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불연속성을 인식한다면

삶이 어쨌거나 이어진 흐름이라면, 불연속과 연속의 퀼트라고 해도 어쨌거나 이어져 있다고 이해한다면 인사는 ‘안녕하세요, 오늘 어때요?’가 아니라 ‘그래서’로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다른 말로 ‘그래서’라고 인사하지 않고 ‘안녕하세요, 오늘 어때요?’라고 인사한다는 것은 지난 밤의 안녕을 묻는 것이기도 하지만, 시간과 관계를 조금 다르게 체화한다는 뜻은 아닐까? 즉, 흔히 시간은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이해하는 태도가 상당히 널리 퍼져있지만, 시간과 관계를 단절적으로 이해하거나 체화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어제 혹은 과거 언젠가 마지막 인사를 나눈 이후 지금 다시 만나는 상대방을, 과거의 그때와 지금 이어진 존재로 이해하기보다는 시간의 단절, 혹은 공백으로 남아 있는 시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이 말은 어제의 상대와 오늘의 상대방이 동일한 존재가 아닐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은 태도일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이것은 나의 망상이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만약 관계를 맺고 있는 다양한 사람이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변할 수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면(이것을 의식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지만) 어째서 과거 특정 시점의 ㄱ과 지금 다시 만나는 ㄱ을 일치시키려고 애쓰는 것일까? 그냥 모르는 사람을 만나듯, 생전 처음 만나는 사람을 대하듯 조심해서 대하는 것은 어려운 걸까? 혹은 어제의 ㄱ과 오늘의 ㄱ과 내일의 ㄱ이 다른 사람일 수 있음을 분명하게 의식하며 관계를 엮는 건 힘든 일일까? 그냥 온갖 망상이 떠오르는 4월의 비오는 날이다.
고민의 발아점: http://goo.gl/kUddiZ

봄 꽃 지며 꽃바람 불 때 난봉꾼이 태어났다

작년 수업 시간에 쓴 쪽글입니다. 그냥 마무리해야 할 듯해서 마저 올립니다.
그나저나 요즘은 면식 수행의 길에 들어설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조만간에 자세하게..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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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0.화. 15:00-
봄 꽃 지며 꽃바람 불 때 난봉꾼이 태어났다
-루인
박철수. <학생부군신위> 1996.
임권택. <축제> 1996.
Itami Juzo伊丹十三. <장례식 The Funeral> 1984.
Takita Yōjirō滝田洋二郎. <굿’바이  おくりびと> 2009.
2012년 봄. 아버지의 장례식장. 조문실에 종일 유폐되어 있다가 잠시 밥을 먹을 때였다.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육류 중심의 장례식장 음식으로 먹을 것도 마땅찮았지만 뭐라도 먹긴 해야 했다. 점심을 먹기엔 너무 늦었고 저녁을 먹기엔 너무 이르지만 밥과 김을 챙겨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 음식 준비와 손님 맞이를 위해 고용한 분의 말소리가 들렸다, 상주가 참 정성스럽네.. 저러다가 쓰러지겠네… 내게 하는 말이었다. 조문객을 받을 때마다 내야 했던 곡소리를 지칭한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장례식을 진행한지 이틀 만에 그 분과 나는 처음 만났고 그 동안 우리가 만날 기회는 나의 곡소리 뿐이었다. 곡소리만큼은 정말 성실하게 냈었다. 목이 쉰다고 곡소리도 쉬어 가며 하라는 얘길 들을 정도로 곡소리를 쉬지 않고 냈다. 박철수 감독의 <학생부군신위>의 한 장면처럼, 복식(腹式)으로 곡소리를 냈다. 곡소리만 들으면 나는 정중하고 또 예를 갖춘 상주였다. 더 정확하게는 곡소리만 예를 갖춘 상주였다. 조문실에서 나는 가장 예의 없고 문제인, 고인의 죽음을 불행하게 만든 존재였다. 하고 다니는 꼴은 규범적 젠더에 부합하지 않으며 특정 나이에 기대하는 어떤 것도 이루지 않았다. 그러니 일하는 분과 내가 이틀 만에 만난 건, 이원젠더 규범이 야기한 성역할의 효과기도 했지만 나를 조문실로 유폐하고자 했던 유족의 욕망과 친족법의 효과기도 했다.
박철수 감독의 영화 <학생부군신위>(1996)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1996)는, 비록 영화 보는 재미를 주진 않지만 장례식을 재현하는 작품이란 점에선 흥미롭다. 두 영화는 고인의 탄생(!)부터 입관, 발인, 그리고 하관까지 장례식의 기본 절차를 차례로 정리한다. 아울러 한국 사회의 장례식장에서라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의 일부를 담고 있다. 남성 역할인 사람은 조문실에 있거나 방에 앉아 훈수를 두거나 음식을 받아 술을 마시고 있다. 여성 역할인 사람은 모두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조문객이 앉을 자리를 정리한다. 조문객은 이런 날 취해야 한다며 술을 마시고 또 밤새 화투를 친다. 어떤 조문객은 술에 떡이 되어 볼썽사나운 풍경을 연출한다. 그리고 장례식장마다 꼭 한 명은 있는 ‘난봉꾼’ 역시 두 편의 영화에 등장한다. 장례식장은 이원 젠더 규범을 재생산하는 공간인 동시에 ‘난봉꾼’을 생산하는 공간이다. 두 영화가 흥미롭다면 바로 이 지점을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축제>에서 난봉꾼 역할은 준섭(안성기)의 형이 외도로 데려온 딸 용순(오정해)가 담당한다. 데려온 딸이란 점은 다른 가족과 어울리기 힘든 이유가 되고(도대체 왜?) 용순의 화려한 화장은 장례식장에 어울리지 않게 튄다. 용순은 존재 자체로 불편하다. <학생부군신위>에서도 사실상 ‘데려온 아이’가 난봉꾼 역할을 한다.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고인을 애도하고 장례식장을 어지럽히고 차동차를 폭발시키는 등 다양한 사고를 일으킨다. 이 둘은 각자의 방식으로 고인을 애도하지만, 관습적 애도 문법에 부합하지 않고 이것은 이들을 문제적 존재로 추방한다. 내가 겪은 몇 번의 장례식에도 난봉꾼이 있었다.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삼촌의 장례식장에서 난봉꾼 역할은 내가 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난봉꾼 역할은 내가 했다. 그러니까 내가 문제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성애-이원 젠더 관습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촌의 장례식장엔 의도하지 않게 매니큐어를 하고 갔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선 머리카락이 너무 길고(그리 길지도 않았지만) 성취한 것 하나 없는 천덕꾸러기란 점이 문제였다. 그리하여 나는 장례식 질서를 깨는 존재였고 그 자리에 두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어디 갖다 버릴 수도 없는 존재였다. 장례식장에서 지켜야 할 규범적 (젠더)질서, 이 질서를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가 난봉꾼 생산의 주요 기준으로 작동한다. 그렇다고 누구나 난봉꾼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많은 장례식장에서, 술에 떡이 된 존재가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하지만 그는 그냥 내쫓기면 그만이다. 난봉꾼은 내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들일 수도 없는 존재, 즉 유족의 지위를 가지면서 고인을 애도할 권한을 주장할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 다른 말로 고인을 애도하는 규범적 절차에 따라 애도하는 행위는 난봉꾼이 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시간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슬픔이란 감정이 아니라 슬픔을 표현하는 형식, 절차다.
한국의 장례식 절차를 다룬 <학생부군신위>와 <축제>가 일본의 장례식 절차를 다룬 이타미 쥬조의 영화 <장례식>(1984)과 타키타 요지로의 영화 <굿’바이>(2009)를 만나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이것은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과 얼굴이다.
한국의 장례식장에서 슬픔은 그 표현이 격할 수록 좋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울면서, 이름을 부르면서 달려온다면 이것은 고인을 가장 절절하게 애도하는 행위로 이해된다. 그래서 유족이 슬픔을 격하게 표현하는 과정에서 그토록 중시하는 예법을 위반한다고 해도, 유족이라면 이 위반은 용인된다. 아울러 <학생부군신위>와 <축제> 모두에서 나오지만 한국의 장례식장은 떠들썩할수록 좋고, 유족의 곡소리와 울음 소리가 클수록 장례식 분위기가 난다고 평가받는다. 곡소리가 나고 식장을 가득 채울 법한 울음 소리가 날 때, 그때야 비로소 장례식장이 장례식장으로 구성된다. 장례식장이 조용하다면 이건 차분한 게 아니라 쓸쓸한 것이며 고인을 외롭게 만드는 일이다. 한국의 장례식장은 말 그대로 축제의 자리며 유족과 조문객이 안부를 묻고 인사를 나누는 만남의 장이다. 반면 영화에서 재현하는 일본의 장례식장 풍경은 차분하다. 슬픔을 표현하고 또 울지만 고인을 최대한 담담하게 보낸다. 특히 <굿’바이>에 등장하는 다양한 집안의 장례식은 고인을 애도하는 방식이 반드시 슬픔과 곡소리, 울음의 형식이어야 하는 건 아님을 알려준다. 한국의 장례식장에서 버럭 화를 내는 큰 소리가 난다면 이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지만, 일본의 장례식장에선 버럭 화를 내기도 한다. 이것은 한국과 일본이 감정 표현을 하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고인을 애도하는 감정에 어떤 형식을 부여하느냐의 차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굿’바이>에 나온 몇몇 집안처럼 좀 더 경쾌하게 고인을 애도할 수 있는 분위기가 부럽다. 슬픔의 형식, 고인을 애도하는 형식을 규정하는 한국의 분위기가 난봉꾼을 생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또한 고인의 얼굴에 있다. 한국의 가정집에서 장례식을 치를 경우, 고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제한된다. 고인은 줄곧 병풍 뒤에 머문다. 유족과 조문객은 병풍 뒤에 존재한다고 상상하는/믿는 고인을 애도한다. 병풍 뒤에 머문 고인은 얼굴을 가린 상태다(죽음은 이불이나 천으로 얼굴을 덮은 것으로 상징된다). 그리하여 유족이 아니라면 고인의 얼굴을 볼 기회가 없다. 이제 기업화된 장례식장에서 장례식을 치르면서 고인은 유족과 더 멀어졌다. 고인을 애도하는 조문실에 고인은 없다. 고인은 지하 냉동실에 잘 보관되어 있다. 유족 역시 식장에서 허락하는 시간, 정확하게는 장례 절차에 따라 고인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는 시간에만 얼굴을 볼 수 있다. 고인을 얼마나 잘 염습하는지 직접 확인할 방법도 없다.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이미 염습이 다 끝난 뒤다. 그리하여 장례식장의 유족과 조문객은 고인의 얼굴을 고인의 시신에서가 아니라 고인을 기억하는 조문객의 얼굴에서 혹은 고인과 닮은 유족의 얼굴에서 조우한다. 반면 일본의 장례식 절차는, 특히 가정집에서 장례식을 치르는 경우 유족과 조문객은 고인의 얼굴을 계속 확인할 수 있다.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인의 얼굴을 살아 생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정리하고 재현하고자 한다. 이것은 고인을 보내는 매우 중요한 절차기도 하다. 고인을 좀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건 죽음을 좀 더 가까이서 직면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인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건 삶과 죽음이 결코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삶과 함께 한다는 걸 깨닫는 경험일 수도 있다. 즉 죽음은 공포와 낯선 사건이 아니라 그냥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경험이 고인을 애도하는 형식을 좀 더 다양하게 만든 것이 아닐는지. 그리고 현대 한국 사회에서 죽음이 낯선 공포의 사건으로 느껴지기 시작하는 건, 장례식장에서조차 조문실과 고인이 완전히 분리된 상황과 무관하지는 않을 듯하다. 애도하는 자리에 죽음은 상상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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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서.. 네 편의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 장면은 <장례식>의 마지막 즈음 봄꽃이 흐드러지게 핀 모습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부산에 갔을 때는 아직 서울에 봄꽃이 피지 않았었다. 장례식과 삼우제를 지내고 서울로 돌아왔을 땐 봄꽃이 지고 있었다. 시간을 훌쩍 뛰어넘은 것만 같은 그 풍경이 내겐 인상적이었다.

시간아 멈추어라, 그리하여 흘러라: 글을 쓰는 시간

가급적 새로운 글을 쓰려고 했는데 오늘 수업과 뒷풀이로 늦게 귀가하기도 했고, 머리를 잠깐 비우고 싶기도 해서 수업 쪽글입니다. 자신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을 주제로 쓴 글입니다. 가장 행복한 시간, 그래서 영원히 변하지 않길 바라는 순간은 시간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찰나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궁금한데 여러분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언제 내가 시간적 존재라는 걸 느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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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2.화. 15:00-18:00
시간아 멈추어라, 그리하여 흘러라: 글을 쓰는 시간
-루인
며칠 전 약속시간을 기다리며 카페에 머물렀다. 비는 시간이 길었기에 책을 읽었다. 한 뼘 남짓의 광활한 페이지 어느 한 문장에서 나는 오랜 시간 갈피를 못 잡고 있던 고민의 실마리를 잡았다. ‘아, 그래, 이거였어.. 그렇지, 그래..’ 이렇게 중얼거리는 순간, 나는 그 찰나에 그대로 멈춘 느낌을 받았다. 고민의 실마리가 풀리는 그 찰나(비단 그날 뿐만 아니라) 나는 시공간에서 붕 떴다고 느꼈다. 이 찰나에 나는 시간이 멈춘 것만 같다고 느끼고, 또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이 상태가 지속되길 바란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도 좋겠다고 느끼는 순간에(사실 이런 순간은 매우 잦다) 나는 내가 시간을 사는 존재라는 점을 깨닫는다. “시간아, 멈추어라!” 외마디 비명 같기도 하고, 환희의 순간 같기도 한 이 말은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을 가장 예민하게 인식하는 찰나에서 나온다. 불가능하단 걸 알기에 간절하게 혹은 음미하듯 욕망한다.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언어와 글쓰기는 내 삶을 구원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이 문장은 두 가지 다른 시제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렇게 쓸 수밖에 없다). 나는 내 삶을 나 자신에게 설명하고자 했고 내가 처한 ‘현재’ 상황을 표현하고자 했다(이 문장은 현재시제로 바꿔 써도 무방하단 점에서 과거시제 형식을 취한 현재시제다). 또한 나는 설명과 해명을 요구 받는 삶을 살고 있다는 점에서 나에 관해, 혹은 나와 결코 같지 않지만 비슷한 점은 있는 이들에 관해 말을 하고 글을 쓴다. 나는 설명과 해명을 요구받지만 그렇다고 써야 하는 글을 쓰지는 않는다. 나는 글을 쓴다. 책을 읽고 고민의 실마리를 잡는 것만큼 혹은 그보다 더, 글쓰기는 내 삶의 행복이다.
내게 글쓰기는 과거의 시간을 ‘현재’ 순간으로 불러들이며 ‘현재’와 과거가 조우하는 찰나를 기록하는 작업이다. 이것은 내게 말하기와 글쓰기의 가장 큰 차이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말하기는 뒤늦게 느끼는 분함, 때늦은 따짐을 용인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며칠 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 일을 여러 날 지난 뒤 갑자기 화내며 따진다면 그건 대체로 황당한 일로 이해된다. 아니, ‘그때 제대로 따질 걸 왜 그냥 넘어갔을까’, ‘그때 왜 그랬을까?’라며 뒤늦게 분함을 느끼는 나 자신을 자책할 뿐이다. 분함의 대상이 원인을 제공한 상대에게서 나로 전환되는 찰나기도 하다. 하지만 글쓰기는 다르다. 글쓰기에선 언제나 과거 시간을 마치 현재 사건인 것처럼 기술할 수 있다. 아니, 더 정확하게 글쓰기는 거의 언제나 과거 사건을 기술하는 작업이며 매우 가치지향적이다. 그리고 바로 이 특징은 글쓰기를 매우 중요한 저항의 도구로 만든다. 글쓰기의 특징이라고 얘기하는 비동시성은 지배규범이 비규범적 존재를 타자화하고 박제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글쓰기의 이런 특징으로 비규범적 존재, 사회적 타자는 지배 규범에 문제제기하고 ‘역사적’ 잘못을 따질 수 있다. 누군가는 이미 지난 일을 이제 와서 말해 무엇하냐고 말할 수 있지만, 글쓰기는 이미 지난 일을 쓸 수 있고 말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하여 글을 쓰는 시간은 내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자 과거로 흘러간 시간을 직면할 수 있고 또 직면하도록 하는 순간이다.
과장하지 않고 말해서, 글을 쓰는 시간은 책을 통해 무언가를 깨닫는 시간과 함께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과장’해서 말하면 글을 쓰는 시간은 내가 구원받는 시간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일이 쉽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날은 글이 도저히 안 풀려서 온 종일 서성거리기만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어려운 순간 조차 내겐 행복이다.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감사한 일이기에, 글을 쓰면서 흘러가는 시간은 내가 행복과 구원으로 흘러가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