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닷새 동안 영문으로 110쪽 정도 읽었다. 얇은 단행본이면 한 권 분량이지만, 지난 8월부터 질질 끌다가 올해를 넘기면 안 되겠다는 위기감에 서둘러 읽었다. 닷새 동안 110쪽이면 많은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하루에 20쪽 정도 읽었을 뿐이다. 20쪽이면 학술지에 실린 논문의 평균 분량에 지나지 않는다. 적어도 석사 3학기 이상이면 평소 읽는 분량의 평균치다. 책은 280쪽 가량인데, 9월에 다 읽겠다고 다짐하고선 12월에야 다 읽었으니 나도 참 게으르다.
지난 24일, 110쪽 정도 남은 분량을 올해 다 읽겠다고 다짐했을 때만 해도 힘들 거라고 짐작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 그 만큼 게을렀고 공부를 안 했다는 뜻이다. 하루에 고작 10~20쪽 분량이 많다고 겁을 먹다니, 반성할 일이다.
책은 미국 트랜스젠더 역사를 섹스-젠더 개념의 변화로 짚은 내용이다. 미국 트랜스젠더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꼭 읽어야 하는 두 권 중 한 권인데 이걸 이제야 다 읽었다는 점도 반성할 일이다.
다 읽고 나서, 저자를 질투했다. 이런 끝내주는 책을 쓰다니. 나도 언젠가 이와 같은 책을 쓰리라고 다짐했지만, 과연…
02
얼마 전, 김원일의 소설을 읽었다. 번역문이 아닌 문장을 읽고 싶었다. 책장에 마침 김원일이 있기도 했고, 김원일의 문장이 괜찮아 망설이지 않고 골랐다.
첨엔 달았다. 문장이 이렇게 달고 또 맛있을 수가 있을까 싶었다. 그동안 내가 어떤 문장을 읽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뒤로 갈 수록 문장보단 내용의 비중이 커졌다. 그리고 지겨웠다. 단편집인데 실린 단편마다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다. 어떤 단편에선 설교를, 혹은 주장을 하고 있다. 간신히 다 읽었다. 문장은 좋았고 내용은 좀 그랬다고 결론내리면 될까?
아, 읽은 단편집은 [오마니 별].
03
미야베 미유키의 고전 시리즈를 읽기로 하고선 못 읽고 있다. 고전시리즈 중 세 번째로 읽은 [메롱]이 마지막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통스러워서. 에도 시리즈의 다른 책을 읽을 때부터 감지하다가 [메롱]에서 확인했다. 현대물과 달리 고전물엔 ‘고통’이란 키워드가 작품 전반을 아우른다. 읽는 내내 힘들었다. 작품이 재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읽는 내내 이상하게도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더 못 읽고 있다. 언제 즈음 다시 읽을 수 있을까? 아니, 다시 읽는 것은 어렵지 않을 듯하다. 연달아 읽기는 힘들 듯하다.
04
그 와중에 앤 클리브스의 [레이븐 블랙]을 읽었다. 영국 추리 소설. 이거, 재밌다. 일본 추리소설만 읽다가 영국의 후더닛 소설을 읽으니, 묘하게 새로운 맛도 있고.
매그너스에게 감정이입하며 읽었는데 다른 사람은 어떠려나.
05
새해엔 책을 분양해야겠다. -_-;; 이번엔 진짜 과감하게 분양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