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종결어로 “~했군요”와 “~했네요”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남성” 아니면 “여성”이라는 방식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사회에서, 사이버 공간 역시 이런 성별 구분에서 자유롭지 않은데(ㄴㅇㅂ의 퍼스나콘이나 ㅆㅇ의 미니미, ㅍㄹㅊ의 아바타 등이 대표적일 듯), 굳이 이런 이미지가 아니어도 문장을 통해서, 원한다면 원하는 방식으로, 성별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 일본어에서 남성형 감탄사와 여성형 감탄사가 다르다고 배운 적이 있고, 프랑스에서 남성형 명사와 여성형 명사를 구분하고 있다고 하는데, 한국어의 경우엔, 종결어의 사용 방식을 통해 성별을 표현할 수도 있다.
당연히 이런 성별은 주민등록번호 상의 성별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문장을 통해 성별을 판단하고 그렇게 그 글에 접근하는 편이다. 일테면 이웃 블로거인 토룡왕자님과 벨로공주님의 관계처럼(뜬금없이 뭔가 큰 스캔들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적는 편집기술 -_-;; 흐흐). 토룡마을을 둘러싼 블로거들 사이에서 종종 접하는 웃음을 표시하는 방법은 “껄껄”인데, 이 웃음소리는 소위 “남성적”이라고 불리는 방식이고 그래서 “호호”라는 방식으로 웃음을 표시할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 사람을 해석할 여지가 생긴다. 동시에, 이런 웃음 표현에서 나타나는 성별의 의미, 그리고 이런 웃음을 표현하는 방식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맥락들을 짐작할 수 있는 계기일 수도 있다.
이렇게 적는 건, 오후에 R과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새삼스럽게 떠올라서. 아마 “수술이 나를 증명하는 건 아니다”를 [Run To 루인]에 링크하면서 혹은 그 글과 관련해서 [Run To 루인]에 글을 쓰며 적은 것 같은데, 정말이지 한겨레21에 기고했던 그 글을 이곳에 링크하기 전까진, 루인의 성별이 드러나는 어떤 언어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에 와 다시 고민하면, 결코 그렇지 않았다. 문장 구성에 있어, 자모음 하나, 조사 하나를 선택 할 때에도, 언제나 어떤 고민 속에 있었다.
이 글을 시작하며 예로 든 것처럼, “~했군요”를 사용할지 “~했네요”를 사용할지에 있어 언제나 망설였다. “정말 그렇군요”라고 적을지 “정말 그렇네요”라고 적을지와 같은 고민 앞에서, “그렇군요”라고 썼다가, 슬그머니 지우고 “그렇네요”라고 바꾸는 식이다. 어떤 의미에선 그렇게 고민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많은 (혹은 적지 않은) 트랜스젠더들이 고민하는 경험들과 궤를 같이 하는 지점이다. 다른 mtf/트랜스여성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한국사회에서 “여성”이라고 불리는 어떤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고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를 공유하는 경우가 있다. 일테면 이마가 둥글다거나, 문장을 읽을 때 끝을 살짝 올린다거나, 하는 식이다. 이마가 둥글지 않은 사람도 많고, 문장을 읽으며 반드시 끝을 올리진 않지만, 이런 관찰과 행동은, 끊임없이 자신이 주장하고 “증명”해야 하는 맥락의 효과/결과이다. 소위 mtf/트랜스여성의 “과잉 여성성”이나 ftm/트랜스남성의 “과잉 남성성”은 이런 맥락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크고, 그렇기에 끊임없이 어떤 행동들을 관찰하고 그런 관찰 속에서 자신의 행동 유형을 만들어 간다.
(조금 다른 의미에서 재밌는 건, [트랜스아메리카]의 경우, 브리를 연기한 배우는, mtf/트랜스여성이라고 불리는 어떤 이미지, 행동 유형을 재현하는데, 이를 통해 mtf/트랜스여성의 “여성성” 뿐 아니라 소위 말하는 “여성성”까지 패러디하며 “여성성”의 구성을 보여준다.)
루인은 이런 강박이 별로 없다고 스스로 착각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Run To 루인]에 글을 쓰면서, 이곳에서 루인을 표현하는 방법은 문장이라는 점에서, 언제나 이런 강박 속에서 글을 썼다. (어딘가에 기고한 글, 혹은 어쨌거나 “논문”이라는 형식을 취하는 글을 읽을 때의 이미지는 또 다르긴 하지만.) 물론 루인은 조사는 물론 쉼표의 유무와 그 위치에 따라 완전히 미치는 인간이긴 하다. 며칠 전부터 메모를 해두고 써야지 하다가 결국 완성하지 않은 한 글에서도 적었듯, 일테면 왜 “이”가 아니라 “가”를 썼을까하는 의문에서부터 시작해서 쉼표를 여기가 아니라 저기에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와 같은 걸로 고민하기 시작하면 결국 아무 것도 못하고 미치곤 한다. (그래서 루인의 글을 퇴고할 때면 전체적인 맥락을 잡는 것과 함께 이런 지점도 따지는 편이고, 출판한 글에서 이런 문제가 걸리면 한동안 그 글을 안 읽는 편이다.) 물론 상대방은 아무 의미 없이 그렇게 쓴 경우가 대부분이다. -_-;; (이러니 혼자 있다고 심심하지는 않다;;;)
아무튼, 이런 강박 속에서 문장을 구성하는 와중에, 여전한 강박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편하게 쓰기 시작한 건, 순전히 토룡마을 (이웃)주민들 덕분이다. 최소한 이런 이미지(성별에 있어)로는 비치고 싶지 않다는 바람은 매번 문장을 구성하는 순간순간 갈등하는 문제이지만, 문장을 구성하는 방식을 통해 어떤 식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구성할 수 있는지와 함께, 루인이 어떤 식의 강박 속에서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지의 단면을 깨달은 건, 토룡마을 (이웃)주민들은 너무도 잘 알겠지만, 토룡마을을 놀러 다닌 결과랄 밖에. 그래서 아무리 바쁘다 해도 블로그를 멈출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뭔가 글이 시작과 끝이 달라도 너무 다른 상황인데-_-;; 아무려나, 그래서 문체라는 건, 말 그래도 그런 문장을 구성하는 사람의 어떤 지점과 고민을 보여주는 한 방식일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배수아는 “타인의 말 한 문장 한 문장에 집착하여 총체적인 비판을 날릴 수 있는 용기의 근저에는 대개 한 인간이 그의 한 마디 발언을 통해서도 이 세계의 모든 정신을 빈틈없이 한꺼번에 반영해야 한다는 무리한 전제가 숨어 있는 듯하다.”고 비판했고(문맥상으론 조롱의 의미도 있고), 이런 비판이 의미가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론 하나의 문장 속에 그 사람이 의도했건 아니건 그 사람의 어떤 고민이 담길 수도 있는 일이다. 따지고 보면 이 소설에서 배수아의 문장은 정말이지 하나하나 꼼꼼하게 사용하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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