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일도 없이 학교에 갔다. 일이 있긴 있었지만 굳이 오늘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냥, 생활의 패턴을 좀 만들까 싶어서 갔다.
보통은 玄牝에서 뒹굴며 노는 편이다. 근데 가끔씩은 그 효율이 떨어지는데, 방바닥과 친하게 지내다 보면 애정이 주체할 수 없이 커져서 만두베개 사이로 숨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무실에 매일 나갈까 했다. 연구실에 간다고 특별할 것은 없지만 그래도 책상이 있다는 사실 하나로 뭔가 다르게 느껴지니까. 玄牝의 강점은 책상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 가자 선생님들의 전화가 왔고 몇 가지 사무를 처리했다. 가지 않았으면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이었지만 오히려 잘 된 점도 있어서 불만은 없다. 오늘 가지 않았다면 해야 할 일이 기약 없이 미뤄졌을 수도 있었으니까.
#
학교 도서관을 통해 책을 세 권 주문했다. 문과 같은 이과라 비싼 등록금이 억울해서 읽고 싶은 책은 항상 주문한다. 교보에 없는 책도 있거니와 새 책을 가지는 것과는 별도로 제본을 해서 읽는 종류의 책들이기 때문이다. (거의 병적으로 책이 구겨지거나 더럽혀지는 것을 싫어한다. 루인이 책과 처음 닿았을 때의 그 상태 그대로 읽고 보관하는 편이다. 그래서 다섯 번인가 읽은 책을 한 번도 안 읽은 책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CD도 마찬가지인데, 玄牝에 있는 CD들은 비닐포장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이런 루인을 향해, 누군가는 “너 A형이지?”라고 했다.)
이번 주문이 어쩌면 학부 마지막 주문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을 가졌다. 뭐, 곧바로 대학원에 갈 예정이라 특별할 느낌 같은 건 없다. (아직 대학원 등록금을 안 냈기에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계속 연결되기 때문에 두 달이 훨씬 지나서야 받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주문했다. 졸업식을 하기 전에 필히 더 주문을 하리라 하면서도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느낌은 조금 묘하다. 섭섭한 것도 아니고 아쉬운 것도 아니고 시원한 것도 아닌 그냥 묘한 느낌이다. 그 비싼 등록금이 억울하다는 느낌일 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더 많은 책을 주문해서 본전을 찾았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일지도;;; 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