리일 수도 있는데, 지금 알바로 풀고 있는 녹취파일의 내용은 흥미진진하다. 무려 부동산경매와 관련한 것이다! -_-;; 크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