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참 안 가네요. 전 지난 화요일부터 “오늘이 금요일이지?”라는 착각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전에 없이 길어요. 이런 일이 거의 없었기에 낯설고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전 이제 괜찮다고 믿지만 몸은 그렇지 않은 걸까요? 그래서 하루하루가 아득한 걸까요? 그러고 보면 잠이 늘었습니다. 보통은 밤 11시에 잠들어 아침 6시에 일어납니다. 이 정도 수면이면 충분하죠. 제가 딱 좋아하는 생활 방식이고요. 요즘은 이렇게 잤다간 다음날 종일 멍하고 아침에 조는 일이 많습니다. 밤 9시 30분이나 10시 즈음에 잠들어도 아침에 일어나기 힘듭니다. 조금씩 적응하고 있다고, 이별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믿고 있는 저와 힘들어 하는 제가 충돌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저는 괜찮다고 믿는 저만 인식하며 이제 괜찮다고 믿지만, 제 몸은 둘 사이에서 갈등하는 건지도 몰라요. 결국 제가 모르는 곳에서 제가 슬퍼하거나 힘들어하는 걸까요?
주말엔 종일 집에서 방콕하기로 했습니다. 원래는 LGBT 영화제(SeLFF)에 가려고 했습니다. 끌리는 작품이 몇 편 있거든요. 하지만 관두기로 했습니다. 리카가 입원했을 때부터 바람과 종일 함께 지낸 날이 없어서요. 바람은 제가 외출했다 돌아오면 구석에 숨어 있습니다. 고양이는 구석을 좋아한다지만 리카가 있을 땐 이정도는 아니었지요. 그나마 제가 집에 들어와 더 이상 외출하지 않을 거란 의사를 확인하고서야 기어나옵니다. 이번 연휴엔 종일 집에 머물며 바람을 괴롭히기로 했습니다. 물론 나중엔 제가 귀찮겠지요. 어쩌겠어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혼자 지낸 적 없는 바람에겐 꼭 필요한 시간이니 조심스레 보내야지요.
사실 전… 죽음에 익숙한 줄 알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장례식에 참가할 일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무덤덤하게 보낼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아니더군요. 애정의 정도, 애착의 무게에 따라 다르더군요. 그리고 제가 지금 어떤 감정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울고 싶은지, 슬픈지, 그냥 괜찮은지, 깔깔 웃고 싶은지, 아무렇지 않은데 울고 싶다고 믿는 건지, 이미 울고 있는 건지, 아무렇지 않은지, 숨고 싶은지… 제 감정이, 제 몸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혼자 있을 공간이 없는 점도 조금 아쉽습니다. 고양이와 동거하기 전, 집은 온전히 저 혼자 머무는 공간이었습니다. 고양이와 동거한 이후, 혼자 있을 곳이 없습니다. 아울러 떠난 리카를 애도하기에는 살아 있는 바람이 신경 쓰이고 바람을 신경 쓰기엔 떠난 리카가 신경 쓰여 제 감정이 어떤 모습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습니다. 리카를 애도하다가도 제 슬픔이 바람에게 전염될까봐 서둘러 감정을 수습하고 있습니다. 바람이라고 모르겠습니까만… 어리석은 저는 헤매고 있네요.
리카가 떠난 후 좋아진 게 딱 하나 있습니다. 집에서 사고를 쳤을 때 범인이 누군지 분명하게 가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작년 가을부턴가.. 바닥 장판을 물어뜯는 녀석이 있습니다. 이빨로 마구마구 물어뜯어 난장판으로 만들었죠. 전 바람을 의심했지만 확증할 수 없었습니다. 얌전한 고양이가 집사 없을 때 사고친다고 리카가 범인인데 바람에게 화내면 바람이 억울할 테니까요. 근데 어제 밤, 바람이 바닥 장판을 물어뜯은 흔적을 발견하고선 “역시 바람이 범인이군..”이라고 구시렁거렸습니다. 첨엔 엄청 속상했지만 그 다음부턴 그냥 넘어갑니다. 집이 재개발되기만 바랄 뿐입니다. 재개발 안 되면 낭패인 상황이랄까요.. (물론 집값 상승없이 5년은 버텼으면 하지만요..)
제가 리카와 만나 겪은 일을 어떤 만화나 소설, 영화에서 접했다면 참 통속적이라고 구시렁거렸을 법합니다. 화장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리카와 겪은 일을 단편소설로 꾸미면 재밌겠다는 상상을 잠시 했습니다. 물론 제 능력 밖의 일이죠. 저 대신 다른 누군가가 단편소설로 쓰면 좋겠다 싶었지만.. 이보다 더 통속적일 수 없겠다 싶어요. 물론 통속적이지 않은 인생이 어디있겠느냐만… 신파가 아닌 관계가 어디있겠느냐만… 초보집사가 겪었다고 하기엔 사건이 너무 몰려있달까요. 물론 저보다 사연이 훨씬 많은 집사는 세상에 넘치겠죠. 그러니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일 없을 겁니다.
아무려나 이별 이야기는 이제 그만 쓸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