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에서 드러나는 정서

낮에 글을 한 편 쓰고 저녁에 다시 확인하고 공개로 바꿔야지, 했다. 자주는 아니어도 종종 이런 식으로 글을 공개한다. 뭔가 당장 공개하기에 꺼림칙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 글을 쓴 당시가 아니라 다른 시간에 공개하고 싶다고 느낄 때, 이런 식으로 한다. 그리고 낮에 쓴 글을 다시 읽었을 때, 섬뜩함 혹은 어떤 꺼림칙한 느낌을 받았다.
(이 글이지만 비공개라 확인할 수는 없을 듯. 그러니까 다른 글이 뜬다는 의미.)

이 정서는 무얼까. 끊임없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 정서. (정확하게 이름 붙이지 않고 막연히 “이 정서”라고만 말할 수밖에 없는) 이 정서를 읽고 싶다. 순간적이나마 등골을 훑고 지나간다는 말을 실감할 정도의 섬뜩함을 주는 이 정서. 이 정서가 낯선 것이 아니라 너무도 빈번하게 너무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고, (예측 불가능하지만) 주기적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이 정서를 드러낼 때면, 루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때론 주변 사람들에게도 상흔을 남긴다. 다른 사람들을 향한 폭력성이 아님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상흔을 남기는 이 정서. 버림받았다는 정서, 아니 버림받는 걸 유도하고 결국 그럴 줄 알았다는 정서, 나 따위 버림 받아도 마땅하다는 정서. 그런데 그게 너무 두렵다는 정서.

엘/L + 이랑

어제 학과 행사에서 있었던 두 가지 일화.

#1
옆자리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다리를 모아 웅크리고 있는 루인에게 “진짜, 엘 같다.”고 말했다.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며, 긴장. 속으로, 어떻게 알았을까?, 저 사람에게 커밍아웃을 했나?, 아님 루인도 모르는, 저 사람만 아는 어떤 레이더가 있나? 등등의 질문들이 한순간에 스쳐 지나갔다. 루인이 다니는 학과는 아닌 것 같으면서도, 말하기엔 좀 부담스러운 곳이고 그 자리는 아예 처음 만나는, 그래서 다시는 안 만날 사람도 있었다. 그 누군가는 다시 “엘 같다.”고 말했다. 루인은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조금 더듬으며 “L… 같다니?” “데쓰노트의 엘.” 아아. 낄낄. 그제야 무슨 말인지 깨달았다.

루인은 레즈비언의 L을 떠올렸고(자주 이렇게 표현하니까), 상대방은 데쓰노트란 만화의 엘을 말했고. 그제야 긴장을 푼 루인은, 엘/L의 이중적인 의미를 얘기하며 눈치 챈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순간 상대방이 당황했다.

아무려나, 조금은 슬프게도 혹은 재밌게도 루인은 데쓰노트의 엘과 비슷하단 얘길 몇 번 들었다. 따로 분장할 필요도 없이 그냥 앉아만 있으면, 그 자체로 코스프레라면서. -_-;;; 크크. (이와 관련한 지점에서 쓰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묵히고 있다. 언젠간 쓰지 않으려 해도 쓰고 싶어서 온 몸이 근질근질 하는 순간이 올 테니까, 기다려야지.)

#2
간담회에 왔던 한 사람이 루인의 이름을 어떤 잡지에서 봤다고 했다. 얘기를 나누다 그 잡지가 이랑이란 걸 알았다. 아아… 이랑을 읽고 기억하는 사람과 만나다니. 뭔가 기분이 복잡했다. 정작 이랑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엔 이랑을 안다고 하는 사람을 못 만났는데, 이제 사라지지도 않았지만 존재하지도 않는(정말, 존재하지만 부재 중인) 모임을 기억하는 사람과 만날 줄이야. 그러고 보면 예전에도 그런 적이 한 번 있다. 이랑블로그를 통해 [Run To 루인]을 알았다고.

여러 가지로 복잡하다. 아니, 좀 심란하다.

오후 2시 30분부터 4시 20분 사이, 연구실이 있는 건물 앞: 출결제도

제이콥 헤일(Jacob Hale)은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글을 쓰려는 비트랜스젠더들을 위한 글쓰기 규칙이란 제목의 글에서, 만약 어느 트랜스젠더 이론가가 당신의 글을 비판한다면 그것을 당사자주의로 여기며 비난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얘기를 한다. 그것은 당신의 글이 논의를 할 만한 의미가 있는 글이란 뜻이며, 비난하려고 리뷰를 쓸 만큼 한가하지 않다고.

여러 맥락에서 이 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느꼈다. 왜냐면, 루인의 경우, 누군가의 글을 읽다가 그 글과 관련한 비평을 하겠다고 결정하는 건(고민을 시작하는 건), 그 글이 그런 의미가 있다는 걸 의미하지, 단순히 비난하려고 글을 쓰지는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예외. 읽은 영화와 관련한 상당수의 글은 기록의 의미를 지니는 경우도 상당히 많음.] 루인이 누군가의 말에 고민을 하는 건, 그 사람의 그 말이 그 만큼 루인에게 의미가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 정도의 의미가 없다면, 루인에게 그 정도의 어떤 떨림을 주지 않는다면 대체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때론 상대방보다 루인이 더 많이 고민해서 상대방이 뜨악할 정도로;;) 그래서 인터넷 기사로 접하는 트랜스젠더 관련 기사는 거의 다 무시하기 마련이고, 댓글은 언젠가 인용해야지, 하는 정도의 목적으로 읽거나 캡쳐하지, 답글을 단다거나 일일이 기억하지는 않는다(이렇게 말하지만, 사실, 거의 다 기억하고 있다-_-;;; 켁. 흐흐). 그 만큼 한가하지도 않거니와 더 신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참, 루인이 이웃 블로거의 어떤 글에 댓글을 달지 않을 경우, 이런 이유는 절대 아니에요!!! 혹시나 오해하지 말아 줘요 ㅠ_ㅠ 블로그 글에 댓글 달기는 조금 다른 맥락이 있어요. 흑. 아, 그리고 오프라인의 만남에서도 마찬가지고요.ㅠ_ㅠ

루인은 범생이 원단에 속하는 편이라(물론 이렇게 말하면 “네가?”라며 뜨악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안다;;;) 학부 9학기를 다니며 지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결석은 5번이 안 되는 정도였는데, 이런 결석도 사자死者를 보내는 자리에 참여하기 위한 유고결석(기록상으론 결석이 아닌)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루인이 다닌 학부의 출결제도는 루인에게 그렇게 의미 있는 제도가 아니었다. 적어도 지난달까진 그랬다. 혹은 지난주까진 그랬다.

R과 루인이 다닌 학부의 출결제도와 관련한 얘기를 나누고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이와 관련한 고민이, 지금까지 학교를 다니며 간과하고 있던 많은 지점들을 다시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지점임을 깨달았다. “출결제도는 루인과 무관해”, 라는 인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니 “출결제도는 루인과 무관해”, 라는 인식조차 한 적이 없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지금껏 고민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닫고 있는 중이다. 일테면 루인은 루인이 범생이 원단이라는 식의 표현을 하면서 그 예로 바로 위에 쓴 문단에서 “학부 9학기를 다니며 지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결석은 5번이 안 되는 정도였는데, 이런 결석도 사자를 보내는 자리에 참여하기 위한 유고결석(기록상으론 결석이 아닌)을 포함하고 있다“라고 쓰고 있는데, 이는 출결의 여부가 범생이라는 이미지를 구성하는데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혹은 종종 농담처럼 말하는 “출결제도가 있어요?”라는 반문은 이런 말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할 수 있고, 이 말은 출결제도가 루인에게 얼마나 깊숙이 새겨져 있는지를 정확하게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다. 지각 몇 번에 결석 몇 번인지를 얼추 기억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루인에게 출결제도는 너무도 강력하게 작동한 제도라는 걸 의미한다.

여기에 아울러, 출결제도가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이래로 교육제도가 요구하는 방식의 몸만들기(주민등록제도와 관련한 글을 읽다보면 박정희는 이런 제도를 “몸에 익히도록 하라”고 얘기한다)의 하나임을 깨닫고 있다. 수업에 지각하면 안 된다는 느낌들, 수업을 빠지는 행동을 통해 마치 뭔가를 위반했다고 느끼는 쾌감들 모두 출결제도가 만든 효과들이다. 이런 끊임없는 반복을 통해, 제도가 제도적인 강제가 아닌 루인의 욕망인 것처럼, 루인의 의지에 따른 행동이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며 루인의 욕망으로 얘기한 셈이다. 수업을 빠지면서, 그 재미없는 수업을 빠지면서도 그것을 정당화하는 말을 자신에게 반복하고, 너무도 자주 뭔지 모를 책잡히는 느낌과 죄책감들 모두 이런 교육제도와 밀접하게 관련 있다는 걸 이제야 비로소 깨닫고 있달까. 출결제도를 통해서 학교제도를 고민한 적이 없고, 출결제도와 관련한 루인의 감정들이 어떤 역사적인 맥락 속에 있는지를 이제야 비로소 깨닫고 있다.

생생한 감정을 나눠서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