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남쪽: 사랑이 변(색)하는 시간

2006.05.05. 아트레온 21:15, E-12 [국경의 남쪽]
※스포일러 같은 건 없을 듯. 뭐, 영화 자체에 스포일러가 없으니까.

1. 끝나서 영화관을 나서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다행이야, 라고 중얼거렸다. 우산을 쓰고 길을 걸으며 종종 울음이 나왔다. 울다보면 끝나고, 끝나고 나서도 울음이 나는 그런 영화.

2. 차승원을 좋아하는 편이다. 아니, 배우 중에선 거의 유일하게 좋아한다. 그런데 좋아하는 이유가 좀 재밌다. 차승원 영화를 모두 즐긴 것도 아니고 차승원 연기가 탁월하다고 느끼는 것도 아니다.

몇 년 전, 그때도 우울증이 심하고 별자리에 한창 빠져있던 그 때, 48가지 별자리 책[흔히 보는 12가지 별자리가 아니라 별자리를 48가지로 나눈 것]에서 루인과 같은 별자리인 사람 중 한 명으로 차승원이 나와 있었다. 차승원이란 배우에게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 이유는 오직 이것뿐이다. 뮤즈Muse의 매튜도 루인과 (48가지 중에서) 별자리가 같다. 뭐, 뮤즈는 이로 인해 더 좋아한 경우다. 그리고 뮤즈의 음악이 어떻게 변할지도 감을 잡을 수 있다.

3. 이 영화를 읽으며, 사랑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그리고 있다고 느꼈다. 너무도 사랑했지만 그것이 환상으로 자리 잡았을 때, 그리고 그 환상이 깨지기 시작할 때, 어떻게 변색하는지를 그리고 있는 영화.

오랫동안 앓고 있는 감정, 보고 싶어서 우연히 라도 만나길 갈망하면서도 결코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아 하는 감정이 떠올랐다. 그래, 그저 한 번이라도 우연히 만나길 바라고 그 만남으로 긴 공백이 만든 환상이 깨지길 바라지만 바로 이런 이유로 결코 만날 일이 없길 바라고 있다. 아니, 만났다가 더 좋아지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도 품고 있다(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났는데 못 알아보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과 아무런 감정이 안 생기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 바로 이 감정에서 영화는 떨림을 가졌다.

만나고 싶지만 만날 수 없는, 닿고 싶지만 닿을 수 없는 그 상황에서 사랑의 환상이 발생한다. 너무 사랑하는 상황에서 헤어졌고 그래서 그 사람의 모습은 더 커져있다. 그리고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라고 체념한 순간, 그 사람이 나타났다.

‘체념’이란 단어를 쓰고, 아프다고 느끼고 있다. 체념이란 포기한다는 것이 아니라 희망하지만 희망의 가능성을 무기한 연장한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당장 일어날 것 같지 않음을 깨닫고 흐르는 방향으로 흘러가며 바람을 품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결국, 체념한다는 건, 바람(바램)의 크기를 한 순간에 키웠다고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크기를 평생에 걸쳐 나누어 가지는 것이다.

이런 체념의 순간에 그 사람이 나타났고 이룰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사실 환상이 자란 자리에서 사랑이 이루어지긴 어렵다. 그 환상이 끊임없이, 지금 만나고 있는 모습과 만날 수 없는 기간 동안 만든 모습 사이에 간극을 만들고 갈등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 간극을 어떻게 매울 것인가가 관건이지만 새로 시작하지 않는 이상, 어렵다.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정말 사랑하지만 이어질 수 없음. 이어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더 사랑한다고 말하는 상황의 아이러니.

이 아이러니는 차승원이 누구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느냐 하는 장면에서 더 여실히 드러난다. 정말 사랑한다고,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에겐 “복숭아 모양”을 그릴 수밖에 없음. 하긴, 너무 사랑하면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가 어렵다. 발화하는 순간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4. 이 영화를 읽고 나오며, ‘이성애’-일부일처-가족주의가 얼마나 취약한 기반에 있는지를 느꼈다. 사진 속에선 웃고 있지만 사진 밖에선 언제든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불안을 품고 사는 삶. 한국에서 가족주의는 강하지만 가족들 간의 대화와 사랑은 별로 없듯, 그 균열지점이 이 영화에서도 나온다. 치유하지 않은 상처 혹은 버릴 수 없는 체념으로 사는 삶에서 가족이란 어떤 의미일까. 다들 이렇게 치유 받지 않은, 치유할 길이 없는 가족제도 안에서 살아가는 불안함. 가족사진을 찍을 때만 웃고 있을 뿐인 생활.

미약하나마 이 영화는 가족의 불안한 균열지점도 드러내고 있다. 잊었다고 믿고 싶은 상황에서 발생한 흔들림 혹은 균열, 바로 이 상황에서 웃고 있는 가족사진을 찍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영화의 매력엔 이 지점도 한 몫 한다.

5. 뭔가 조금은 허전하고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없지 않다. 그래서 흥행에 성공할 거란 느낌은 안 든다. 차승원이 평균 200만 명은 보증한다지만 이 영화, 과연 그 정도가 가능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루인에게 이 영화는, 재밌다. 슬퍼서 재밌다.

노스 컨츄리

2006.05.03. 20:00, 노스컨츄리North Country, 아트레온7관 F-5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았다. 정말 가고 싶었다. 읽고 싶은 영화는 잔뜩있고 할 일은 많고ㅠ_ㅠ 이런 상황에서 선택한 이 영화. 사실 너무 조용하고 너무 주목을 안 받고 있어서 안타까움을 안고 있다.

직장내 성폭력 사건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를 읽으며, 울었지만 불편함도 함께 몸에 남아 있다. 그래서 이 영화평을 쓰기가 어렵다. 한 편으론 이런 영화가 좀더 많이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과 젠더혐오(이른바 “호모포비아”)가 나오는 지점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는 갈등. 단지 “농담”이고 “은유”라는 말은, 그것이 얼마나 폭력적인 인식에 토대를 두고 있는지를 고민하지 않았을 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부분적으론 이 영화를 가끔씩 인용하겠지만, 해결과정에 개입하고 있는 젠더권력을 어떻게 읽어야 할 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묘하게 불편함을 주는 지점들 때문이다.

경합 중에 있다. 이 영화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로.

제 16회 여이연 콜로키움 : 레즈비언 관련 연구,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여이연 콜로키움이네요.
후후. 기다렸어요.
이변이 없다면 갈 것 같아요.

여기서 퍼왔어요. 훗.

레즈비언 관련 연구,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박김 수진(박통), <레즈비언권리연구소> 연구활동가

일시: 2006년 5월 12일 오후 6시
장소: 여성문화이론연구소(혜화동)

여성문화이론연구소 5월(열여섯번째) 콜로키움은 <레즈비언권리연구소> 연구활동가인 박김수진(박통)씨와 함께 합니다. 아마도 <레즈비언권리연구소> 연구․활동과 그 입장, 그리고 평소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1) 왜, 레즈비언에만 초점을 맞추는지 2) 현재 진행하고 있는 <레즈비언차별실태조사사업>, <증언집 시리즈 발간 사업> 그리고 <사이버 레즈비언 NPO 자료관> 사업이 왜 <레즈비언권리연구소>의 핵심 사업인지 3) 국내 여성학계 및 동향에 관한 개인적인 의견 그리고 여성주의와 레즈비언에 관한 개인적 의견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생각입니다.

레즈비언 관련 연구 및 주제, 활동은 언제나 페미니즘 내에서는 “넘치거나 부족한” 주제입니다. 그만큼 토론하기 어려운 주제였던 것 같습니다. 연구소 강좌에서도 레즈비언 혹은 레즈비언 페미니즘 문제를 다룬 적이 꽤 있습니다. 그때마다 가장 논란이 많았던 주제이기도 합니다. ‘논란’이 늘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늘 거기서 멈춰 버린 듯해 안타까웠습니다. 이번 콜로키움이 그 출발점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