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리카, 5월 25일 전후의 기록

01
5월 25일 밤. 평소처럼 청소를 했다. 바닥을 닦고 화장실을 치우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냥 평소처럼 행동했다. 그러려고 노력했다.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이 정도 수치면 당장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죠…”
02
25일 수요일. 저녁 7시 55분 즈음 집에 도착했다. 고요했다. 평소라면 리카가 문앞에서 나를 기다릴 텐데 안 보였다. 전날 오후엔 세탁기 위에서 자다 내가 문을 열자 잠에서 깨지도 않은 상태로 뛰어내려 내게 오더니… 불도 켜지 않고 리카를 찾았다. 어딨니?
화장실 문과 박스 사이 좁은 공간에 웅크리고 있었다. 나를 보자, 낮은 소리로 우어엉, 울었다. 불을 켜지도 않았지만 토하는 모습이 보였다. 침을 흘리고 있었다. 시간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바로 노트북을 켜고 동물병원 전화번호를 찾았다. 평소 가던 곳은 7시 30분에 문을 닫았다. 집 근처로 검색했다. 펫토이동물병원이 나왔다. 8시에 문을 닫는다고 나와 있었다. 서둘러 전화를 했다. “며칠 전부터 밥을 잘 안 먹고, 위액 같은 걸 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는 기다리겠다고 했다.
03
언제부터였을까? 지난 16일에 리카가 밥을 잘 안 먹는다고 적었다(https://www.runtoruin.com/1809). 그때는 밥을 조금이지만 먹었다. 평소처럼 시원스레 먹진 않았지만 먹었다. 종일 아무 것도 안 먹는 것 같다고 느낀 건… 지난 21일 토요일이었나? 종일 집에 있었다. 아침부터 잘 때까지 아무 것도 안 먹었다. 평소라면 아침에 먹고 저녁에 밥을 먹는다. 그 사이 시간에 밥을 안 먹는 일은 익숙하다. 아침에 사료를 주고 밖에서 일을 보고 난 후 저녁에 집에 들어왔을 때, 리카와 바람 모두 사료 한 알갱이 안 먹은 상태일 때도 많았다. 내가 가면 그때부터 밥을 먹었다. 그래서 직접 밥을 줬을 때 안 먹는 모습을 보며 놀랐지만 그럴 수도 있겠거니 했다. 작년 이맘때도 그랬다. 육아로 한창일 때 리카는 하루에 사료 몇 알갱이로 버텼다. 외출한 상태에선 얼마나 먹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집에 있을 때 먹는 양은 매우 적었다. 밥그릇에서 사료가 줄어든 양도 매우 적었다. 그래서 같은 상황인 줄 알았다. 혹은 털갈이 시기에 우울증이 있거나 출산우울증이 있는 거 같다고, 혼자 망상했다.
토요일, 밥도 안 먹고 화장실도 거의 안 갔지만 그 이후 화장실엔 갔다. 변도 적은 양이지만 괜찮은 모양으로 누었다. 그래서 밥을 먹는 줄 알았다. 밥을 먹고 있겠거니 했다.
04
의사는 리카의 배를 한참 검사했다. 그러더니 장에 음식이 걸린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피검사를 해야 하는데, 금액을 얘기하며, 피검사를 할 것이냐고 물었다. 잠깐 당황했다. 보통은 혈액검사를 해야 한다고 말하며 당연히 하는 것 아냐? 난 하겠다고 했다. 혈액검사 결과가 나오는데 1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 검사 내용을 미리 확인한 의사가 나를 불렀다. 정확하게 언제부터 밥을 안 먹었는지 물었다. 나는 추정하건데 사나흘 정도 되었다고 말했다. 의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간수치가 너무 높다고 했다. 위험수위라고 했다. 집에 독극물이 있느냐고 물었다. 없다고 했다. 세재는 천장에 있는 싱크대에 보관하고 락스는 화장실에 보관하는데 화장실에 절대 못 들어가게 한다고 말했다. 의사는 두 가지 가능성이라고 했다. 하나는 독극물을 먹어 간수치가 급상승한 경우, 다른 하나는 일주일 이상 밥을 안 먹어서 지방간이 생긴 경우. 하지만 이 정도 수치라면 일주일 이상 밥을 안 먹어야 하기에 독극물 같다고 했다. 반박하지 않았지만, 독극물이 아니라 밥을 먹지 않아 발생한 일이라고 직감했다.
처방 방법을 알려줬다. 일단 수액을 놓아 지방간에 따른 독을 희석해야 한다고 했다. 차도가 있을 때까지 수액을 놓아야 하는데 입원을 할 때와 만날 직접 데려올 때의 비용이 다르다고 했다. 의사는 계속 가격을 알려줬다. 처음엔 낯설었고 시간이 지날 수록 신선했다.(집에 돌아와서야 그 의사의 태도가 매우 정확한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 난 일단 사나흘 정도 입원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의사는 금액을 생각하며 잠시 고민을 하더니 일단 오늘은 입원을 시키자고 했다. 당장 밤새 수액을 놓아야 한다면서.
05
리카와 바람의 중성화수술, 바람의 결석진단을 기준 삼았다. 중성화수술은 15분 정도, 결석진단과 처방도 15분 정도 걸렸다. 25일 야간에 병원에 갔을 때도 그럴 줄 알았다. 10분, 15분이면 끝날 줄 알았다.
의사는 내게 하나하나 다 확인시키면서, 하나하나 다 설명하면서 진행했다. 그리고 나의 역할을 강조했다. 수액을 놓기 위해 혈관을 잡을 때도 그랬다. 내게 붙잡고 있으라고 했다.(물론 그 시간, 의사만 있고 다른 직원은 모두 퇴근해서 없었다.) 입원시키고 나서도 나의 역할은 알려줬다. 일단 뭐라도 억지로 먹이기 위해 캔사료나 영양제를 줄 계획이라고 의사가 말했다. 난 캔사료는 준 적이 없다고 했다. 의사는 나의 말을 듣고, 그럼 영양제를 줘야겠다고 했다. 의사가 직접 주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의사는 내게 직접 주라며 방법을 알려줬다. 손가락에 묻혀서 입 안에 억지로 넣어 어떻게든 먹이라고 했다. 나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영양제를 먹이는 일은 사투였다. 먹지 않으려고 입을 앙다무는 리카와 어떻게든 먹이려고 하는 나. 나는 리카의 뒷덜미를 잡아 억지로 들어선 강제로 이빨에 영양제를 묻혔다. 그렇게라도 먹이려고 했다. 리카는 싫다고 거부했다. 침을 질질 흘리면서 거부했다(의사가 말하길, 독성이 뇌에까지 퍼져서 침을 흘리는 것이라고 했다). 침을 닦아 내면서 입 안에 영양제를 조금이라도 넣으려고 했다. 자꾸 거부해서 나는 화를 냈다. 안 먹으면 죽는다고 작게 말하며, 강압을 사용했다. 나와 15년 이상 살기 전에는 결코 보낼 수 없다고 중얼거리며 리카를 거칠게 다뤘다. 죽음을 기다리는 의지와 어떻게든 살리려고 발악하는 의지의 싸움이었다.
06
의사는 죽음이란 단어를 입에 직접 올리지 않았다. 리카의 상태를 말할 때, 위험 상황을 얘기할 때 리카가 없는 자리를 골랐다. 리카가 없는 자리에서, 검사 결과로만 보면 오늘 밤을 못 넘긴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다고 했다. 일단 사흘 정도 차도를 보자고 했다. 사흘 뒤 혈액검사를 해서 수치가 떨어지면 희망이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의사는 말을 줄였다. 정 안 되면 대학병원에 가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서울대나 건국대 병원을 알려주며, 필요하다면 소견서를 써주겠다고 했다. 그러며 혈액검사 결과 원본과 사본을 파일에 담아 건네줬다. 당연히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충 1시간 반 정도 병원에 있다가 돌아왔다.
07
의사는 항상 비용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땐 비용이 중요하지 않았다. 비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일단 살리는 게 중요했다. 집으로 돌아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청소를 했다. 바람에게 밥을 주고 메일을 확인했다. 바람에게 오늘 엄마가 입원했다고 말했지만 바람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바람은 나중에야 충격을 받았다). 평소 자는 시간에 자리에 누웠다. 바람은 그때부터 리카를 찾았다. 그 시간 같이 있던 리카가 안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듯, 평소 같지 않게 계속 울었다. 나는 평소처럼 지내고 싶었다. 뭔가 조금이라도 다른 태도를 취한다면 리카가 정말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별일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래야만 리카가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피곤했기에 쉽게 잠들 줄 알았다. 몸은 피곤한데 정신은 맑았다. 리카가 무사히 살아나길 기도하며, 누워서 한참을 뒤척이다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비용을 고민했다. 하루에 드는 비용은, 입원이건 방문이건 닷새 정도는 문제가 없을 거 같았다. 하지만 열흘 정도 걸린다면? 통장 잔고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한 달이 걸린다면? 아니다. 한 달도 가지 않는다. 그 전에 나는 파산한다. 의사가 모든 의료 행위를 설명하고, 그 전에 꼭 가격을 말한 이유를 알 거 같았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자신의 재정 상황도 충분히 고민해서 신중하게 결정하란 뜻이었다.
일단 사흘 후에 있을 혈액검사 결과를 확인하기까진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결과에 따라 두 가지 가능성만 열어두기로 했다.
08
26일 아침. 잠에서 깨어났다. 잔 것 같지 않았다. 리카가 보이지 않아 놀라진 않았다. 나보다 바람이 더 놀랐다. 태어난 이후 단 한 번도 혼자 지낸 적 없는 아이다. 알바하러 가려고 나섰을 때, 바람은 비로소 자신이 혼자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 듯했다. 바람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작은 소리로 야옹, 우는데 ‘혼자 두고 어디 가지 마’라는 말로 들렸다. ‘엄마 어딨어?’라는 말로 들렸다.
그래 안다. 리카는 이 집의 중심이다. 나와 바람이 든든하게 믿고 의지하는 기둥이다. 그런데 왜…

[고양이] 제발

검사항목: Glucose   결과: 244 / H   정상치: 63-140

검사항목: T-Cholesterol   결과: <50   정상치: 73-265
검사항목: BUN   결과: 14 / L   정상치: 17-35
검사항목: Creatine   결과: 2.9 / H   정상치: 0.7-2.1
검사항목: GOT   결과: 196 / H   정상치: 13-46
검사항목: GPT   결과: 781 / H   정상치: 29-186
검사항목: ALP   결과: 119 / H   정상치: 15-96
검사항목: T-Bilirubin   결과: <0.2   정상치: 0-0.2
아직은 울 때가 아니다. 아니, 나는 결코 울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제발 살아나… 리카…

[고양이] 비오는 날, 고양이

비가 내라던 금요일 오후,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자동차 아래에서 하얀 고양이가 쓰레기 봉투를 향해 걸어나왔다. 비에 흠뻑 젖은 고양이는 배가 고픈지 쓰레기 봉투를 살폈다. 잠시 살피다 그 자리에서 멈췄다. 하얀 고양이는 쓰레기 봉투 근처서 다른 뭔가를 바라듯 가만히 서 있었다. 바라는 냄새가 나지 않는 듯, 가만히 서 있었다.

1년도 안 된 냥이 같았다. 바람보다 덩치가 작았다. 집사가 먹을 것을 챙겨줘서 살이 붙은 고양이와 길에서 먹을 것을 직접 찾아야 하는 고양이의 덩치를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어쩌면 바람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고양이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지나가니 도망갈 법도 한데 그러지 않았다. 가만히 서 있었다. 비를 맞으며 가만히 서 있었다. 안쓰러웠다. 안타깝게도 내겐 줄 만한 무언가가 없었다. 요즘은 길고양이를 만날 일이 없어 뭔가를 챙기는 일이 없다. 뭔가를 챙겨 다닌다고 해도, 장보러 가는 길이었기에 빈손이었으리라. 하얀 고양이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난 그저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냥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비를 맞으며 뭔가를 찾는 고양이. 사실 납치하고 싶었다. 아주 잠깐 ‘저 녀석을 잠시 납치할까’라는 고민을 했다. 집과 가까웠다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집과 멀었다. 같이 살 것도 아닌데 함부로 낯선 곳으로 데려가는 것도 못 할 일이다. (현실적으로 한 손에 우산, 한 손에 장바구니라 잡치할 여력도 없었다.) 그 고양이가 나와 같이 살 의지가 있어도 내가 그럴 여력이 안 된다. 그저 나 혼자 안타까워 쉽게 떠나지 못 했다.
+
그나저나 리카는 요즘 정말 밥을 안 먹는다. 하루에 사료 25알 정도 먹나? 오랜 만에 종일 집에 있으면서 살피니 새벽부터 저녁까지 사료를 단 한 알도 안 먹고 있다. ;ㅅ; 조금 있다가 손에 올려서 주면 몇 알 먹고 말겠지. 작년처럼 연례행사이길 바랄 뿐이다. ㅠㅠ
++
방금 본 조금 웃긴 장면… 아 아프겠지만 웃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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