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꽃 피고 진 자리

아, 그랬었지.
잊고 있었어.
붉은 꽃은 유난히 점성이 강해.
둥글게 피면서 시들어가지.
시들면서 피는 꽃.
조금은 달콤하고 상쾌하면서도 비린 향을 풍겨.

몸엔 평생 붉은 꽃 피고 진 자리 남겠지.
몇 해 전 피고 진 붉은 꽃의 흔적처럼.

꽃이 피기까지, 많은 망설임도 있지.
하지만 순간이야. 망설임도 피는 순간의 쾌감도.
떨리면서도 그 떨림을 잊지 못해.
두려우면서도 그 두려움이 주는 쾌감을 잊지 못해.

몸에 붉은 꽃 피고 진 자리.

…이렇게 또 한 시절의 흔적을 그려.

루인이 싫어 하는 거 세 가지

뒷 목에 도끼를 찍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편두통
으스스 몸이 떨리면서 한기와 식은 땀을 동반하며 갑작스레 찾아오는 허기
까무라칠 것만 같은 갑작스런 졸음

너무너무 싫어하지만 불가항력처럼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하는 것 세 가지.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밀려오면 글을 읽을 수 없어서 싫어 한다.

그러니,
두통약은 언제나 필수품.
사무실이나 玄牝에 간식거리를 준비하는 것 역시 필수.
하지만 까무라칠 것만 같은 졸음 앞엔 별수 없다. 커피로도 한계가 있다.

No Pain No Gain

밥 말리는 “No Woman No Cry”란 노래를 불렀다. “여자가 없으면 울 일도 없다”란 뜻. 하지만 황병승은 이 제목을, “여자가 없으니 울지도 못 하겠네”로 슬쩍 바꿔 해석한다.

최근 이승환 9집을 듣다가 “No Pain No Gain”란 제목을 읽으며 황병승의 시가 떠올랐다. 그러며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가 아니라 “고통이 없으니 얻을 것도 없네”로 번역했다. 아아, 이렇게 번역하니 더 와 닿았다.

고통이 없으니 얻을 것도 없네. “안다는 것은 상처 받는 일이다”고 정희진선생님은 말한 적이 있다. 결국 같은 말이다.

취약함이, 상처 받고 고통 받는 일이 결국 쾌락으로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