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한 일상이지만, 그래도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읽고 있는 책은 듀나의 [용의 이]. 예전에 월간지 시절의 [판타스틱]에 실린 “너네 아빠 어딨니?”를 재밌게 읽어, 이번에 [용의 이]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바쁜 날은 지하철을 타는 10분 정도의 시간만 읽기도 하지만, 그래도 계속 읽어나가는 힘이 있더군요. 3월이 끝나기 전에 다 읽어야 할텐데요…;;
[판타스틱]에도 실렸고, [용의 이]에도 실려 있는 단편 “너네 아빠 어딨니?”을 이번에 다시 읽으며 흥미로웠던 부분은 음악을 듣고 누구의 무슨 작품인지 맞추는 부분입니다.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제5번. 4악장 아다지에토. 레너드 번스타인. 비엔나 필하모닉. 1987년. 도이치 그라모폰.”(40쪽)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저는 책방에서 일하며 듣는 말러의 교향곡이 떠올랐습니다. 책방에 온 적이 있다면 아시겠지만, 책방에서 주로 틀고 있는 음악은 말러 아니면 쇤베르그입니다. 요즘은 거의 말러를 틀어 놓지요. 주인이 말러에 빠진 덕에 저도 말러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첨엔 제가 일하는 시간엔 제가 들을 CD를 따로 챙겼지만, 곧 가게에 있는 음악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기회니까요. 특정 작곡가의 전작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되겠어요?
아무려나 듀나의 책에 나오는 위의 구절을 읽곤, 곧 저는 가게에서 해당 앨범을 찾아 들었습니다. 확실히 익숙한 앨범이더군요. 차이라면 책을 통한 인연으로, 좀 더 반가운 느낌이랄까요? 아울러 마치 처음 듣는 것 같은 기분도 들어 재밌네요. 아무려나 같은 지휘자의 다른 녹음반, 다른 지휘자의 앨범도 있어 교향곡 5번을 세 종류로 비교하며 듣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가 어떤 음악이 나올 때, 그걸 곧장 찾아서 들을 수 있다는 건, 꽤나 행복한 일입니다. 살면서 제가 누리는 소소한 행복 중 하나고요.
네.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집은 만날 삐걱거리고, 삶은 바쁘고 또 빠듯하지만, 이렇게 소소한 재미를 찾으며 살고 있습니다. 하긴.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더 이상 무얼 바라겠어요. 하지만 이런 소소한 일상 속에서도 조용히 사라져선 월급을 받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상상을 합니다(취직이 가능하긴 할까만은..;; ). 혹은 지금까지 제가 견지했던 생활방식을 배신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상상도 합니다. 무얼 배신할지, 무얼 위반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소심한 저는 결국 배신과 위반을 상상하는 것으로 만족하겠지만, 언젠간 실천할 지도 모릅니다. 언젠간 당신이 알고 있는, 제가 알고 있는 루인이란 사람이 설마… 싶은 그런 삶을 살기 시작할 수도 있고요.
아아… 근데 이미 이곳, [Run To 루인]이란 블로그에서도 세월을 따라가며 여러 번 변했으니, 낯설지 않으실 거 같습니다. 이곳에 쓴 첫 글과 지금의 글은, 종종 전혀 다른 사람이 쓴 글 같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