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흥미로운 글을 발견했다.
파니 “시스젠더 몸의 탄생 : <미녀는 괴로워>가 젠더경합을 무마하는 방식에 대하여”
내 이름이 자주 등장하여 쑥쓰럽지만 흥미롭고 또 잘 쓴 글이라 여기에 슬쩍 링크.
영화 <미녀는 괴로워>를 시스젠더 몸/범주의 탄생으로 재해석한 글인데, 이 영화를 매력적으로 본 나로선 이 해석이 무척 좋다. 읽으며 ‘그래.. 그렇지’하며 감탄하기도 했다. 이렇게 흥미로운 해석을 이제야 읽다니!
물론 몇 군데 선뜻 동의하기 힘든 구절도 있다. 예를 들어 “모든 젠더 (정)체화 과정은 규범을 불안정하게 패러디하며 몸을 변형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든 젠더주체는 트랜스-젠더가 된다.”라는 구절이 그렇다. 문단의 논의 맥락에선 이 구절이 문제가 없다. 아울러 “트랜스젠더”가 아니라 “트랜스-젠더”라고 표기하고 있기도 하고. 그럼에도 모든 주체를 트랜스젠더 주체로 재해석할 때, 나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링크한 글의 문제란 뜻이 아니다). 이를 테면 성전환수술로 분류되는 일련의 의료적 조치를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떻게든 다른 경험을 한다. 자신을 트랜스젠더로 분류하며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이 세상과 조우하는 방식도 분명 다르다. 그런데도 ‘모든 젠더 주체는 트랜스젠더다’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면 의료적 조치를 선택한 트랜스젠더가 겪는 또 다른 경험이 희석되거나 누락되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갈등한다. 서로를 분리하지 않으면서, 그럼에도 경험의 층위를 무화시키지 않는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
사실 이 글을 쓰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파니 님의 글은 2010년 12월에 썼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 석사학위 논문을 인용하고 있다. …응? 어떻게 읽으신 거지? 석사학위 논문을 워낙 적게 인쇄했기에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배포했다. 아울러 도서관에서 파일 다운로드를 막았기에 읽은 사람이 정말 몇 명 없고 구할 방법도 마땅찮았다. 이 블로그에 공개한 것도 2012년 여름이었고. 그런데 무려 2010년에 쓴 글인데 석사논문을 읽으셨다니.. 어떻게 구하신 거지? 어떻게???
파니 님 블로그에 직접 여쭈려다 부끄럽기도 하고 수줍기도 해서.. 소심하게 여기에만 조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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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초면이 아니면 어떡하지… 내가 워낙 사람 얼굴과 이름 기억을 못 해서.. 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