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사이즈로 떠오르는 몸의 흔적들

신발을 사고, 관련 글을 적으며 재미있는 기억들이 몇 가지 떠올랐다. 그건 다름 아니라 루인의 신발사이즈에서 비롯한 일들. 20년을 넘게(라고 적으니 꼭 20대 초반 같다;;;;;;;;;;;;;) 살아오면서 발사이즈가 몇 인지를 안 건 4년도 안 되기 때문이다.

신발과 관련한 가장 재미있는 기억은 어릴 때다. 새 신발을 얻으면, 루인의 기억에서 새 신발을 산 기억은 별로 없고 새 신발을 얻어 신은 기억만 있는데, 이러다보니 얼추 루인의 발사이즈와 비슷하다 싶으면 신어야만 했다. 사실 발길이로만 따지면 별문제가 아니었다. 항상 문제는 루인의 괴팍한 성격 때문이었는데, 신발을 신으면 분명 앞부분이 남는데, 엄지손가락으로 누르면 꾸욱, 하고 들어가는데도 루인은 작다고 말했다. 케케. 엄마는 이렇게 남는데 무슨 소리냐며 화를 내셨고 루인은 발이 아프다고 생떼를 썼다. 이런 갈등은 언제나 일어났고 ps의 중재가 있어야지만 끝났다. 볼이 넓은가보다, 라는 말.

이런 갈등은 개개인의 성장 배경, 성격과도 관련 있지만 당시의(지금이라고 얼마나 달라졌겠느냐 만은) 계급적인 상황으로 비롯한 일들이기도 하다. 하위직 국가공무원 집에서 운동화를 받는다는 건 반드시 신어야 한다는 의미였다(뇌물로 받았던 것이 아니라-_-;;; 아는 사람이 신발공장을 했었다). 그런데 앞부분이 이 만큼이나 남으면서 아프다고 생떼를 쓰다니.
[공무원에 대한 몇 가지 ‘오해’. 현재의 공무원 열풍은 IMF와 밀접하고 IMF 전까지는 인기직종이 아니었다. 아빠란 사람의 태도에서도 드러나는데 IMF가 터진 이후에야 비로소 공무원이란 직업에 상당한 자부심을 드러냈었다. 안정적인 직장이고 정년 보장이 최고의 매력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시공무원과 국가공무원은 그 운영 방식에서부터 월급의 정도가 차이가 있는가보다. 루인이 어렸을 때 초코우유는 친척 분들이 놀러 와서 사줘야만 먹을 수 있는 그런 ‘비싼’ 제품에 속했다. 물론 루인은 공무원이란 직종을 싫어한다.]
그 시절엔 신발의 개념이 길이에만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당시에도 볼의 정도에 따라 같은 사이즈에도 여러 제품이 있었는데 루인에게로 온 신발만 그랬는지도 모르고. 그래서 그때부터 루인은 발사이즈보다 좀 더 큰 신발을 신기 시작했고, 헐렁한 감이 없진 않지만 어쨌든 편하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지냈다.

줄곧 운동화를 그런 사이즈로 샀다. 그러다 루인의 신발사이즈를 알게 된 계기는 4년 전 인라인스케이트를 판매하는 알바를 하면서부터.

일전에도 적었지만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휴학(심정적으론 자퇴;;;)하고 시작한 일이 대형할인마트에서의 보급형 인라인스케이트를 판매하는 일이었다. 매장에서 판매를 하다보면 인라인스케이트를 직접 타고 다니는 일이 많은데(알바의 입장에선 노는 것이고 매장관리자의 입장에선 제품 홍보 및 매출 증진의 한 방법), 잘 안 팔리는 제품을 신었을 때, 작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신을 만 한 것이었다. 그 제품은 260까지만 나오는 제품이었고 당시 루인은 270을 신고 있었다. 크큭. 인라인스케이트란 게 5mm정도 크게 신어도 괜찮다고 들었는데 260이 맞다니. 그래서 우연이겠거니 했다.

정말 알게 된 건, 인라인스케이트를 판매하는 매대 옆에 신발을 팔았는데, 신발을 사겠다고 신어보다가, 어랏, 255를 편하게 신을 수 있었다. 아니, 그렇다면 지금까지 얼마나 크게 신은 것이란 말이냐! 무디긴. 그때서야 비로소 신발사이즈가 255란 걸 깨달았지만, 흑흑흑. 루인의 몸에 드는 신발은 상당수가 240에서 250 정도가 최대란 걸. ㅠ_ㅠ

#지난 글에 사진 첨부했어요. 🙂

신발사기: 젠더로의 스트레스. 이렇게 예쁠 수도 있구나

지금까지의 관습에서 10월 달이면 조금은 쌀쌀한 날이고 그래서 샌들을 신고 다니기보다는 운동화가 무난한 시기다. 하지만, 봄, 가을이 없어지고 있다는 요즘, 아직은 샌들이 편하고 그래서 어제까지도 샌들을 신고 다녔다. 그런데 오늘 아침, 샌들을 신는데, 아무리 봐도 옷과 신발이 불화를 일으키는 느낌. 결국 운동화를 신었다. 그러며 이제는 미뤄둔, 신발을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새 운동화가 하나 필요했다. 일 년에 3켤레(겨울, 봄-가을, 여름)면 신발이 충분하지만, 한 번 사면 몇 년을 신지만, 겨울 신발은 좋아하고 여름 샌들은 그냥 그런 정도인데 반해 봄-가을용 운동화는 별로 안 예뻐서 그다지 신고 싶지 않은 스타일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새로 운동화를 하나 사야지, 하고 벼루고 있었지만, 사러갈 시간도 없고 그 과정에서 겪을 스트레스도 짜증나고 해서 미루고 있었다.

아침에는 괜찮았지만 오후에는 더운 날 겨울 운동화를 신고(그 만큼 싫어한다는 얘기), 수업 들으러 갔다가 끝나고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인근 가게를 둘러봤다. 하지만 스트레스는 예상 이상이었다.

루인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매장에 갔을 때 가장 짜증나는 건 들어가자마자 옆에 붙어선 선택하는데 간섭하는 것이다. 이게 잘 나간다, 이게 예쁘다, 이게 요즘 인기 상품이다, 어쩌고저쩌고. 단순히 옆에 서 있는 것도 싫지만 이런 식으로 개입하면 짜증이 확, 밀려오기 때문. 문제는 그렇게 추천한 상품이 몸에 들면 괜찮은데 그것도 아니기 때문. 대체로 루인이 가장 싫어하는 스타일이거나 별로 안 좋아하는 스타일인 경우가 많다. (맞다. 루인의 ‘스타일’은 유행과는 가장 무관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루인만의 어떤 스타일이 있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런 것에 무관심하게 루인이 좋아하는 것만 고집한다는, 패션이 꽝이라는 얘기. 크크.) 딱히 선호하는 스타일이나 제품을 예상하고 사러 간다기 보다는 그냥 둘러보다가 루인을 부르는 이와 만나길 좋아한다.

하지만 정말 짜증나고 쇼핑을 두렵게 하는 건, 이 신발은 “남성용”이고 이 신발은 “여성용”이라는 식으로 규정하며 제품을 구경하고 선택할 가능성 자체를 차단한다는 점. 루인이 몸에 들어서 구경하거나 살펴보고 있으면 혹은 살펴볼라치면 곧 바로 그건 루인에게 ‘부적절’하다고 ‘경고’하는 언설들이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살펴보면 분위기는 묘하게 흐르고 더 이상 그곳에 있고 싶지 않은 식으로 변한다. 루인은 이런 경험이 너무 많아서 누구나 겪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더군. 예전에 같은 수업을 듣는 사람과 샌들을 사러 갔는데, 이후 해준 말이, 제품 선정에서의 “남성/여성” 구분의 명확함을 그때야 느꼈다는 것. 매장 점원(혹은 주인)은 루인의 취향이나 선택을 완전히 무시하거나 재차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매장에 직접 가서 무언가를 산다는 건, 이렇게 끊임없는 자기 부인과 의심의 시간이기 때문에, 인터넷 주문을 더욱더 선호하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오늘도 이런 경험을 반복했다. 딱히 예쁜 건 없었지만 그래도 그냥 무난한 신발을 구경할라치면, ‘댁이?’하는 식의 말투 혹은 분위기로 대해서 울화가 치밀었다. 그러며 포기할까 하고 다른 골목으로 들어갔을 때,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법한 곳에서, 문득, 손짓하는 느낌이 들었다. 유리창 너머 신발을 구경하다가, 아아….

그랬다. 신발이 이렇게 예쁠 수도 있구나를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러니까, 무언가 장식이 있다거나 딱히 어떤 식의 디자인이 많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깔끔한 디자인에 전체적으로 검은색이고 붉은 색이 조금 들어갔는데, 이렇게 말로만 적으면 결코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매력이 있었다. 지체 없이 루인의 신발 사이즈를 요구했고 주인은 창고로 신발을 찾으러 갔다. 설레며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주인은 빈손으로 돌아왔고, 말하길, 사이즈가 250까지만 나오는 신발이라며, 그제야 조근 조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발 사이즈의 한계를 보면 알겠지만 애시 당초 ‘제한’적으로 나온 신발이다. 주인은, 그 신발은 루인이 선택할 수 없는 혹은 무슨 생각으로 이 신발을 고르느냐는 투로 말한 것이 아니라 사이즈가 그렇게 나왔다고 말했다.

그 예쁜 신발을 살 수가 없어서 아쉬웠지만, 그 가게를 그냥 나오기도 아쉬웠다. 그 가게 주인의 태도가 그랬다. 그 주변의 가게 어디를 가도 접한 적이 없는 그런 태도. 그래서 그 가게에 진열한 다른 신발을 고르는데, 한참을 봐도 안 보이더니, 포기할까 하는 순간,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흑흑흑. 물론 처음 손짓한 신발보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너무 몸에 들었다.

다행히 사이즈도 있었다. 그것도 마지막 제품! (사실 이런 경우가 많은데 앨범을 살 때면, 종종, 그것이 마지막 남은 앨범인 경우가 빈번하다. 후후.) 헤헤헤. 괜히 기분이 좋아서 설레는 기분으로 학교로 돌아왔다. 몇 년 만에 산 운동화가 몸에 든다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운동화가 이렇게 예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즐겁다. 사실은 무지무지 설레는 몸이다. 신발이 예뻐서 반할 수도 있다니! =_=

[#M_ #10.14. 추가 | 헤헤헤 |

루인은 디카가 없는 관계로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찾은 사진.
_M#]

Oh My Love

Oh my love for the first time in my life
My eyes are wide open
Oh my lover for the first time in my life
My eyes can see

(…)

I feel the sorrow, oh I feel the dreams
Everything is clear in my heart
I feel life, oh I feel love
Everything is clear in our world

문득 그 순간이 떠올랐다. 숨 막혔던 그 순간이.

첫 느낌에 반한다는 말을 믿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도 단호하게. 그래서 아무리 어긋날 것만 같은 순간이어도 만날 수밖에 없는 그런 순간이, 만남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을 믿는다. 그런 면에서 운명론자인지도 모른다. 생뚱맞게 느낄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런 말들, 운명이 있다는 말을 믿는다. 아니다. 믿는다기 보다는 부인하지 않는다.

socker님의 음악다방에 올라와 있는 노래, John Lennon의 “Oh My Love”를 들으며 고통스럽다고 느꼈다. 추석이 끝난 다음 날부터 이 노래를 듣기 시작했으니 꽤나 오래 반복해서 듣고 있는 중이다. 듣기 직전, 듣는 동안에도 얼마간의 아픔 혹은 고통을 느낀다.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은 아니지만, 글을 읽으면서 이 노래를 들었을 때, 그랬다, 몸은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존 레논이 오노 요코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을 담은 곡이라니. 그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곡의 시작부터 목소리가 나올 때까지 주변의 모든 것이 지워지고 단 한 장면만 남는 그 순간의 느낌이 고스란히 다가왔다. 그래서 고통스럽다고 느꼈다. 그래, 고통스럽다고 느끼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듣고 있다.

그 과정이 힘들 거란 걸, 고통이 따르리란 걸, 예감하고 있다는 느낌이 노래를 통해 전해져서, 자꾸만 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