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 혹은 “약자”란 말의 불편함

어쨌거나 나름대로 유행인지, 정치적 약자나 소수자란 말을 자주 접한다. 소수자운동이라든가 성적 소수자에서부터 ‘여성’은 정치적 약자란 말까지. 자주 접하는 말들이지만 접할 때부터 이 말들은 참 불편하기만 하다. 소수자라니. 수적으로 적다는 말이냐!

물론 이렇게 말하면 소수자란 말은 수적으로 적다는 말이 아니라 기존의 권력에서 소수란 의미라는 대답을 듣는다. 아하, 그러하네요, 하고 주억거리지만 수긍할 수 없는 내용이다.

소수자가 수적으로 적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하지만 언제나 소수자 운동을 얘기할 때면 빠지지 않는 내용이 ‘동성애’자는 그 사회에서 10~15%정도, ‘장애’인도 한 사회에서 10~15%정도를 차지한다는 말로 수적으로 적음을 확인한다. 그리하여 실질적으로 권력에서 소수라는 의미가 아니라 수적으로 소수란 내용을 환기한다. 정치적 약자란 말도 마찬가지다. 정치적인 권력관계에서 약자란 의미이지만 미묘하게 그래서 약한 사람, 보호나 특별한 제도가 필요한 사람이란 뉘앙스를 함의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정말 불편한 지점이다.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루인의 입장에서 소수자란 말이나 약자란 말은 불편할 뿐만 아니라 소위 말하는 권력자들의 횡포이다.

성적 소수자란 말은 성정체성/성적 지향성에 토대를 둔 “소수”란 의미이지만 이 말은 역설적으로 젠더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이성애’가 다수거나 어쨌든 규범에 가깝다는 의미이다. 누군가를 소수라고 규정하기 위해선 다수 혹은 어떤 기준/규범을 필요로 한다. 당연히 이때의 규범 혹은 다수는 ‘이성애’를 의미한다. 하지만 정말 ‘이성애’가 다수일까. 알 수 없다. 만약 현재의 사회가 강제로 동성애를 정상화하는 사회였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기도 전에 자신을 동성애자로 정체화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실제로 그렇다 아니다, 가 아니라 성정체성엔 사회의 강제적인 억압이 작동한다는 말이다. 또한 지금 가정한 어떤 구조에서도 양성애자나 S/M은 억압 받는다.)

그리하여 문제는 소수자 혹은 약자란 명명 속에 가려져 있는 권력, 즉 성적 소수나 ‘장애’란 기준은 누가 정하며 누가 허락 하는가 이다. ‘이성애’가 다수거나 규범이거나 정상이란 근거는 어디에도 없지만 ‘이성애’를 질문하기 보다는 ‘동성애’자들의 “어려움”, 매트로섹슈얼이나 크로스섹슈얼이 대세라는 말하기로 ‘이성애’나 젠더의 ‘정상’성을 담보하거나 별로 도전하지 않는다. ‘장애’란 명명 역시 마찬가지인데 휠체어를 타야지만 ‘장애’라는 식의 인식을 통해 어디에도 없는 정상적인 몸을 상상하고 자신은 ‘정상’이라고 믿는다.

따지고 보면 정말 ‘소수’인 사람은 이반queer나 트랜스, 비서울지역 출신 사람들이 아니라 “서울대공화국”주의자들, (잠재적인) 예비역 병장들, (서울출신의) 서울지역중심주의자들이다. ‘진짜’ 소수는 권력(과 자원)을 독점하고 하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이들을 소수자로 부르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이들을 다수인 것처럼 착각하는 이유는 뭘까. 이런 소수 권력자들을 지지하고 이런 지지를 통해 자신에게도 권력이 있거나 자신은 ‘정상’이라는 착각으로 ‘안심’하고 사는 사람과 이런 환상에 도전하며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중 약자라면 누가 약자일까. 이른바 “약자”로 불리는 사람들은 실상 협상력을 통해 (침묵하며) 생존하고 있거나 발화하고 있는데 어떻게 “약자”일까.

그래서 소수자란 명명도 약자란 명명도 모두 불편하다. 누가 ‘여성’인지 누가 ‘남성’인지 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구를 소수라고, 누구를 약자라고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다. 루인은 루인의 비’이성애’ 정체성 등, 이른바 타자성을 통해 종종 (특정 공간에 한정하지만) 더 많은 권력을 획득하기도 하는데 소수자/약자라니!

~적, ~스러운, ~다운

중학교 때인가 고등학교 때인가 어느 수업시간엔가 옆에 앉아있던 짝이 뜬금없이 “~적(的)”이란 표현은 한자식 표기이고(일본식인가? 중요한건 아니다) “~스러운”이란 한글표현이 있다는 얘길 듣은 기억이 남아 있다. 이 기억이 남아있는 이유는, 이후 가끔씩 “~적”이란 표현보다는 “~스러운”이란 표현이 더 매끄럽고 의미를 더 잘 나타낸다고 느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오늘 이랑세미나를 하며 무슨 얘기를 하다가 “남성적인지 남성다운인지 남성스러운인지..”라는 말을 했었다. 이 말과 함께 한글2002인 HWP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이 얘기를 하기 전에 “~적”이란 표현은 한자식 표기이고 “스러운”은 한국어표현이라는 얘길 하니, “스러운”은 부정적인 의미에 쓰고 “~다운”은 긍정적인 의미로 쓴다고 했다. 아하, 그렇구나, 했는데 갑자기 HWP의 한 장면(위 그림)이 떠올랐다. 예전부터 저 빨간 줄이 거슬렸다. “여성스러운, 여성다운, 남성다운”은 맞춤법에 틀리지 않지만 “남성스러운”은 맞춤법에 틀린다는 빨간 줄이 나온다.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하는 불쾌함, 불편함이 떠올랐다. (더 많은 얘길 덧붙이고 싶은데 마땅한 언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순간적으로 “아!”하는 그 느낌보다 정확한 건 없나보다.)

여성학과, 꿈과 막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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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되지 않는 곳에서 며칠을 지냈는데, 그런 생활이 더 좋았다. 블로그도 잊고 온라인으로 연결되는 모든 걸 잊고 지내는 삶의 편안함. 언젠가 인터넷을 아주 끊을 수도 있을까? 불가능하겠지만 그러고 싶다는 바람을 품는다.

설이라고 부산엘 갔다 왔다. 다행인지 친척들을 거의 안 만났다. 후후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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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나면 별로 할 얘기가 없기에 요즘 어떻게 지내냐, 졸업하면 뭐 할 거냐 라는 질문을 형식적으로 하곤 한다. 좀더 다른 질문을 하면 안 될까 하면서도 딱히 더 물을 얘기도 없다. 그저 가볍게 질문하면서 괜히 관심 있는 척 하려는 내용들이지만 그런 내용이 때론 짜증과 상처가 되기도 한다.

암튼 대학원에 간다고 하니 무슨 과냐고 묻는다. “여성학 협동과정”예요.

지난 10월 즈음 대학원 면접을 본 것 같은데도 여직까지 이성애혈연가족들도 루인의 전공학과가 어딘지 몰랐다. 이번 설에야 비로소 말했다.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평범’했다. “못 가~~!!!”라는 반응이나 상당한 반대를 걱정했는데.

“엄마”는, 학부 성적표들에 여성학 과목들이 많이 있었기에 그르려니 하며, 졸업하면 취직은 할 수 있느냐는 걱정만 하셨다. 졸업하고 제 밥벌이 정도는 할 수 있는지가 걱정이셨다. “여러 가지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요” 라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학위논문의 내용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고 하자 먹고 살 수 있는 일로 해라는 걱정만 하셨다. 하지만, 루인이 하려는 전공으론, 크흑, 먹고 살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심지어 대학 강사 노릇도 힘들 것 같은 걸요.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해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어떻게 찾아봐야죠.
“아빠”는 “여성학?” 하시더니 별 말이 없었다. 이런 반응은 일종의 복선이었다.
친척들을 별로 안 만났지만, 일이 있어서 몇 명 만났고 사촌들도 몇 봤다. 사촌들에게 “여성학 협동과정”이라고 말하니, “여성학…, 뭐?” “협동과정” “무슨 과에 갈 건데?” “여성학 협동과정이 과 이름이에요.” 그랬다. 다들 여성학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이었다. 페미니즘예요, 라고 했으면 더 빨랐을라나. 풋.

이런 반응의 일부는 학부 전공이 수학과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 사촌은 교수 할 거냐고 물었지만, “과연?”이라고 말하며 웃고 말았다. 교수엔 관심도 없다. 어떻게 해서 하게 된다면 살짝 고민하겠지만 별로 그럴 가능성도 없다. 그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그것을 살려서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딱 좋겠다. 박사인 또 다른 사촌은 교수나 뭔가 출세하겠다는 몸으로 공부하면 과정을 이수할 수 없다며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했다. 유행이라고 인기 있다고 뭔가 출세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교수가 되어야겠다고 이것저것하면 결국 아무것도 안 된다고. 좋아서 즐거워서 하고 싶어서 선택했다고 하니 잘했다며 지지해줬다. 고마워.

같은 학교에 가느냐는 질문도 있었다. 그래요. 생긴지도 얼마 안 되고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학교에 간다. 그래서 다행이다 싶다. 한편으론 행정적인 일부터 기타 등등의 여려 가지 이유로 피곤하지만 이런 상황이 자원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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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들을 만난 건, 설날 49재가 있어서 간 절에서였다. 작년 겨울 어느 날, 망자의 소식을 적은 흔적이 이곳에 있다. 설이 49재의 막재였다. 염불소리를 들으며 꿈을 떠올렸다. 높은 산에 뒷짐 지고 있던 모습. 그 산은 북망산이었을까. 뒷모습이 참 외롭다고 느꼈다. 살아서 고생만 하다 돌아가셨지만 죽어서나마 좋은 곳에 갔을 거라고 믿는다. 외롭다고 느꼈지만 그곳은 나쁘지 않은 곳이었으니까.

이런 얘길 사촌들에게 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고 엄마와만 나눴다. 또 꿈 꿨냐며, 루인은 지장보살과 관련이 있단다. 아하하. 심지어 전생엔 스님이었단다. 아하. 그래서 망자의 소식을 미리 접하는 걸까, 했다.

루인은 종교가 없지만 이성애혈연가족과 그 친척들은 대부분이 불교와 관련이 있다. 그래서 전생에 스님이었나 하며, 기독교나 천주교 집안이었거나 유럽이나 미국인이었다면 신부나 목사라고 했겠지, 라며 웃고 말았는데 그게 아님을 깨달았다. 전생엔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 동물이나 식물 혹은 돌이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전생에도 한국이나 불교가 있는 동양에서 태어났다는 보장이 없다. 그러니 현재와는 상관없이 전생엔 스님이었나 보다. 그래서 절이 편하고 한땐 아주 잠깐이나마 스님이 될까 했었나보다. 비단 절뿐만 아니라 종교 건물은 대체로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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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걱정했던 전공공개는 의외로 쉽게 끝났다. 그런 거다. 어려울 거라 걱정했는데 의외로 쉽게 풀리고 쉽겠거니 했는데 의외로 꼬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