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작업을 한 책이 새롭게 나왔다. 하지만 다 무슨 소용인가. 당장 생활비가 빠듯하거나 없어서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이런 작업이 나온다고 다 무슨 소용인가.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큰 일인데 공부를 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 최근 몇 달째 식비를 살 돈이 없어서 곤란을 겪고(다행히 E느님이 도와줬지만)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논의를 고민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란 고민을 한다. 그래서 기본소득이니 뭐니 여러 논의가 등장하지만 그런 논의에 동의하고 지지하는 것과는 별개로 당장 먹고 살 일이 문제인데 다 무슨 소용인가.
이론적 논의가 현실과 상관없는 소리란 뜻이 아니다. 어떤 이론적 논의를 전개하기 위해선 당장 내 생활 자체가 유지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어렵다면 어떻게 현실을 설명할 이론적 작업, 언어 모색 작업을 진행할 수 있을까?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매달 갚아야 하는 빚이 상당하고 공과금에 교통비가 상당하다. 그런데 그런 비용을 지급하고 나면 먹고 사는 문제가 위태로워진다.
[트랜스젠더의 역사: 현대 미국 트랜스젠더 운동의 이론, 역사, 정치]란 책이 다른 트랜스젠더퀴어에게 어떤 상상력을 제공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하지만 당장 내가 먹고 사는 일엔 어떤 도움이 안 되는 상황에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다. 적잖은 예술가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고집하다가 죽음을 선택하거나 죽음으로 이끌렸다. 나는 죽음이 삶에서 중요하고 가치 있는 선택지 중 하나라고 고민하지만, 만약 지금은 죽음을 선택지로 염두에 두지 않겠지만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더 많은 급여를 주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 나은 걸까? 때로 진지하게 이런 고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