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이라고요?

이랑의 이번 달 주제글이 “내가 가지는 환상”이란 걸, 오늘 올라온 글을 통해 새삼 확인했다. 지난 달 말 즈음부터 이 주제로 고민했고, 몇 번인가 시도를 했지만 결국 쓸 수 없겠구나, 했다. 무엇이 환상인지 너무 애매했기 때문이다.

종종 루인의 삶 자체가 환상 같다는 느낌을 가진다. 뭔가 꿈을 꾸고 있구나 하는 착각. 이런 착각 속에서 살기에 하루가 일년 같고 아침에 있었던 일을 저녁에 돌이키면 몇 해 전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가지는 환상”이란 주제를 들었을 때, 무엇을 환상으로 해야 할지 난감해졌다. 예전에 “성적 판타지”에 대해 얘기를 나눌 일이 있었는데, 그때 루인이 떠올린 장면은, 도서관이었다. 읽지도 않으면서, 책이 방 가득 채워져 있으면 정말 에로틱하겠다는 느낌을 가졌다. 변태하는 자극들이 무궁무진할 테니까. (어떤 책이 있느냐가 문제인데 루인이 놀고 싶은 책들이면 좋겠다: 한국어사전처럼 베고 자기에 푹신한 책. 루인이 즐거울 만한 책도 있으면 더 좋겠다: 백과사전처럼 벽돌쌓기 놀이하기 좋은 책. 하지만 읽고 루인이 화가 날만한 책도 있으면 좋겠다: 오래되어서 쌓으면 기울어지고 무너지기도 하는 책 -_-;;;) 이런 게 환상일까.

하지만, 아직도 살아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 더 환상 같다. 긴 악몽 속에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름바꾸기

국가님이 관리, 통제해주시는 이름이 루인의 사주에 안 좋아서 이름을 바꾸자는 얘기를 몇 년 전부터 했었다. 사실 사주에만 안 좋은 것이 아니라 부르기에도 불편하고 어릴 때부터 이름으로 “놀림”을 많이 받아 안 좋은 기억도 많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나마 요즘은 이름 바꾸기가 편해졌다며 며칠 전 연락을 하더니, 오늘 작명가에게 가셨나 보다. 전화가 왔다. 총 8개의 이름을 불러주며 고르라고 하는데, 첫 글자는 다 같고 끝 글자만 달랐다(일테면, 바보, 바람, 바다, 바닥, …처럼;;;). 이렇게 8개의 이름을 듣는데 어찌하여 다 몸에 안 드는 것이다. 그 작명가, 센스가 참 후지다.

한참을 망설이니, 짜증나신 엄마, 잠시 후 다시 전화 할 테니 얼른 결정하라고 하셨다. 으아아~~ 이 어이없는 상황에서 루인이 떠올린 곳은 싸이월드 회원검색. 대충 아무 년도로 해서 가장 진부하게 나오는 걸로 선택했다-_-;; 크크크. 싸이월드=21세기 작명소. 흐흐;;;

“이름은 누가 지었어요?”
“예, 싸이월드 회원검색이 지었어요.”

“이름 어디서 지었어요?”
“예, 싸이월드에서 지었어요.”

[#M_ +.. | -.. | 사실 이것보다 더 웃긴 일이 있는데, 만약 개명에 성공하면, 루인이 진학하려는 대학원의 사람들과 돌림자가 된다. 이름의 첫 글자가 모두 같다-_-;;;; 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 이건 코미디야! _M#]

발화

발화하다.

글을 쓰다가 루인은 “말하다”란 표현보다 “발화하다”란 표현을 더 좋아하고 그래서 상당히 자주 사용한다는 걸 깨달았다. 한자어를 별로 안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발화란 표현은 너무 몸에 든다. 이중적인 의미 때문이다.

發火: 불이 남
發話: 입을 열어 말을 함. 말을(이야기를) 꺼냄.

(엠파스 국어사전)

바로 이런 이유로 발화란 단어가 좋다. 입을 열어 가두어 둔 언어를 드러낸다는 건, 금기시 되었던 욕망들을 표현할 수 있는 상상력과 용기를 가졌다는 의미면서 동시에 언어를 표현하는 찰라 자신도 모르게 그간 억압하고 있던 욕망들이 불에 타오르듯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냥 몸속에만 굴렸을 땐 정리가 잘 안 되던 몸앓이들도 글이나 또 다른 표현 수단으로 드러내는 순간, 정리가 되고 미처 깨닫지 못하던 내용들도 알게 되는 경험이 있다. 잘 몰라서 누군가에게 질문하려고 몇 마디 꺼내는데, 그 과정에서 “아!” 하고 깨달은 적도 있다. 루인에겐 발화란 단어가 이런 순간을 잘 포착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