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은 성적 지향성이 될 수 없을까.

길게 쓰고 싶지만 짧게 끝날 것 같다. 아직도 몸의 준비가 안 된 때문이다.

라디오를 듣다 보면, 짝사랑과 관련한 청취자들의 사연이나 진행자의 경험을 듣곤 한다. 대체로 그럴 때의 양상은, 과거를 회고하는 아쉬움이거나, 사랑을 이루기 위한 전단계이거나 미완의 사랑으로 설명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불만이었고, 왜 짝사랑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랑이 아닌가란 반문을 했다. 짝사랑은 미완의 사랑일까.

성적 지향성을 얘기하다보면 이성애 아니면 동성애를 얘기하기 마련이다. 이런 얘기 과정에 양성애나 무성애는 별로 얘기하지 않는 편이고 그래서 동성애 정도만 얘기해도 섹슈얼리티/성적 지향성을 모두 얘기한 것 마냥 여기기도 한다. 라디오를 들을 때와 마찬가지로, 같은 질문을 던지면, 짝사랑은?

이런 문제의식으로 글을 쓰고 싶었다. 사랑이란 것이 반드시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발생할 때만 성립 하는 것인가. 아울러, “여성”으로서 “여성”을 사랑하면 반드시 레즈비언/동성애라고 불려야 하고 “여성”으로서 “남성”을 사랑하면 반드시 이성애라고 불려야 하나? 이성애/동성애/양성애란 식의 세 가지 구분만으로 충분한가? 이런 질문들을 같이 던지고 싶었다. 어떤 사람은 17년 가까이를 한 여자를 좋아했지만 그것을 레즈비언 관계로 부르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고 이성애라거나 양성애란 의미도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은 딱히 자신의 성적 지향성을 고민한 건 아니지만 “다들 그러니까, 이성애가 당연한가보다 했지”라는 얘길 한다. 이 말이, “어쨌든 나는 이성애자야”라는 의미라기보다는 이성애/동성애/양성애라는 식의 구분으로 섹슈얼리티를 설명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며 이런 식으로 구분할 수 없는 사랑은 너무도 많다. 손쉽게 “그건 이성애야”라고 말할 때조차 그렇게 부르기 힘들 때가 있다.

짝사랑이 그랬다. 상대방이 누구인지, 상대방의 젠더 정체성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물론 개개인마다 자신이 특별히 끌리는 어떤 타입이 있겠지만, 루인이 말하고 싶은 건, 상대방의 성별이 아니라 짝사랑을 통해 겪는 그 아픔들을 하나의 섹슈얼리티로, 성적 지향성으로 설명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데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얘기하고 싶었다.

사랑하는 한 가지 형식으로서의 짝사랑이라면 이것 역시 하나의 성적 지향성일 수 있고, 이런 과정 중에서 현재의 루인을 설명하고 싶었다.

어제, 그 추운 밤, 玄牝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스팔트 도로에 주저앉아 펑펑 울 뻔 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자꾸만 웃음이 났다. 몸을 다독이고 玄牝을 향해 걸으며, “그랬구나, 그랬구나”를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그러며 아직은 이걸로 글을 쓸 때가 아님을 알았다. 아직은 몸의 준비가 안 된 상황이다. 하지만 꼭 쓰고 싶다….
+++
짝사랑은 미완인가
왜 성적 지향성을 얘기하며 짝사랑은 빠져 있는가
사랑은 반드시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만 성립 가능한가
과거를 해석하며 현재의 변한 정체성으로 인해 과거까지 반드시 바꿔야 하나
반드시 자신을 이성애/동성애/양성애 어느 하나로 편입해야 하나
“이성애가 당연한가 보다 했지”
길에서 주저 앉아 엉엉 울 뻔 했음, 그런데 자꾸만 웃음이 났다

키워드: 짝사랑, 짝사랑이라는 섹슈얼리티

잦은 두통과 갑작스런 졸음, 근황

변태고냥 J의 나비날기이소라의 “Tears”를 올리며 가사와 관련해서 빼먹은 이야기가 있다. 사실 이 노래에서 가장 좋아하지만 가장 몸 아픈 가사는 마지막 구절 “거울 속에 나 참 못생겼어“였다. 흐흐;;; 왠지 자학개그 같은 이 느낌은 뭘까;; 심지어 웃기지도 않은 이 자학은 뭘까 ‘-‘a

잦은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진통제 혹은 편두통 약을 먹는 주기가 잦아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이나 갑작스레 밀려오는 졸음도 생겼다. 안다. 온 몸이 긴장한 상태로 울음을 참지만 결국 종일 운 것 마냥 어느 순간 잠들어 버리는 것. 다음 주 월요일이 기말논문 마감인데 아직 초고도 안 썼다. 하루의 바쁜 시간을 쪼개도 모자랄 상황이지만 깨어 있는 시간의 반 즈음은 안부를 묻는데 사용하고(안부가 닿을 리 없지만) 멍하니 있기 일쑤다. 주제는 정했지만 차마 두려워 시작을 못하고 있다. 이건 마치 의사가 마취도 안 하고 제 몸을 수술하는 것과도 같은 느낌이랄까. 뭐, 그런 상황이라 대충의 개요가 있는 상황에서도 시작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

키드님의 블로그에서 “Lothringen Lorraine“란 사진을 보며 너무 좋아서 온 몸이 간질간질한데 이 느낌이 어느 순간 우울로 바뀌고 “고통 받았던 날들이 자기 인생의 최고의 날들이었다“란 구절에 위로 받고 있기도 하다. 표를 예매하기 까지는 알 수 없는 것이 미래지만 그래도 뮤즈가 온다는 사실에 너무너무 좋아하며 예전에 모은 부틀렉까지 모두 꺼내서 듣고 있다. 곧 진정하겠지만 어쩌면 공연 날까지 이틀에 한 번은 뮤즈 전작을 다 들을지도 모를 상황이다. (이 말은 변태고냥 J의 나비날기를 뮤즈로 도배할 수도 있다는 얘기;;;) 실제 이럴 경우 후유증이 심히 걱정된다. 하지만 앞날을 걱정하기엔 당장이 중요한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