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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 말하는 것
어떤 행동에 앞서 발생하는 두려움, 걱정, 불안은 내 몸에 축적되어 있고 침전물로 가라 앉아 있는 관습, 금기, ‘경험’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과정이다. 바닥에 침전물이 가라 앉아 있는 비이커의 물을 저어 침전물들이 회오리처럼 일어나듯. 두려움은 그 동안 내가 어떤 환경 혹은 관습(승인과 금기) 속에서 살았고, 어떤 규범을 요구하는 맥락에서 살았는지를 깨달을 수 있는 순간이다. 동시에 나를 둘러싼 여러 지배규범들과 만나는 순간이다.
그래서 두려움은 자신의 “나약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에 축적되어 있고 깊히 가라 앉아 있어서 없는 것만 같은 흔적들, 금기(인 동시에 승인)들과 부딪히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가 무엇을 요구하고 어떻게 할 것을 요구하는지와 부딪히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이다.
매일 아침, 옷장을 열고 무엇을 입을 지를 망설이는 과정이 이러하고 루인의 매니큐어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바라보는 과정이 이러하다. 한 편으론 매니큐어를 심드렁하게 드러내고, 다른 한 편으론 매니큐어를 한 손톱을 숨기려 한다. 루인의 몸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해석되고 있는지를 짐작하고 있기 때문에(짐작할 수 있을 뿐, 알 수는 없다), 루인의 외형과 매니큐어는 언제나 어떤 충돌을 일으키는 ‘사건’이다. 거의 매일 접하는 김밥가게 주인은 매일 루인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지만 루인의 손톱을 볼 때마다 매번 표정을 바꾸고, 그렇게 바뀐 표정을 접할 때마다 루인이 무언가를 잘못한 것만 같은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이런 감정을 느끼는 루인은 이런 루인을 바라보는 루인에게 이래저래 변명한다.
필요한 건, 허무맹랑한 “자부심”이 아니라 이 두려움을 읽을 수 있는 용기와 상상력이다. 그리하여 이 용기와 상상력, 두려움이 사실은 자부심이라고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