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한국에서 성적소수자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가족들을 위한 포럼”

“한국에서 성적소수자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가족들을 위한 포럼”

며칠 전에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커밍아웃한게 후회될 정도로 힘들고, 많이 괴롭습니다.
부모님께서 이해를 하지 못하세요..
부모님은 동성애자라고 하면 그냥 변태라고만 생각합니다.
부모님의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동성애자 자식을 둔
부모님들 모임같은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모임이 없나요?
– 고민게시판에서-

여기에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의 가족과 친구들이 나와서 직접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누며,
성적소수자의 가족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의미와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한국최초의 역사적인 포럼이 열립니다.
성적소수자들의 가족들과 친구들이 나와서 커밍아웃을 받아들였을 때의 충격을 말하고,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 성적소수자들의 가족으로 살아가는데 힘든 점이 무엇인지 , 우리 사회에서 성적소수자들의 가족들을 위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은 무엇인지 짚어보려고 합니다.
또한 일본,미국, 유럽등의 외국에서의 성적소수자의 가족들을 위한 모임을 소개하고 함께 한국적 현실에 맞는 대안점 을 찾는 시간을 만들고자 합니다.
많은 성적소수자들과 성적소수자들의 부모님, 친구들의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일시: 2007년 9월1일 토요일 오후2시~6시
장소: 영상미디어 센터 미디 액트(광화문 동아일보 옆 일민미술관 5층)

– 진행순서

1부 가족과 친구들의 이야기

발표: 김정숙 ( 동성애자의 어머니) 김지영 ( 트랜스젠더의 동생)
김현정 ( 동성애자의 언니) 우 공 ( 동성애자의 친구)

2부 다른 나라 이야기

발표: 일본의 부모님 ( 회원)
프로젝트팀 – 미국과 유럽의 가족지지모임 현황 소개

• 포럼후에는 간단한 다과와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찾아오시는 길: 5호선 광화문역 5번출고 /1호선,2호선 시청역 4번출구 프레스센터 방향 5분거리

문의 kscrc@kscrc.org | 0505-896-8080 (Tel) | 0505-893-8080 (Fax)

출처는 여기

토요일이면 지렁이 회의가 있는 날인데, 9월 1일엔 회의 전 혹은 회의 대신 여기에 참가하면 좋겠다.

관심 있으신 분들, 참고하세요. 🙂

트랜스젠더와 이성애규범

흔히 트랜스젠더는 젠더(여기선, 성별이분법)와*만* 관련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경향이 있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첫 번째 숫자를 통해 성별을 둘로 구분하고, 그렇게 구분한 성별이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업보라도 되는 양 변할 수 없는 것으로 얘기하고, 트랜스젠더들은 이런 성별이분법으로 인해 억압이나 어떤 갈등과 긴장을 경험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에 비해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바이, S/M, “이성애”자 등은 섹슈얼리티의 ‘문제’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남성”으로 태어났으면 “여성”을 좋아하는 게 “당연”하고, “여성”으로 태어났으면 “남성”을 좋아하는 게 “당연”하며, 이런 “이성애” 섹슈얼리티가 아닌 섹슈얼리티들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인식들. 이른바 “강압적 이성애규범주의”로 인해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바이, S/M 등이 억압이나 어떤 갈등과 긴장을 경험한다는 주장이 있고.

하지만 때론, 젠더의 문제라고 얘기하는 트랜스젠더가 오히려 섹슈얼리티로 인해, 섹슈얼리티의 문제라고 얘기하는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바이 등이 오히려 젠더로 인해 더 많은 갈등과 긴장을 경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렇다고 앞서의 주장들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사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분명한 구분은 이론적인 분석틀(설명의 용이함)로서나 가능하지 구분해서 경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이 둘을 구분해서 얘기할 수 있다고 가정할 때에 조차, 트랜스젠더들의 갈등과 긴장은 성별이분법도 있지만, 때로 이성애규범주의가 더 크게 작동할 때가 있다. 이 말이 “그” 트랜스젠더가 레즈비언이거나 게이 혹은 바이 등이란 의미는 아니다. 소위 말하는 “이성애”자라고 가정할 때에도 이성애규범주의로 인해 더 많은 갈등을 경험한다는 의미이다.

이 글이 좀 더 구체적이면 좋으련만, 그럴 수 없는 건 아직은 공개할 수 없는 어떤 일 때문이다(그 일을 고민하다 다른 적절한 이야기를 못 찾고 있달까;;).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 차원에서 대응을 할지 어떨지 아직은 알 수 없는 어떤 일로 지난 토요일 회의를 하며, “트랜스젠더는 성별이분법, 동성애/양성애는 강압적 이성애규범주의”란 식의 설명에 비추어 얘기한다면, 정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는 얘길 했다. 물론 새삼스러울 것 없는 얘기지만, 새삼스러울 것 없는 얘길, 발화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달까. 막연하게만 짐작할 뿐 이었달까.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많은 글이 성별이분법을 주요 소재로 놓고 얘길 하고, 성별이분법이 문제란 식으로 설명을 하는 경향에서 루인 역시 자유롭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하는 와중에 이성애규범주의가 작동하는 지점을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다시 한 번 자문하고 있다.

아무튼 지금 논의 중에 있는 그 일이 만약, 활동가들의 검열 없이, 그러니까 그 사람이 보내준 자료를 있는 그대로 다 공개한다면, (적어도 여성학/페미니즘/여성운동, 트랜스젠더 이론과 운동, 동성애 이론과 운동, 퀴어정치학 등등에서) 상당한 논쟁이 가능하다고 느끼고 있다. 성폭력특별법, 가해자 되기와 피해자 되기의 교차성, 피해경험자 진술의 의미, 현행 법체계에서 성폭력 가해자의 지위, 이런 가해자 지위의 불안정성, 정체성이 부인 되었을 때의 무력감과 가해자되기, 성별변경, 성전환수술과 수술의 범죄이용 가능성, 가장 부정적인 뉘앙스로서의 “변태성욕”, “진성” 트랜스젠더의 조건, 등등. 이런 많은 논쟁을 가능케 하는 일을 논하고 있는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이런 논의의 장을 형성하는 것이 정말 가능할지, 그저 몇몇 사람들만 알고 지나가는 일이 될지.

트랜스로서 나이가 든다는 것

미즈키님의 블로그에서 “잠깐”이란 글을 읽으며, 이런 저런 주변 사람들의 상황이 떠올랐다. 몇 주 전엔 ps네 갔었다. 결혼한 지 2년도 안 되었는데, ps의 파트너는 거의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었다. 하긴, 그 전에도 루인이 갔을 때만 뭔가를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땐 집안일을 하는 척이라도 했는데, 이젠 이런 흉내도 안 낸다는 걸 느꼈다. 아는 누군가는 자기 “남자” 동생이 결혼 전에는 아무 것도 안 해서 사이가 꽤나 나빴는데, 결혼하고 나니 변하더라고 했다. 개개인의 차이일 수도 있고, “전시행정”일 수도 있고. 아무려나,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있잖아, 미즈키님의 글을 읽다가, 트랜스로서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어떤 걸까, 라는 질문 앞에, 아무 것도 안 떠오른다는 걸, 너무도 막막해서 “정전”이라도 된 건가 싶은 느낌이란 걸 깨달았다. 개개인들의 다양한 맥락에 따른 차이가 있지만, 한국사회에서 “이성애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의 이미지, 나이가 들어갈 때의 모습과 관련한 어떤 이미지는 그래도 있는 편인 것 같은데. 적어도 “내가 나이가 들면 대충 저렇게 변할 수도 있겠다”라는 어떤 이미지는 가질 수 있으니까. 그런데 트랜스는? 레즈비언 트랜스나 게이 트랜스는? 비정규직 레즈비언 트랜스는?

가끔, 다른 트랜스들과의 자리가 꽤나 불편하거나 우울해지는 경우가 있다. 먹고사는 문제와는 별개로, 호르몬이나 수술과 관련한 얘기를 나눌 때가 그렇다. 호르몬은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고, 그래서 10대나 20대 초반이 좋고 그 이상으로 넘어가면 효과를 많이 못 볼 수도 있다고 얘기한다. 어떤 트랜스젠더는 루인에게, 언제 호르몬을 시작할 것이냐고 묻는다. “글쎄, 아직 고민 중이에요”라고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가지만, 근데 언제 할까? 하기는 할까? 정말 안 하고 살아갈까? 나이 50에 병원에 찾아가서, 더 이상 못 견디겠다고 호르몬을 하겠다고 의사에게 말할까?

한국에서 성전환수술로 유명한 한 의사가 해준 얘기: 자식들은 모두 결혼했고, 아내와도 합의를 했다며, 성전환수술을 요구한 50대 mtf/트랜스여성이 있었다. 그 의사에게 아내와 같이 갔는데 아내도, 자기도 더 이상 힘들어하는 모습을 못 봐주겠다고, 수술을 바란다고 했단다. 그 mtf는 이미 정신과 진단을 받았고, 정신과 의사는 성전환수술을 허가했다. 그럼에도 그 의사는 수술을 거부했다.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토론장에서 이 이야기를 하며, 그 의사는, 나이 50에 수술을 요구하며 찾아온 그 트랜스가 너무 징그러워서 도무지 못 하겠더라며, 수술을 거부했던 사실을 아주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이 일화가, [프랑켄슈타인]을 읽다가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에게 파트너를 만들어 준다는 약속을 했다가 끔찍하고 징그러워서 만들지 않기로 결심하는 장면과 겹쳐서, 빅터에게 상당한 분노를 품었었다. 그리고 이 일화는 다시 트랜스의 나이 듦과 겹친다.

지금 자주 만나는 트랜스들은 거의 모두 20대이고, 그중 상당수가 호르몬을 하고 있고, 몇몇은 수술도 했다. 루인처럼, 나중에 어떻게 할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로선 호르몬을 하지 않겠다고 얘기하는 이들은 없고. 건너서 아는 트랜스들 중 나이가 들었다고 여기는 이들은 모두 호르몬을 꽤나 오래 했거나 수술을 한 몸들이다. 하리수는 2001년에야 비로소 방송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얼마 전엔 “이성애”결혼도 했다. 호르몬을 한다면 어쩌면 평생 호르몬주사와 함께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고, 30대 혹은 40대에 호르몬 투여를 시작한다는 게 어떤 건지, 현재로선 상상불가이다. 30대 후반엔가 호르몬을 시작해 수술을 모두 한 mtf/트랜스여성은 지금 카페를 운영 중에 있다. 그를 루인의 어떤 미래상으로 상상하기엔 맥락이 너무 다르다.

그리하여, 트랜스로서 나이가 든다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이 안 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지금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트랜스들은 무얼 하건 “최초”라는 수식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다. 아이가 있는 트랜스들이 호적상의 성별변경을 요구하는 것도, 호르몬이나 수술과 관련해서 의료보험을 요구하는 주장들도, 인권운동을 표방하며 발족한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도 모두 “최초”라는 수식을 짊어지고 있다. 이 말은 “기념비적인 사건”일 수는 있지만, 그런 만큼이나 매 순간의 일들에 있어 “역할 모델”이 없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역할모델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뭔가 막막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1950년대 1960년대 신문에 났던 그 많은 “남장여자/여장남자/트랜스젠더”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현재 들리는 나이든 mtf들의 삶은, 카페 운영이나 결혼한 삶이 전부인데, 이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우울하기보다는 막막하고, 막막하기 보다는 먹먹하고, 먹먹하기보다는 우울하다. 그저 계속 공부를 하고 싶다란 말 말고, 막연하나마 다른 어떤 상상이 가능할는지. 트랜스에게 나이가 든다는 건 어떤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