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스러운, ~다운

중학교 때인가 고등학교 때인가 어느 수업시간엔가 옆에 앉아있던 짝이 뜬금없이 “~적(的)”이란 표현은 한자식 표기이고(일본식인가? 중요한건 아니다) “~스러운”이란 한글표현이 있다는 얘길 듣은 기억이 남아 있다. 이 기억이 남아있는 이유는, 이후 가끔씩 “~적”이란 표현보다는 “~스러운”이란 표현이 더 매끄럽고 의미를 더 잘 나타낸다고 느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오늘 이랑세미나를 하며 무슨 얘기를 하다가 “남성적인지 남성다운인지 남성스러운인지..”라는 말을 했었다. 이 말과 함께 한글2002인 HWP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이 얘기를 하기 전에 “~적”이란 표현은 한자식 표기이고 “스러운”은 한국어표현이라는 얘길 하니, “스러운”은 부정적인 의미에 쓰고 “~다운”은 긍정적인 의미로 쓴다고 했다. 아하, 그렇구나, 했는데 갑자기 HWP의 한 장면(위 그림)이 떠올랐다. 예전부터 저 빨간 줄이 거슬렸다. “여성스러운, 여성다운, 남성다운”은 맞춤법에 틀리지 않지만 “남성스러운”은 맞춤법에 틀린다는 빨간 줄이 나온다.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하는 불쾌함, 불편함이 떠올랐다. (더 많은 얘길 덧붙이고 싶은데 마땅한 언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순간적으로 “아!”하는 그 느낌보다 정확한 건 없나보다.)

여성학과, 꿈과 막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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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되지 않는 곳에서 며칠을 지냈는데, 그런 생활이 더 좋았다. 블로그도 잊고 온라인으로 연결되는 모든 걸 잊고 지내는 삶의 편안함. 언젠가 인터넷을 아주 끊을 수도 있을까? 불가능하겠지만 그러고 싶다는 바람을 품는다.

설이라고 부산엘 갔다 왔다. 다행인지 친척들을 거의 안 만났다. 후후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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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나면 별로 할 얘기가 없기에 요즘 어떻게 지내냐, 졸업하면 뭐 할 거냐 라는 질문을 형식적으로 하곤 한다. 좀더 다른 질문을 하면 안 될까 하면서도 딱히 더 물을 얘기도 없다. 그저 가볍게 질문하면서 괜히 관심 있는 척 하려는 내용들이지만 그런 내용이 때론 짜증과 상처가 되기도 한다.

암튼 대학원에 간다고 하니 무슨 과냐고 묻는다. “여성학 협동과정”예요.

지난 10월 즈음 대학원 면접을 본 것 같은데도 여직까지 이성애혈연가족들도 루인의 전공학과가 어딘지 몰랐다. 이번 설에야 비로소 말했다.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평범’했다. “못 가~~!!!”라는 반응이나 상당한 반대를 걱정했는데.

“엄마”는, 학부 성적표들에 여성학 과목들이 많이 있었기에 그르려니 하며, 졸업하면 취직은 할 수 있느냐는 걱정만 하셨다. 졸업하고 제 밥벌이 정도는 할 수 있는지가 걱정이셨다. “여러 가지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요” 라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학위논문의 내용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고 하자 먹고 살 수 있는 일로 해라는 걱정만 하셨다. 하지만, 루인이 하려는 전공으론, 크흑, 먹고 살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심지어 대학 강사 노릇도 힘들 것 같은 걸요.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해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어떻게 찾아봐야죠.
“아빠”는 “여성학?” 하시더니 별 말이 없었다. 이런 반응은 일종의 복선이었다.
친척들을 별로 안 만났지만, 일이 있어서 몇 명 만났고 사촌들도 몇 봤다. 사촌들에게 “여성학 협동과정”이라고 말하니, “여성학…, 뭐?” “협동과정” “무슨 과에 갈 건데?” “여성학 협동과정이 과 이름이에요.” 그랬다. 다들 여성학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이었다. 페미니즘예요, 라고 했으면 더 빨랐을라나. 풋.

이런 반응의 일부는 학부 전공이 수학과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 사촌은 교수 할 거냐고 물었지만, “과연?”이라고 말하며 웃고 말았다. 교수엔 관심도 없다. 어떻게 해서 하게 된다면 살짝 고민하겠지만 별로 그럴 가능성도 없다. 그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그것을 살려서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딱 좋겠다. 박사인 또 다른 사촌은 교수나 뭔가 출세하겠다는 몸으로 공부하면 과정을 이수할 수 없다며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했다. 유행이라고 인기 있다고 뭔가 출세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교수가 되어야겠다고 이것저것하면 결국 아무것도 안 된다고. 좋아서 즐거워서 하고 싶어서 선택했다고 하니 잘했다며 지지해줬다. 고마워.

같은 학교에 가느냐는 질문도 있었다. 그래요. 생긴지도 얼마 안 되고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학교에 간다. 그래서 다행이다 싶다. 한편으론 행정적인 일부터 기타 등등의 여려 가지 이유로 피곤하지만 이런 상황이 자원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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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들을 만난 건, 설날 49재가 있어서 간 절에서였다. 작년 겨울 어느 날, 망자의 소식을 적은 흔적이 이곳에 있다. 설이 49재의 막재였다. 염불소리를 들으며 꿈을 떠올렸다. 높은 산에 뒷짐 지고 있던 모습. 그 산은 북망산이었을까. 뒷모습이 참 외롭다고 느꼈다. 살아서 고생만 하다 돌아가셨지만 죽어서나마 좋은 곳에 갔을 거라고 믿는다. 외롭다고 느꼈지만 그곳은 나쁘지 않은 곳이었으니까.

이런 얘길 사촌들에게 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고 엄마와만 나눴다. 또 꿈 꿨냐며, 루인은 지장보살과 관련이 있단다. 아하하. 심지어 전생엔 스님이었단다. 아하. 그래서 망자의 소식을 미리 접하는 걸까, 했다.

루인은 종교가 없지만 이성애혈연가족과 그 친척들은 대부분이 불교와 관련이 있다. 그래서 전생에 스님이었나 하며, 기독교나 천주교 집안이었거나 유럽이나 미국인이었다면 신부나 목사라고 했겠지, 라며 웃고 말았는데 그게 아님을 깨달았다. 전생엔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 동물이나 식물 혹은 돌이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전생에도 한국이나 불교가 있는 동양에서 태어났다는 보장이 없다. 그러니 현재와는 상관없이 전생엔 스님이었나 보다. 그래서 절이 편하고 한땐 아주 잠깐이나마 스님이 될까 했었나보다. 비단 절뿐만 아니라 종교 건물은 대체로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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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걱정했던 전공공개는 의외로 쉽게 끝났다. 그런 거다. 어려울 거라 걱정했는데 의외로 쉽게 풀리고 쉽겠거니 했는데 의외로 꼬이고.

주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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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슴이 아파서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이런 날 당신은 어떻게 하나요, 궁금하지만 물을 수 없다는 사실이 참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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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친해지는 속도는 다 다르고 유지하는 거리도 다 다르다고 느껴요. 그 거리를, 속도를 지켜주세요. 지금의 상태가 딱 좋거든요. 그 이상이라면, 루인은 튕겨나갈 거예요. 신나게 쥐불놀이하다 툭, 끊어져 멀리 날아 가버리는 것 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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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vegan이 아니었기에 채식주의자로 정체화하지 않았지만, 비건일 때에도 채식주의자로 정체화하길 꺼렸다. 그냥 채식가로만 부르며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과의 식사자리에선 그냥 조용히 가만히 있고, 누군가 챙겨주면 그제야 다행이라 여기며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그냥 제 성격이 이상한거죠”라는 식으로 얼버무리곤 했다. (물론 이런 반응엔 또 다른 경험이 겹쳐있다.) 권력에 순응하고 결코 위협하지 않는 방식으로 반응했기에 루인은 더 “바보”가 되었고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헤헤” 웃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