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고양이와 살고 있지만 그 흔한 고양이 관련 카페엔 가입하지 않았다. 카페에 가입하지 않는 건, 포털서비스의 카페에 가입하는 게 내키지 않고, 로그인에 바탕을 둔 카페 기능의 접근성 문제로 거부감이 있어서다. 고양이 관련 유용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다는 고양이 관련 카페에 가입하지 않는 건, 바로 그 정보가 싫어서다. 그 정보가 비록 훌륭하고 고양이와 동거할 때 상당히 유용하겠지만, 난 싫었다. 이른바 정보의 과잉에 허우적거릴 것만 같아서.

내가 고양이와 관련해서 얻는 정보는 종이책으로 출판한 책이 전부. 고양이 관련 정보를 다룬 책과 고양이와 생활하며 겪는 일을 그린 만화책. 종이로 출판한 책의 정보는 늘 두루뭉실하고 철지난 정보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나의 고양이에게 적용하기 어려운 정보들도 상당하다. 카페에서 얻는 정보가 훨씬 유용하리라. 그 유용한 정보가 싫었다. 귀얇은 나는 그 유용한 정보 하나하나에 괴로워하리라.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정보까지 배울 수 있겠지만, 이게 싫었다.

난 그냥 나의 고양이와 살며 천천히 배우고 싶을 뿐이다. 너무 늦게 깨달을 수도 있지만 깨달음이란 언제나 철지난 정보니까, 괜찮다. 좀 모르고 무덤덤하게 넘어가는 것도 고양이와 동거할 때 나쁘지 않은 자세라, 그냥 천천히 알아가기로 했다.

이런 이유로 트위터를 중단하기로 했다. 한동안 트위터를 즐겨 사용했다. 매우 많은 정보를 얻었고, 다른 곳에선 결코 얻을 수 없는 앎을 트위터에서 배웠다. 하지만 정보가 넘쳐난다. 버겁다. 몰라도 되는 정보는 없겠지만 이렇게 신경을 쓰는 게 무슨 의미일까 싶다. 트위터에 신경 쓰면서, 이곳 [Run to 루인]이 방치되는 것도 좀 속상한 일이고. 그래서 트위터 계정을 삭제할까 했다. 글을 쓸 땐 매우 중요한 트윗이었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계정 자체를 없앨까 했다. 기록을 남긴다는 차원에서, 계정을 삭제하여 흔적을 모두 없애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쓸데 없는 내용도 많지만 아카이브(퀴어락)에서 함께 일하며, 이런 작은 기록들이 모두 중요하단 걸 배웠으니까. 너무 많은 웹기록들이 그냥 사라진 걸 확인하며 안타까웠으니까. 나의 트윗이 무슨 의미를 가지겠느냐만 그래도 혹시나 싶어 없애진 않기로 했다. 그냥 지금 상태로 방치하기로 했다. 아주 가끔, 심심하면 로그인은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나는 늘 웹에 거주하고, 내가 신뢰하는 정보의 상당수는 블로거들이 생산하지만, 내게 편한 정보는 종이에 쓴 것들이다.

오후 3시

내게 오후 3시는 매우 괴로운 시간이었다.  오후 2시부터 4시 사이의 시간을 힘들어했다. 그 지리멸렬한 느낌의 햇살. 살이 아픈, 마치 반짝이는 유리조각이 몸에 박힌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오후 3시의 적막함도 싫었다. 누군가는 새벽3시의 쓸쓸함을 얘기했는데, 난 오후 3시의 적막함을 싫어했다. 그래서 정신없이 바쁘길 바랐고, 아님 어디 어두운 곳에 들어가 오후 3시란 걸 잊고 싶었다.

요즘의 오후 3시는 평화롭다. 아가들이 뛰어다니고, 엄마고양이가 잠드는 모습의 방에 있노라면, 오후 3시도 견딜 만하다.

고양이와 살면서, 세계가 변했다.

근황: 집.. 고양이.. 논문

01
오랜 만에 집에 앉아 글을 읽고 있다. 글을 읽는 곳은 계속 바뀐다. 동거묘가 나를 부르는 곳, 동거묘가 드러누워 잠을 자는 곳이 내가 머무는 곳이다. 마루에서 싱크대에 기대 글을 읽다가 동거묘가 방으로 들어가 사료를 먹기 시작하면 나는 따라 간다. 동거묘가 나를 부르기도 한다. 냐옹, 하고 부르면 나는 가야 한다. 그럼 동거묘가 밥을 먹는 동안 나는 그 옆에 앉아 글을 읽는다. 그러다 다시 마루로 가서 아깽이를 돌보기 시작하면, 나는 또 그 옆에 앉아 글을 읽는다.

동거묘가 들어오고 아가들이 태어나고 무사히 자라기까지… 얼추 80일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내가 사는 방에 고양이가 들어온지 80일 정도가 지나자, 이제야 비로소 책과 논문을 조금씩 읽을 수 있다. 초기엔 논문을 읽기 위해 외출했다. 고양이와 사는 일에 워낙 처음이라 적응을 못 했다. 논문을 읽기 위해선 밖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동거묘와의 생활에 적응할 즈음, 아가들이 태어났다. 다시 적응해야 했다. 아가들을 돌보는 동거묘의 생활에 나를 맞추기 시작했다. 다시 이 생활에 적응할 즈음, 이젠 아가들이 우다다 달리기 시작했다. 배변을 못 가리고 모든 물건에 호기심을 보여 정신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 맞물려 나는 알바와 다른 일로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또 흘렀다.

얼추 80일 정도의 시간이 흘러, 말도 안 되는 세계일주를 할 시간이 흐르자 비로소 나는 여유가 생겼다. 아가들이 자고, 그 옆에 엄마냥이 자고, 난 그 옆에 앉는다. 다들 자는 모습에 덩달아 자기도 하고, 논문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토요일. 이제야 비로소 집에 앉아 논문을 읽을 수 있다. 사실 어제 밤에만 해도 밖으로 나갈까, 고민했다. 망설였다. 불필요한 소비라 망설였다. 그러다 시도하기로 했다. 가능하다.

02
뭔가 일자리를 구할 거 같은데 좀 재밌는 일이 생겼다. 확정되면 나중에 자세히..

03
석사논문을 겸사겸사 읽고 있다. 심사후 수정판이 아니라 심사를 위한 제출판으로. 논문을 읽으며, 손발이 오그라든다. 어떻게 이 논문을 통과시켜 줄 생각을 했는지 이해가 안 갈 지경이다. 정말 조잡하다. 각 장별로 나눠서 별도의 글이라면 읽을 만하다. 하지만 하나의 논문, 한 권의 책이라면 정말 아니다. 그래도 이렇게 확인하니 나쁘진 않다.

04
행사 일주일을 앞두고 강연청탁이 왔다. 행사 일주일 앞두고 청탁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만 덥썩 물었다. 그런데 왜 그 이후로 연락이 없지??

05
아무려나 집에 앉아 논문을 읽으니 참 좋다. 주제도 6월에 있을 발표 내용에 맞는 거라 다행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