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여라는 힘

통상 말하는 “치”를 결여로 말한다면, 루인은 인식치고 길치에 방향치이다. 누구라도 루인을 한 번 만 만나면 알 수 있는 강박증에 어설픈 완벽주의까지 있다. 성격이라도 둥글면 모르는데, 까칠하고 공격적이지 않으면 루인이 아니라는 얘기를 듣는다(열등감의 반증이다). 권력적인 관계에서 눈치라도 있으면 모르는데 어른들에게도 기분 나쁘면 얼굴에 고스란히 그 감정이 드러나서 혼도 많이 났다.

친구라도 많으면 다행이려니 하지만, 고등학교 때까지 새 학년이 되면 곧 그 전 학년에 알던 사람과는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고등학교 때까지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지금도 연락하는 사람은 없다. 항상 이런 식이었고 여전히 이렇게 살고 있다.

생긴 건 못 생겼고 똑똑하지도 않고 딱히 내세울 것도 없는 진부하고 흔해빠진 인간이기도 하다. 언제나 후줄근한 모습이고 지지리 궁상에 10년이 지나도 그대로일 것 같은 인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결여와 결핍이 살아가는 힘이기도 하다. 이런 모든 것들이 루인이 삶을 살아가고 세상을 바라보는 중요한 위치이기도 하다.

풍경화

예전, 한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시절, 루인은 그 동아리방에 언제나 상주하고 있는 구성원이었다. 수업을 제외하고 학교에 있는 모든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고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동아리 방에 있는 루인을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루인은 서서히 그 공간의 일부가 되어갔고 그렇게 사람들은 종종 루인을 잊어갔다. 가끔은 루인이 없으면 뭔가 이상하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렇게 루인과 그 공간이 하나의 풍경을 이루어갈 즈음, 루인은 그곳에서 떠났다. 그 이후의 소식은 루인도 모른다.

그 동아리가 루인에게 어땠냐고 물으면 양가적이다. 한편으론 좋았지만 그런 만큼이나 안 좋았다. 무엇이 좋았고 무엇이 안 좋았느냐고 물으면 잘 모르겠다. 아니다. 떠올리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몸에 향기가 없어서 누구의 기억에도 남고 싶지 않은 것처럼 이렇게 풍경이 되어 조용히 사라져도 눈치 채지 못하는 그런 존재이기도 하다. 이렇게 조용히, 안녕, 하고 싶다.

익숙할 즈음 떠나는 것, 이런 이별이 가장 좋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 문득. 언제나 그곳에 있을 거라는 믿음을 배신하는 것, 그것만큼 유쾌하고도 서글픈 것이 없다. 루인 역시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인간이다. 물론 어떤 안정적으로 기거할 공간을 바라지만 그런 만큼이나 어떤 집단에 고정적으로 소속되길 바라지 않는다. 지금까지 한 아르바이트 중 5개월이 가장 오래한 것이라면 말 다했지, 뭐. 어딘가 소속되고 그래서 관습적으로 일하는 것만큼 지겨운 일도 없고 그런 관습을 통해 평가 받는 것만큼 싫은 것도 없다. 루인은 루인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 가서, 루인과 관련한 사전 정보도 없는 그런 공간에 가서, 루인을 설득하는 걸 좋아한다. 매 순간 걱정과 두려움이 교차하지만 그런 관계가 좋다. 이미 하나의 틀로 남아버리는 순간, 루인은 그곳에서 떠나길 바란다. 일정한 위치를 점한다고 느끼는 순간,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훌쩍, 떠나는 것.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안녕, 하는 것.

(이런 맥락과는 상관없이 유학도 나쁘지 않다고 몸앓고 있다. 물론 돈이 문제이지만. 돈이 없어 결국 한국에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만. 하지만 한국에 남아 계속 공부를 한다면, 지금 이 학교엔 있지 않을 것 같다. 루인을 모르는 사람들, 완전히 새로 만나는 사람들과 관계 맺을 수 있는 그런 곳으로 갈 것 같다.)

다가갈 수록

알려고 다가갈수록, 집요하게 붙잡으려고 노력할수록 멀어진다는 사소한 사실을 잊고 있었나 보다. 알려고 할수록 혼란스럽고 모르는 것만 쌓여간다. 알 수가 없다. 현실은, 세상은, 당신은 언제나 변화무쌍하게 움직이고, 그래서 알았다고 믿는 순간 저 만치 멀어진 상태다.

너무도 빠르게 움직여서 붙잡을 수가 없어…. 그러니 따라 움직일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