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어쩔 수 없나보다. 조금 불안한 느낌들이 몸에 머물러 있는 거.

길을 걷다가 갑자기 가방을 열고 지갑이 있는지 확인하기 일쑤고, 문을 잠그고 나왔음에도 갑자기 불안해서 다시 돌아가서 확인해야 하나 망설이곤 한다. 단 한 번, 우산을 잃어버린(의도적인 망각일 수도 있었지만;;;) 적이 있긴 하지만, 그 외에 어디 가서 물건 한 번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이 불안함. 그냥 갑자기 지갑이 있는지 확인한다.

하지만 예전에도 그리고 여전히, 손에 들고 있는 지퍼파일가방을 지금 잘 챙겨들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며 불안해하곤 했다. 손에 들어 그 무게를 느끼고, 시각으로도 가방이 있음을 확인하면서도 지금 가방을 가지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해 불안에 빠지곤 한다.

주인집 연락을 받고, 다 괜찮았는데, 계단을 올라가며 마지막 계단에서, 호흡을 잠깐 중단했다. 어느 정도의 상태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막상 직접 확인하려니, 엄두가 안 났다. 히죽히죽, 웃으면서 玄牝으로 걸어갔는데…. 그래도 예상보다 상황이 괜찮아서 다행이라고 느꼈다. 아무려나, 대청소도 했으니 전화위복이려나.

결국 뒤늦은 해석이긴 하지만, 어떤 느낌들이 있긴 했다. “그 일”이 있기 며칠 전부터 자꾸만 뭔가 불안했다. 아침에 玄牝을 나서며 문을 잠글 때마다, 뭔가 두고 나온 것 같고 비우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자꾸 뒤통수를 당기는 느낌을 받곤 했다. 물론 이런 느낌 혹은 예감은 해석하기 나름이다. “그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뒤통수를 당기는 느낌은 그저 여느 때와 다름없는 불안으로 치부했겠지.

저축통장 하나, 비상금 한 푼 없는 삶이고 玄牝이라(정말, 玄牝엔 10원 한 장 없다-_-;; 크크) 별일 없었지만, “별일” 없었다는 말은 역설적이기도 하다. 킥킥.

문헌정리

지난 토요일부터, 토요일 저녁의 지렁이 회의를 제외하면, 계속 연구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특히나 연구실에 들어오면 玄牝으로 돌아가 때까지 외부로 안 나가는 일요일인, 어제는 계속 컴퓨터 앞이었고. 두세 시간이면 되겠거니 했던 참고문헌정리가 사흘 걸렸다. 정리할 문헌이 많아서란 의미보다는 영어워드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블로그 주소를 입력하거나 메일 주소를 입력하며 조금은 손에 익어 있던 영어타자가, 이번 기회를 통해 좀 더 빨라진 것 같기도 하다. (순전히 착각. -_-;;) 아무려나 방학이 되면 꼭 하겠다고 벼르던 두 가지 일-玄牝 대청소와 참고문헌정리-을 얼추 다 한 셈이다.

통상하는 용어로, “참고문헌정리”란 표현을 하고 있지만, 좀 더 정확하게는 현재 사무실에 있는 책들과 논문들의 목록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玄牝에 있는 책은 정리불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임… 흑흑 ㅠ_ㅠ) 게으른 루인이 이런 일을 할 계획을 세운 건 갑자기 부지런해져서는 아니고, 불편한 일들을 여러 번 겪었기 때문이다.

논문을 읽다가, 그 논문에서 참고문헌으로 사용한 “ㄱ”이란 논문이 꽤나 흥미로우면 따로 적어뒀다가 찾곤 한다. 어떤 땐 꼭 필요한 논문을 찾기도 하고. 그런데 잡지에 실렸으면 인터넷으로 다운로드가 불가능하고, 선집에 실렸으면 그 책이 품절이라 구할 수가 없는 상황일 때가 있다. 이럴 때면 무척 아쉬워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어느 날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다른 선집을 뒤적이다, 그토록 찾던 “ㄱ”이 실려 있을 때의 황당함이란. 그런데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ㄴ”이란 논문은 [가]란 책에 실려 있다고 나와 있어서 가능한 모든 곳을 검색해도 [가]란 책을 구할 수가 없는데, 우연히 [나]란 책을 뒤적이다가 “ㄴ”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일부러 처음으로 실린 판본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긴 하다.) 그러면서 현재 가지고 있는 책들과 인쇄해둔 논문을 모두 정리하기로 했다.

책 자체는 많지 않은데, 논문을 모아둔 책일 경우, 각각을 기록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일테면 한 권의 책에 15편의 논문이 실려 있다면, 총 16개의 참고문헌이 기록되는 셈인데, 이렇게 한 권을 기록하면 한 시간 정도 간단하게 지나갔다. 그러다보니 사흘이 걸렸달까. 물론 완벽하게 끝난 건 아니다. 일테면, 40~50편의 논문이 실린 책 몇 권은 그냥 책 제목만 기록했다. 엄두가 안 난 달까. 대신 목차만 따로 복사해서 관리하기로 했다. 그 외에도 짧은 논문이나 에세이를 모아둔 책들도 제목만 기록했다. 파일로는 있지만, 아직 인쇄를 하지 않는 자료들은 일단 통과. 다음에 인쇄를 하게 되면 그때 해야지, 현재로선 다 못 할 분량이다.

이렇게 정리를 하면서, 속으로 참 많이 비웃었다. 지금 정리한 책과 논문만(파일로 있는 것은 제외하고) 다 읽으려고 해도 1~2년은 더 걸릴 텐데, 왜 이리도 자꾸 욕심을 내고 있나 싶어서. 그래도 언젠간 읽겠지, 한다. 몇 년 전에 산 CD를 지금도 즐겁게 듣는 것처럼.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예전에 산 CD를 안 듣는 것이 아니듯, 지금 구한 자료를 꼭 지금에 읽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라고 쓰지만, 궁색한 느낌이다-_-;;

권력

한 곳에 오래 머물면, 원치 않을 때에도 그곳 사람들의 권력관계부터 내부 사정까지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나 그곳 사람들 사이에서, 권력이 누구에게 집중되어 있는지 혹은 누구의 발언권이 가장 센지를 알게 된다는 건 결코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발언권이 가장 세고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사람에게 붙게 되어서가 아니다(알면서도 찍힐 행동을 했다는… -_-;; 크크크). 어떤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걸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알게 되고, 행여 말을 했고 그리하여 당장은 효과가 발생했다 해도 결국 나중에 어떤 형태로건 후폭풍을 경험한다는 걸 알기에, 애초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 순간이 가장 슬프다.

예전에 한 수업시간에, 같은 수업을 듣던 사람이 “박사를 취득하고 모교에서 교수가 되는 로망이 있다”고 했다. 그러자 그 수업의 선생님은, 말린다고, 모교에서 교수가 안 되는 게 가장 좋다고 얘기했다. 요즘 들어, 어렴풋이 선생님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짐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