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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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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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의외일 수도 있지만 루인의 봉인을 푼 건, 세상엔 오직 여성과 남성만이 있고 가끔씩 하리수 같은 사람들도 있다고 설명하는 방식으로서의 젠더를 만나고 나서다. 그 이후, 다시 만난 하리수. 젠더와 하리수가 일종의 열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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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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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는 애시당초 없었다. 애니메이션 형식을 따르자면, 열쇠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발적인 사고에 의해 봉인이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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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불안하다.

녹물처럼 몸에 고여 간다. 하지만 녹물의 색깔은 예쁘다.

주저리: gmail, 러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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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ail로 주요 메일을 바꾼 후, 갈 수록 gmail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여러 모로 사용하기 편하다. 어떤 곳에선 전달이나 pop3를 유료로 하던데 gmail은 이것도 무료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개인정보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 최고의 매력.

([Run To 루인]에 오시는 분들은 다 있을 듯 하지만, 혹시라도 gmail이 필요 하신 분은 runtoruin@gmail.com으로 메일 주세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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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일 러빈(Gayle Rubin)을 읽는 일은 언제나 꽤나 많은 시간을 요구하지만 그 만큼 많은 쾌락을 얻을 수 있다. 문장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러빈은 다른 텍스트를 읽을 때보다 1.5배 정도의 시간을 더 요구한다. 하지만 읽는 중에도, 읽고 나서도 한동안 러빈의 매력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다. “여성학을 공부하신다면 필독!” 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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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까먹었으므로 번호만… ;;;;;;;;;;;;

#참, 티스토리 입주를 원하시면 메일 주세용. ^^

미련한 루인은 미련중독…

관련 기사: “미련? 미련한 짓!

“미련”이란 단어에 혹해서 읽다가 참 차분하게 썼구나 싶다.(이 문장 미묘하게 문맥이 안 맞으면서도 말이 된다;;;) 아, 그러니까 루인은 미련탱이, 미련한 미련중독, 미련하게도 미련을 붙잡고 사는 냥이.

맨날 붙잡고선 어쩌지도 못하고 징징거리기만 한다. 하지만 미련을 떨치려는 노력 보다는 미련 자체를 직시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그래서 미련과 놀 수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물론, “그래서 네가 그 모양이야”, 라고 말하면 할 말은 없지만. 흐흐.

요즘의 고민은 이 지점이다. 고통을 피하는 것보다 고통을 직시하는 것, 고통과 노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것. 용기는 고통 속에서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고통으로 직시하고 그것이 고통임을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루인은 대책 없는 희망중독증이지만 ‘잘 될 거야’라는 희망이 아니라 현재의 고통을 잔인할 정도로 파고드는 것이 더 용기 있는 일이 아닐까…. 왜냐면 어느 순간, 이 대책 없는 희망중독이 루인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고, 고통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희망중독이라는 말은 고통중독이란 의미이고 고통을 자처하고 고통을 만들어서 스스로에게 고통을 부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몸앓이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루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다. 한편으론 루인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분석하지만 이런 분석도 언제나 일정 선에서 멈추기 마련이다. 작년 루인에게 소중한 충고를 해 준 ㅈㅎ선생님은 스스로 한계를 만든다고 지적했다. 용기를 내서 더 밀고 나아가라고 독려했다. 그리고 이후 글을 쓸 때마다 ㅈㅎ선생님의 말을 떠올리며 더 나아가려고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어느 순간 멈칫, 멈칫 망설이는 루인과 만난다. 혹은 ‘엉뚱’하게 튀어서 문제를 일으킨다.

(뭔가 글의 방향이 이상하게 흐르고 있다;;;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흐)

맨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루인에게 루인은, 언젠가, 지겹지도 않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지겹다고 하기 보다는 이런 상황이 언제나 새롭다. 그러니 어제의 미련은 어제의 상황이고 오늘의 그 미련은 어제와는 달라진 새로운 미련으로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이토록 미련한 루인은 이렇게 매일같이 새로 경험하는 미련으로 빙빙 돌고 있다. 하지만 루인은 또 이런 놀이를 좋아한다. 감정이 조금씩 변해가는 걸 관찰하는 거, 그렇게 변하는 감정이 어제완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하는 거, 이런 거. 이런 게 재밌다. 어제의 미련과 오늘의 미련이 어떻게 변해 있는지, 그래서 감정이라는 것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관찰하는 거. 그런 관찰 속에서 현재를 읽는 거. 이런 게 재밌다.

미련탱이, 미련탱이.

그리고… “일시 차단”이라는 말의 영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