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비오는 날, 고양이

비가 내라던 금요일 오후,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자동차 아래에서 하얀 고양이가 쓰레기 봉투를 향해 걸어나왔다. 비에 흠뻑 젖은 고양이는 배가 고픈지 쓰레기 봉투를 살폈다. 잠시 살피다 그 자리에서 멈췄다. 하얀 고양이는 쓰레기 봉투 근처서 다른 뭔가를 바라듯 가만히 서 있었다. 바라는 냄새가 나지 않는 듯, 가만히 서 있었다.

1년도 안 된 냥이 같았다. 바람보다 덩치가 작았다. 집사가 먹을 것을 챙겨줘서 살이 붙은 고양이와 길에서 먹을 것을 직접 찾아야 하는 고양이의 덩치를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어쩌면 바람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고양이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지나가니 도망갈 법도 한데 그러지 않았다. 가만히 서 있었다. 비를 맞으며 가만히 서 있었다. 안쓰러웠다. 안타깝게도 내겐 줄 만한 무언가가 없었다. 요즘은 길고양이를 만날 일이 없어 뭔가를 챙기는 일이 없다. 뭔가를 챙겨 다닌다고 해도, 장보러 가는 길이었기에 빈손이었으리라. 하얀 고양이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난 그저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냥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비를 맞으며 뭔가를 찾는 고양이. 사실 납치하고 싶었다. 아주 잠깐 ‘저 녀석을 잠시 납치할까’라는 고민을 했다. 집과 가까웠다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집과 멀었다. 같이 살 것도 아닌데 함부로 낯선 곳으로 데려가는 것도 못 할 일이다. (현실적으로 한 손에 우산, 한 손에 장바구니라 잡치할 여력도 없었다.) 그 고양이가 나와 같이 살 의지가 있어도 내가 그럴 여력이 안 된다. 그저 나 혼자 안타까워 쉽게 떠나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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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리카는 요즘 정말 밥을 안 먹는다. 하루에 사료 25알 정도 먹나? 오랜 만에 종일 집에 있으면서 살피니 새벽부터 저녁까지 사료를 단 한 알도 안 먹고 있다. ;ㅅ; 조금 있다가 손에 올려서 주면 몇 알 먹고 말겠지. 작년처럼 연례행사이길 바랄 뿐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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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본 조금 웃긴 장면… 아 아프겠지만 웃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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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리카와 1년

처음엔 고양이가 무서웠다. 고양이는 좋아했지만 막상 함께 살기로 했을 땐, 무서웠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어떤 식으로 동거를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함께 살겠다는 연락을 하고서도 그 연락을 물리고 싶었다. 리카를 임보하고 있던 집도 더 좋은 집을 물색하고 있었다는 얘길 들었을 때, 리카에게 미안하기도 했고 아쉽기도 했다. 나보다 더 좋은 집을 찾아 갔다면 리카는 더 행복하고, 나의 두려움도 없었을 텐데.
하지만 난 다시 연락을 했고 리카와 만났다. 그때가 2010년 3월 5일이다. 날씨가 조금 흐렸고 바람이 찼다. 길고양이로 살던 리카는 내게로 왔다. 임보하던 곳에서 내게로 차를 타고 오는 시간,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리카는 임시 박스에 오줌을 눴다. 몸은 좀 지저분했다. 그리고 나는 모든 것이 어색했다.
리카와 처음으로 단 둘이 남은 시간, 그 짧은 시간. 리카를 집에 들이고, 알바를 하러 가기까지 매우 짧은 시간. 모든 것이 어색하고 고양이를 무서워한 감정이 집을 채우고 있던 시간. 리카는 방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게 다가왔다.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았다. 리카는 내 무릎에 올라와 잠시 그릉거리다 내 손을 물곤 내려갔다.
나는 방안에 사료와 물, 화장실을 몰아 넣고 방문을 닫았다. 고양이도 무서웠지만, 외출했다 돌아왔을 때 리카가 문을 박차고 달아날까봐 두려웠다. 기우였다. 리카는 잠깐 문앞을 탐색할 뿐 내게서 떠나려 하지 않았다. 나의 걱정이 기우란 걸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리카와 살기 시작한 얼추 일주일 정도, 나는 리카를 방안에 가뒀다. 내가 집에 있을 땐 방문을 열어뒀지만 외출할 때면 방안에 필요한 것을 모두 넣어두곤 방문을 닫았다. 미안해서 음악을 틀어놓고 갈 때도 있었지만 이것이 무슨 소용이랴… 넓은 길에서 좁은 방으로… 리카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리카는 순했다. 나와 살던 초기, 리카는 침대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어딘가로 이동할 때면 침대를 빙 돌아갔다. 고마웠다. 미안했다. 감탄했다. 의심했다. 리카가 길고양이 출신이 아니라 집에서 버림받은 고양이라고 의심했다. 고양이가 집에서 살며 어떤 관습을 지킬 수 있는지를 깨달으며 감탄했다. 목욕을 하기 전이라 리카의 몸은 지저분했기에, 침대에 올라오지 않는 리카가 고마웠고 나의 이기심에 미안했다. 리카는 무려, 아기고양이가 침대를 놀이터 삼을 때까지 올라오지 않았다. 아기고양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지금도 침대에 올라오지 않았을까?
1년 조금 더 된 고양이로 추정하는 리카는, 여덟 아깽을 임신한 엄마고양이였다. 몰랐다. 초산이라고 추정했기에 많아야 너댓 아깽을 품었으리라, 짐작했다. 그래서 출산 2주 전부터 긴장했다. 언제 출산할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그러다 4월 초, 여덟 아이를 낳았다. 모두가 건강했다. 리카도 건강했고, 여덟 아깽도 무사히 다 살아남았다. 그 모습이 애잔해서, 혼자 울었다. 리카는 아무렇지 않은데 나 혼자 감상에 잠겨 울었다.
출산 후, 비쩍 말랐을 땐 속이 상했다. 밥을 잘 안 먹을 땐 걱정이 상당했다. 그 시절, 나는 알바와 프로젝트로 상당히 바빠 리카를 제대로 돌봐줄 수 없었다. 미안했다. 하지만 그 복잡한 상황에서 벗어날 핑계가 있다는 점에서, 가끔은 바쁜 일정이 고마웠다. 미안했다. 집에 돌아올 때면 두부를 샀다. 미역을 우린 물에 사료와 두부를 섞어 리카에게 주기도 했다. 한창 많이 먹어야 할 시기에, 먹는 게 부실해서 전전긍긍했다. 여덟 아깽에게 젖을 주려면 무척 많이 먹어야 할 텐데, 리카는 하루에 사료 한줌을 안 먹을 때도 있었다. 무서웠다.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되더라. 너무 안 먹어서 큰일이 생길 줄 알았는데, 아가들을 하나, 둘 떠나보내고 리카도 여유가 생기면서 살이 붙기 시작했다. 비쩍 마른 모습만 봐서 살이 붙은 모습을 살찐 모습을 착각하기도 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해서 어떤 모습이 좋은 것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리카는 나와 동거한 첫 번째 고양이라, 모든 것이 낯설었다. 임신했던 시절의 배가 만삭의 배가 아니라 원래 그런 것으로 보였듯,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했다.
리카와 나의 관계가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 출산 이후, 여덟 아깽이 우다다 달리던 시절, 리카와 나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경계했다. 리카가 곤란한 상황에서 나는 리카를 도와주려고 했지만 리카는 나를 공격하려 했다. 그랬다. 그 시절, 초보 집사인 나는 사소한 일에도 지쳐있었다. 리카의 감정을 살피기보단 나의 피곤함이 앞섰다. 지금은 그때가 부끄럽지만, 다시 그 시절도 돌아간다면, 아마 그때와 똑같이 행동을 하리라. 그리고 뒤늦게 나의 감정이 잘못이라고 깨닫고 태도를 바꾸리라. 그래. 그 시절에 비하면 작년 6월부터 얼추 두 달에 걸친 발정기는 그저 괴로운 시기일 뿐이었다. 만날 득음하는 리카를 판소리 대회에 보내고 싶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래. 리카가 발정기일 때, 만날 잠을 설치며 괴로웠지만 농담을 할 여유는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어느 순간 리카와의 삶이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집을 단 하루도 비우면 안 되는 줄 알았는데 이틀 정도 비워도 큰 문제가 없다는 걸 깨달으며, 내가 바쁠 땐 조금 덜 신경써도 괜찮다는 것을 깨달으며 동거생활에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두 가지 못 잊을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하나는 중성화수술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날. 마취가 덜 풀린 리카는 몇 번을 토했는데 매번 화장실에 토하려고 애썼다. 그냥 아무 곳에 토했어도 그러려니 했을 텐데 토기를 참으며 화장실까지 기어가곤 했다. 또 다른 에피소드. 언젠가 몸이 안 좋아 밥도 제대로 못 챙겨 주고 잠들었다. 새벽인가, 목이 너무 말라 잠에서 깨어나 물을 마시러 가는데 리카와 바람이 우다다 달려왔다. 배가 고프니 나를 깨울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깨어나길 기다렸다. 고마웠고 미안했다.
나의 고양이가 리카라서 정말 다행이다.
+이곳에는 처음 공개하는 사진
(내가 직접 찍은 사진을 이곳에 공개한 적도 없거니와 리카와 바람 사진을 이곳에 공개한 적도 없어서..;; )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3월 4일, 정확하게 365일 되던 날 저녁. 침대 위에서 자고 있는 리카. 아니.. 잠들려는 찰나 내가 사진을 찍어 깨운 상황이다. 흐.
사용자 삽입 이미지오랜 만에 올리는 사진이라, 바람도 함께. 🙂

[고양이] 말리, 길고양이

01
엄마고양이 리카는 여덟 아깽을 낳았다. 그 중 바람만 남고 모두 떠났다. 지난 주말, 떠나간 아깽 중 한 녀석, 말리를 만났다. 세미나를 말리네에서 했다.
집에 도착하기 전, 말리네 집사는 말리가 낯가림이 심하다고 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야 사람에게 다가온다고 했다. 하지만 집에 가니, 말리는 나와 동행에게 곧장 다가왔고, 5분 뒤엔 배틀그라운드였다는… 손에 상처를 내며 신나게 놀았다는, 뭐, 그런 흔한 이야기. 흐. 그렇다고 말리가 나를 기억했다는 것은 아니다. 나의 냄새를 기억할 리 없다. 그저 내 몸에서 어떤 고양이 냄새가 나, 낯설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말리는 같이 태어난 바람과 덩치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작은 거 같기도 하고, 큰 거 같기도 하고… 헷갈리는데, 암튼 미묘로 잘 자라고 있었다. 또 언제 만날지 알 수 없지만, 기분이 참 묘한 시간이었다. 🙂
02
어느 골목을 돌았더니, 작은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고양이는 서둘러 몸을 돌려 달렸다. 잠깐 달렸다가 뒤돌아봤다. 다시 눈이 마주쳤다. 총총 걸으며 낮은 담장 위, 화단으로 올라갔다.
무늬는 리카를 닮았지만, 덩치는 바람과 비슷했다. 기껏해야 9~10개월이었다. 추운 겨울, 녹지 않은 눈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였다. 화단에서 아기고양이가 아장아장 걸으며, 덩치 작은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무늬가 똑같았다. 아기는 기껏해야 두 달 정도 될 법했다. 그 어린 나이에 차가운 눈길을 걷고 있었다.
엄마와 자식 관계일까? 바람도 발정이 났으니 그 나이에 출산을 했다고 해서 놀랄 거 없다. 바람도 길에서 살았다면 출산을 겪었으리라. 몸 한 곳이  짠했다. 그 자리를 떠나기가 쉽지 않았다. 때마침 가방에 사료가 없어 아무 것도 줄 수 없다는 점이 미안했다. 다 어리석은 감정이다. 부디 이 추운 겨울, 별탈 없이 무사히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