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살라, 수술은 그 다음이다

얼마전 KSCRC와 변날에서 주최한 2013 LGBT 상담 컨퍼런스의 마지막 강의로 김비 님이 나왔다. 무척 반가웠고 좋았다. 김비 님의 강의를 또 듣는구나… 헤헤. 그리고 그날 꽤나 논쟁적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정말 와닿는 얘길 하셨다.

일단 살라, 성전환수술은 그 다음이다.
이 말은 오해받기 딱 좋은 내용이긴 하다. 성전환 수술은 너무 위험하니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라며, 트랜스젠더를 다소 부정적으로 대하는 사람들이 주로 할 법한 내용과 닮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이해한 맥락에선 그런 내용이 아니다. 나는 이 말을, 어떻게든 살아 남고 또 삶을 지속하는 것, 그래서 나이 들어서도 타인과 삶을 공유할 수 있기를 간S절히 바라는 태도로 읽었다. 가끔씩 트랜스젠더의 자살 소식이 들릴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 앉는 것만 같다. 어쨌든 지금 이 순간을 버티며 나이들어가면 좋겠다는 바람이 간절하다. 삶이 너무 힘들어서 죽음을 선택하는 것. 나는 죽음을 선택하는 게 나쁘다고 믿지 않는다. 그저 살아남은 자로서 느끼는 아쉬움이다. 안타깝다. 트랜스젠더 노년을 같이 모색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그래서 일단 살라,라는 말이 좋았다. 정말 좋았다.
일단 살고 봤으면 좋겠다. 그래야 나중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트랜스젠더들이 그만 죽고, 어떻게든 살면 좋겠다.

선배 활동가가 주는 든든함

대략 25년의 시간을 한 세대라고 부른다. 20-25년 정도의 시간 사이에 있은 일은 같은 세대의 경험으로 불러도 무방하리라. 하지만 개개인은 세대 구분 방식으로 시간을 인식하지 않는다. 5년 혹은 10년만 지나도 상당히 다른 세대로 느낄 때가 많다. 마치 다른 세대에 일어난 일인 것처럼. 혹은 아득한 과거의 일처럼.
아득한 과거의 일처럼 느끼는 건, 당연히 나의 감각이다. 2006년에야 퀴어 활동, 트랜스젠더 운동에 참여한 내게 그 전의 일은 먼 과거 같다. 내가 참여하지 않았던 시기의 일은 역사책 속의 일 같다. 실제 나는 2006년 이전의 일을 다양한 기록물과 구술을 통해서만 알 수 있으니, 1920년대 일과 2000년의 일은 내게 그리 다르지 않은 과거다. 2000년은 내가 살아 있었던 시기라고 해도 그렇다.그래서 한국 LGBT 인권운동이 이제 20년이라면 여전히 한 세대의 일이지만 난 그것이 두 개의 다른 세대 경험 같다. 트랜스젠더 운동 맥락에선 더욱 그러하다. 인권운동단체가 본격 등장했다는 점에서 지렁이 등장을 기준점으로 삼는다면 2006년을 세대가 나뉘는 경험의 분기점이라고 부를 수도 있으리라. 지렁이 등장 이전부터 활동한 트랜스젠더 개개인 혹은 친목 모임 성격의 공동체 경험을 이전 세대라고 부른다면(1세대는 아니다) 지렁이 이후 트랜스젠더 활동을 모색하며 등장한 이들을 새로운 세대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 지렁이보다 하리수 씨 등장이 트랜스젠더에게 더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하리수 씨 등장 이전과 이후를 기준으로 묶는 것이 더 정확하겠지만, 내 감각에선 2006년이 기준일 수밖에 없다. (이 말은 내가 2007년 차별금지법 관련 운동을 계기라 활동에 참여했다면 2007년을 기준으로 구분했을 거란 뜻이다. 그만큼 자의적 구분이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방식의 기준을 장황하게 변명(!)하는 이유는, 나도 별로 동의하지 않는 세대론을 구질구질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김비 씨의 존재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김비 씨와 나는 동시대에 트랜스젠더 인권운동을 하고 있다. 김비 씨는 현재 세대의 초기부터 활동했고 나는 그 중간에 참여한 식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김비 씨는 내게 대선배란 느낌이 강하다. 현역이지만 전설의 슈퍼스타 같은 느낌이랄까. 한 세대 전부터 활동한 존재 같은 느낌이랄까. 지렁이 이후 세대가 활동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선배로, 조언자로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강의를 들을 때면 동시대 사람이란 느낌이 드는 동시에 이전 세대의 경험과 지혜를 현재 세대에게 전해주고 있다고 느낀다. (이렇게 얘기하면 김비 씨는 싫어하실 텐데..;;;) 나이 차이의 문제가 아니다. 나와 비슷한 연배여도 2000년대 초반 혹은 1990년대 후반부터 활동에 참여했느냐 2006년 즈음부터 활동에 참여했느냐에 따라 묘하게 다른 느낌을 받는다는 점에서(내가 글로 배운 사건을 현장에서 배웠으냐 나처럼 글로 배웠느냐의 차이) 세대 이슈라면 세대 이슈일 수 있다. 물론 김비 씨와 나는 동시대에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세대다. 그럼에도 김비 씨를 앞선 세대라고 느낀다면  나보다 앞서 활동을 시작했고 여전히 힘차게 살아있어서가 더 정확한 이유겠지.
이런저런 부연을 장황하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요일에 강의를 들으며 받은 든든함 때문이다. 트랜스젠더 운동에서 이런 든든한 선배가 있다는 것, 선배로서 역할을 성찰하며 얘기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하리수 씨도 분명 소중하고 든든한 존재지만 하리수 씨 한 명 뿐이었다면 슬펐으리라. 각자 다른 식으로 트랜스젠더 이슈를 사유하는 선배가, 그것도 셀러브리티가 두 명이나 있다는 것은 행운인지도 모른다. 물론 트랜스젠더 이슈의 모든 지점에서 나와 김비 씨가 의견 일치를 이루진 않으리라. 그럼에도 중요한 발언을 하는 선배가 있다는 건 꼭 내가 지지 받는 느낌이다. 그래서 고맙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그냥 묵묵히 가는 선배가 있어서 안심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난 얼마나 운이 좋은가!
+
강의에서 가장 좋았던 구절 중 하나는 “나의 성별과 관련된 무언가를 인식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볼 때, 내게 성별은 없었다. 남자 옷을 입고 남자처럼 취급되었지만, 그것에 거부감이나 불편함도 없었으며 반대 성, 즉 여성 복장이나 취향에 대한 집착도 없었다”였다.

이것이 내가 하는 말: 시건방진 트랜스젠더

01

좀 건방지게 말하자. 나는 한국 페미니즘 운동이 성취한 인식론적 토대의 수혜자면서 바로 그 인식론에 저항해야 하는 도전자다. 페미니즘은 학제에서 비규범적 존재가 자신의 위치로 기존 학제를 다시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제공했다. 내가 아니라 나를 문제 삼는 바로 그 질문의 토대를 문제삼도록 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이성애-비트랜스젠더를 밑절미 삼는다. ‘여성’이란 토대는 여전히 견고하다. 견고할 뿐만 아니라 집요하게 고집하는 근본이다. 나는 이런 분위기와 노력에 포섭될 수도 없고 내쳐질 수도 없는 존재다. 나는 예외로는 머물 수 있지만 예외로만 머물 수 있는 존재다. 나는 예외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나는 나로 인해, 꼭 내가 아니라도 트랜스젠더를 인식하며 인식론적 토대, 존재론적 토대 자체를 바꾸길 바란다. 이것이 내가 나를 전시하고 공개하는 이유다. 내가 아니라 젠더란 범주, 여성-남성으로 나뉜 공간을 새롭게, 그리고 지금과는 다르게 상상할 수 있길 바란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이것이지 나의 편의가 아니다. 예외로 머무는 한 나는 편하지 않다. 솔직하게 말해 더 불편하다. 내가 제공 받은 편의는 나의 것이 아니라 편의를 제공하는 사람이 것이다. 내게 편의를 제공하려고 애쓴 분의 노력을 폄훼하고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그 분에겐 언제나 고마울 따름이다. 그저 그 분의 노력과 상관없이 그 행동이 의도하지 않게 유지하는 토대를 말하고 싶을 뿐이다. 내가 예외로 포섭될 때, 젠더 이분법을 유지하려는 토대는 온전한 형태로 유지된다. 세상은 여성 아니면 남성 뿐이라고 인식하는 방식은 아무런 문제 없이 그냥 유지된다. 누차 말하지만 나는 이것을 바라지 않는다.
02
가장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삶의 급진성을 사유할 것.
가장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급진적으로 사는 것이다.
03
어제 처음으로 김비 님을 뵈었다. 글은 여러 편 읽었지만 직접 뵙고 강의를 들은 것은 처음이다. 조근조근 이야기하면서도 힘이 넘치고 또 성찰이 반짝이는 말이라니!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는데 그것을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고 사회적 태도의 문제와 끊임없이 연결하는 말하기 방식은 보통의 내공이 아니었다. 다른 무엇보다 김비 님의 삶을 말로 듣는 것은 그 자체로 큰 힘이었다. 나는 그냥 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나중엔 또 어떤 식의 삶을 선택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지금 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살아도 괜찮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1990년대 후반 활자에 처음 등장하여 지금까지 꾸준히 트랜스젠더 이슈를 말하고 있어서 고마웠다. 언제나 하는 얘기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 김비 님이나 하리수 님과 같은 이가 있다는 것은 큰 힘이다. 공적 인물이 아무도 없던 시기에 무언가를 얘기하는 것과 그 이후에 등장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나는 그 이후에 등장했고 그래서 조금은 편하게 말할 수 있다.
참고로 02번의 말은 <못생긴 트랜스젠더 김비 이야기>란 책 제목과도 관련 있다. 이 얼마나 끝내주는 제목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