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있은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의 발족식에 다녀왔다. 2013년부터 트랜스젠더 삶의 조각보 만들기 프로젝트로 시작하여 3년째인 오늘 단체로 발족했다. 기분이 묘했다. 조각보 프로젝트를 2년간 같이 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가 사라지고 나서 새로운 단체가 등장했기 때문만도 아닐 것이다. 물론 지렁이 해소가 준 복잡한 몸이 있기 때문에 무관하진 않겠지만.
발족식 후반에 참가자의 말을 듣는 시간이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 어쩐지 분위기에 맞지 않는 듯해서 관뒀다. 오래 지속되면 좋겠다, 1000년을 지속하면 좋겠다와 같은 긍정적 언어가 주를 이루는 분위기, 힘들어도 지나고 나면 괜찮다고 말하는 분위기에선 어려운 이야기였다. 다름 아니라 ‘활동을 하다가 너무 힘들고 지치면 주변의 기대와 상관없이 과감하게 해산하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말은 못 했지만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활동가 개개인이 피폐해지는 방식으로, 단체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인 상황을 그냥 유지하지 말고 그땐 과감하게 해산하라는 말을 꼭 하고 싶다.
사실 따지고 보면, 지렁이가 과감하게 해산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더 멋진 조각보란 단체가 생길 수 있었다. 새롭고 더 멋진 활동가가 새롭게 등장할 수 있었다. 이런 식의 기술이 매우 문제가 많음을 알지만 지금의 나는 이런 식으로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단체 운영과 지속 자체로 힘들고 괴로울 때 무리해서 단체를 지속하려고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때 오늘 모인 사람들이 다시 한 번 그동안 수고했다고 위로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당연히 그럴 분들인 걸 알지만. 🙂
아무려나 정말 조각보 발족을 축하해요. 발족 준비하느라 고생한 활동가 개개인 모두 고생하셨고요. 그 동안 조각보 프로젝트에 참여한 분들도요!
물론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라 축하라는 말이 적당한지 계속 고민이지만, 아무려나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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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보자기]라는 조각보 활동가의 문집이 나왔습니다. 관심 있는 분은 조각보에 문의를 하시거나 퀴어락에 방문하시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