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 역시 며칠 전 발제문으로 쓴 글의 일부. 아아, 글 한 편 써서 이렇게 여러 번 우려먹을 수 있다니 좋다-_-;;; 조금 수정한 부분도 있다.
전문은 여기로.
이와 관련해서 하리수의 의미를 얘기할 수 있다. 하리수가 등장한 초기엔 기존의 ‘여성성’을 더욱더 강화하고 있다는 점과 “여자보다 예쁜 여자”라는 반응에 불편해하며 하리수를 비판하는 분위기였다. 이후 트랜스들에게서 그럼에도 하리수가 트랜스를 가시화시켰다고 말하자 이런 비판은 줄었지만 그다지 좋은 분위기는 아니다. (루인의 느낌은 “소수자/약자에 대한 관대함”이다. 재수없어.) 루인이 느끼고 있는 하리수는 조금 다르다.
사례1. 즐겨 듣는 라디오 DJ가 하리수와의 일화를 얘기했다. 어느 날 오전, 하리수와 만났는데 목소리가 걸걸하게 나오자 그 DJ는 하리수에게 “목소리 조율이 안 됐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목소리 톤을 조정한 후 다시 얘기를 나눴다고.
사례2. 설날 우연히 TV에서 하리수와 아이비가 나오는 장면을 접했다. 사회자는 하리수에게 아이비의 노래 일부분을 해보라고 했고 하리수는 했다. 사회자는 아이비에게 하리수가 따라한 부분을 해보라고 했고, 했다. 방청객과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은 아이비에 환호를 보냈다.
종종 트랜스들의 행동은 진짜가 아니라 “어설픈 모방”이라는 비판/비난을 듣는다. 하리수를 불편하게 여기는 반응도 이것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이런 비난이나 불편함은 사실 “진짜”가 있다는 걸 전제한다. 하리수가 이성애 ‘여성성’을 “모방”하고 있다면 그건 기존의 젠더를 강화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루인에겐 협상력으로 다가온다. 기존의 (‘여성’과 ‘남성’이라는) 두 개 뿐인 젠더구조에서 트랜스로서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트랜스바에서 일하는 거? 활동가가 되어서 운동을 하는 거? (하지만 홍석천은 활동가가 되면서 거의 매장되다시피 했다.) 커밍아웃은 하더라도 아무 말도 안 하는거? 비록 동화(同化, passing)하여 자신의 트랜스 정체성을 숨기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이것은 젠더 억압적인 문화에서 연예인으로 살아남기 위한 전략/협상이 아닐까.
(젠더 구조에서 트랜스에게 가장 바라는 건, “입닥치고 구석에 거슬리지 않게 찌그러져 있어”가 아닐까.)
루인은 위의 두 가지 사례를 접하며 하리수가 젠더의 균열지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느꼈다. 트랜스‘여성’의 경우 성전환 수술을 위한 조건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이런 때의 조건은 ‘여성’처럼 행동하기다. 그렇기에 과거의 트랜스 관련 책들에 실린 사례엔, ‘남성’에서 ‘여성’으로 수술을 하고 마취에서 깨어나자 바로 바리톤이던 목소리가 소프라노로 바뀌었다는 식의 묘사가 많다(이런 사례는 의료담론에 식민지화된 결과다). 이런 맥락에서 사례1은 ‘여성’다움, ‘여성’으로 자라고 행동한다는 것은 훈육과 수행의 과정/결과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즉, 트랜스라는 “구역질나는 변태”의 “괴짜 같은” 행동이 아니라 젠더의 구성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사례2는 좀더 불편했다. 방송에서 트랜스 혐오가 드러난 경우인데, 루인에겐 그 장면이 “네가 아무리 여자인척 해도 넌 가짜야”라고 말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동시에 트랜스로서의 삶에서 겪는 슬픔과 그럼에도 나타나는 자부심도 느꼈다. 방송에서 하는 하리수의 행동을 과장되거나 “연기”라고 말한다면 그건 자신이나 다른 연예인들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인데, 이런 인식은 그 자체로 문제다. 젠더는 본질적인 것도 단순히 문화적으로 구성된 것도 아닌 계속해서 반복하는 행동들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비트랜스인 다른 연예인들이나, 트랜스를 “연기”라고 말하는 것 속에는 자신의 젠더 수행은 자연스러운 것이란 전제를 깔고 있다. 하지만 젠더가 자연스러운 것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