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화: 알 수 없음.

일전에 회의 자리에서 ㅇㄹ씨가 루인에게, 루인은 너무도 많은 고민들이 담겨 있는 내용들을 너무도 가벼운 농담조로, 그것도 툭 뱉는 한 마디로 말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루인의 이런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으로는 모른다해도) 느끼길 바라는 경향이 있다고. 그 지적에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이니까.

지금도 조금 불안하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다른 내용의 다른 형식인데, 그걸 에둘러 말하고, 이런 에둘러 말하기를 통해 엉뚱한 효과를 낳는 건 아닌지… 루인이 듣는 비난이나 비판이 걱정이 아니라 상대방이 느낄 불쾌함이 고민이다.

언제나 이런 식이다.

… 사실은, 갈 수록 모르겠다. 이제 조금 알 것 같다고 믿는 순간, 아무 것도 모른다는 걸 동시에 깨닫는다. 관계를 엮어가는 일이 언제나 이렇다지만… 그래도… 갈 수록 한 마디 한 마디가 더 불안하다. 매번 새롭게 알아가는 과정. 안다고 믿으려는 순간이 곧, 아무 것도 모른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기도 하다. 뭔가 알 것 같다고 믿었는데, 이미 알 것 같은 상태에 있던 그 사람은 어디에도 없고 저 만치 변한 모습으로 있다. 안다고 믿으며 말했는데, 말하고 난 순간, 반추한다. 도대체 난 무엇을 알고 있다는 건지. 어떤 맥락을 알면서, 안다고 믿고 있는 건지.

말을 엮어 가고 만들어 간다는 건, 이런 긴장을 견디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매번 낯설게 깨닫는다.

붉은 꽃

붉은 꽃 피고 진 흔적이 선명하다.

길을 걸을 때면 종종 아무 문장이나 만든다. “눈을 감으면 눈이 분시다.” 아냐, 아냐. “감은 눈 사이로 붉은 물결이 인다.” “붉게 핀 꽃이 시들며, 팔에 흔적을 남긴다.” “팔에 핀 붉은 꽃의 흔적들이, 부끄럽다.” “붉은 꽃 피고 진 흔적이, 종종 부끄럽다.” “붉은 꽃 피고 진 흔적이 선명할 때마다, 숨고 싶다.” 하지만 부끄러운 일은 아닌데. 괜히 팔을 숨긴다. 몸에 새겨진 흔적들. 누구나 자기만의 방법으로 세월을 견딘다. 시간을 견디며 몸에 새긴 흔적들, 세월을 견뎠음을 알려주는 흔적들. 붉은 꽃 피고 진 흔적은 세월 속에 색이 바래지만, 그렇다고 아주 사라지진 않는다.

허수경의 시집에서였나, 공후인이란 악기는 악기의 형태는 남아 있지만 연주법은 남아 있지 않다는 구절을 읽은 기억이 있다. 붉은 꽃 피고 진 흔적은 남아 있는데, 왜 그랬는지, 이제는 모르겠다. 왜 그랬을까. 왜.

언제나 그렇듯,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못 하기 마련이다. 에둘러, 에둘러 몇 번을 에둘러 표현을 하지만,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그렇게 하지 못한 말이 자꾸만 몸에서 맴돌면, 붉은 꽃 피고 진 흔적을 바라본다. 그러면 다 잊는다. 아니,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흐르고, 아침에 학교에 왔다는 사실이 까마득한 옛날 같다. 그러니, 지금까지 살아 왔듯, 계속 살아갈 것이다.

퇴고

딱히 수정하려는 의도가 없다고 해도 자기가 쓴 글을 다시 읽으면 문제가 있는 부분을 깨닫기 마련이다. 이건 이런 문장이 아니라 저런 문장을 써야 했고, 여기엔 이 단어 말고 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적확하고…, 이건 상당히 문제가 많은 인식이고, 등등. 그냥 읽어도 이런데 수정하겠다고 작정을 하고 읽으면 더 말해 무엇 하랴. 그래서 글을 다시 읽을 때마다 프린트한 종이엔 붉은 펜이 지나간 흔적이 가득 남는다. (이미 출판한 글을 잘 안 읽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어제 메일로 보낸 원고를 어제 오후와 오늘 아침에 다시 수정해서 메일로 발송하며 더 이상 안 고쳐야지(=책으로 나올 때까지 안 읽어야지), 라고 다짐했다. 이러다간 끝이 없겠다 싶었다. (근데 정말? 루인이 가능할까? 오늘이 인쇄소에 넘기는 날이라고 믿으면 가능해. -_-;;;) 그러며 며칠 전부터 읽다가 외면하기를 반복한 글을 붙잡았다. 며칠 전 늦은 밤에 들은 논평을 염두에 두고 다시 읽으니, 논평의 의미가 더 분명하게 다가오고 또 다른 문제들도 거슬리기 시작했다. 논평을 들을 당시엔 상당 부분을 버리고 다른 내용으로 채워야겠다고 구상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다 싶다. 그보다는 설명을 해야 함에도 하지 않고 넘어간 부분들을 채워야 한다는 걸. 그것도 루인의 맥락을 더 드러내는 방식을 통해서.

그날 그 자리에선, 기존의 글을 버리고 아예 새로운 글을 써야겠다는 말도 했다. 곧 그럴 필요는 없다는 걸 알았지만, 이런 다짐이 꽤나 중요한 효과를 낳았다. 기존의 글을 버리겠다는 다짐을 할 때, 문제점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이건 오늘 다시 발송한 글에서도 마찬가지고. 어떻게든 살려야겠다는 다짐으로 수정하는 것과 아니다 싶으면 버릴 수 있다는 다짐으로 수정하는 것의 차이려나.

우선은 간단하게 수정을 하면서 다시 한 번 읽은 상황이고, 이제 본격적인 수정에 들어가려는 찰나, 슬쩍 외면하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겠지만, 막상 하려니 선뜻 내키진 않는다. 블로그 글이 아니면 워드로는 글을 쓰지 않는/못 쓰는 루인을 살짝 원망한다. 이번 퇴고의 경우엔 워드로 해야 편한데, 또 그러지 못한다. 이 점이 부담스러워서 자꾸만 외면하고 있다. 이러나저러나 오늘 안에 수정하고 워드작업까지 마쳐야 한다. 다른 읽을거리도 밀려 있고 수정한 틀을 다시 수정해야 하기에. 목요일이 수업인데 석탄일이라 쉰다는 사실에 감사!

연구실의 창밖은 반짝반짝 빛난다. 퇴고하기 딱 좋은 날이다. 글을 쓰기도 좋은 날이고. 태양이 빛나는 시간에 주로 글을 쓰는 루인으로선 더 없이 좋은 날이다.

+
근데 사실, 영화 보러 가고 싶다. 우헤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