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부산, 공간, 성매매, 글쓰기

지난 토요일은 무려 당일로 부산에 갔다 왔습니다. 장례식이 아니면 이성애혈연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안 가는 부산인데, 무려 학회일로 갔다 왔습니다. 으하하.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갔다가 늦은 밤 기차를 타고 돌아왔더니 일요일은 헤롱헤롱. @_@ 일요일엔 그동안 참여를 못한 세미나에 참가했는데, 역시 새로운 자극은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요. 즐거웠죠.

요즘 관심이 지역 혹은 특정 공간이다 보니, 부산의 어느 역 주변도 유심히 살피는 자신을 깨달았습니다. 왜 역 주변엔 성매매 공간이 형성되는 걸까요? 이번 이태원 포럼이 끝나면 좀 더 체계적이고 폭넓은 공부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지요. 하지만 만날 하는 다짐 또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요? 흐흐. ㅠ_ㅠ

암튼 교통요지와 성매매 공간, 유흥업소 밀집의 상관관계를 다룬 논문을 아시면, 한 수 가르침 부탁할 게요. 외국 논문 중에 짧게 언급한 글을 읽긴 했지만, 한국에선 어떤 양상을 띠고 있는지 궁금해서요. 누군가가 연구를 했을 것 같기도 하고, 아직 안 했을 거 같기도 한데, 행여나 아직 안 했다면 누군가가 꼭 했으면 좋겠어요. 매우 흥미로운 주제니까요.

어제가 마감이었던 원고는 아직 안 내고 있습니다. 담당자께서 9월 말까지라도 내면 된다는 말에 이번 주까지는 어떻게든 마무리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쉽지 않네요. 사실 원고 마감을 안 지킨 게 이번이 처음이라 안절부절 못 하고 있어요. 암튼 다음 원고를 쓰기 위해서라도 이번 주엔 꼭 마무리를 지어야죠. 그나저나 허접한 내용으로 원고를 늦게 내는 것만큼 부끄럽고 미안한 일도 없는데. ;ㅅ;

이번에 쓴 글의 자세한 주제는 다음에, 일단 원고를 넘기고 나서 시간이 좀 지나면 그때 대충 얘기할 게요. 이곳을 찾는 분들은 흥미로워할 법한 내용이니까요. 키워드는 간단합니다. 이태원, 트랜스젠더, 그리고 역사/흔적.

이태원, 트랜스젠더: 흔적을 찾는 과정

저는 이태원과 트랜스젠더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작업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낯선 조합은 아니니까요. 이태원에 트랜스젠더가 많다는 식의 언설 정도는 알고 있었으니까요. 예전부터 하고 싶은 주제였으니까요. 그래서 인터뷰를 조금 하고 이것저것 찾으면 쉬울 거라고 믿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이런 예단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드러낼 뿐입니다.

우선, 현재 한국에서 이태원과 트랜스젠더란 키워드로 생산된 글이 거의 없다는 어려움이 발생했습니다. 아울러 이태원과 관련 있는 글 중에서 도움을 받을 만한 글 자체가 매우 적다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이태원과 관련 있는 대부분의 글은 관광특구란 키워드거나 이색적이고 이국적인 공간으로 소개하는 정도입니다. 자세히 분석한 글이 매우 적다는 걸, 작업을 시작한 이후에야 깨달았습니다. 이걸 깨닫고 나니 암담하더군요. (혹시 이태원과 트랜스젠더를 주제로 하는 글을 알고 있으신 분, 제보부탁!)

제가 글을 쓰는 습관은 두 가지입니다. 우선 블로깅과 같은 종류의 글쓰기는 약간의 아이디어만으로 시작합니다. 계획을 세워야 소용없고, 계획을 세운다고 해서 글이 나오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그냥 첫 문장만으로 시작하면 글은 알아서 흘러가더라고요. 그래서 글은 머리로 쓰지 않고 손가락으로 쓴다는 신념 비슷한 게 있습니다. 얼마 전엔 꽤나 흥미로운 아이디어/소재가 있었는데, 머리로는 아무리 굴려도 이야기 전개가 안 되더라고요. 항상 서두에서 막혔습니다. 그래서 일단 손으로 쓰기 시작했더니, 저도 예상하지 못 한 내용이 나오더라고요. 글쓰기란 그런 거죠. 펜을 잡는 것도, 키워드를 두드리는 것도 손이라면, 글쓰기의 뇌는 손가락 끝에 있는 게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소위 학술적 글쓰기라는 걸 한다면, 전 일단 참고문헌을 찾습니다. 제 관심주제, 쓰고자 하는 글의 주제와 관련 있는 논문들, 책들, 자료들을 찾아서 읽고 정리하길 반복합니다. 그렇게 일정한 분량이 모이면, 그때서야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저 자신의 문제의식이 명확하지 않을 땐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정리하고, 짧으나마 제 아이디어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문제의식이 분명해지니까요. 아울러 기존의 논의와 저의 입장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지형도를 그릴 필요도 있고요. 이렇게 모은 자료와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배치해서 한 편의 글을 완성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편집자’로서의 역할을 좋아하는 건지도 몰라요.

이태원과 트랜스젠더란 키워드는 후자의 방식을 채택하기로 했습니다(첫 문장만으로 시작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니까요). 현재 이태원에서 살고 있는 트랜스젠더들의 삶과 관련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선 역사 정리가 우선이었습니다. 이태원이란 공간도, 트랜스젠더란 존재도 2009년에 뜬금없이 나타난 게 아니니까요. 매우 긴 역사 속에서, 현재의 맥락이 발생하니까요. 그것이 일관성 있는 흐름이건, 단절적 흐름이건 상관없어요. 맥락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단적인 예로, 현재의 이태원을 단순히 이국적인 유흥공간으로 설명하는 건 무척 위험하죠. 이태원은 미8군 용산기지 인근에 위치한 기지촌이니까요. 기지촌이라는 성격을 빼고 이태원을 논하는 건, 일부를 설명할 수는 있어도 많은 부분을 놓칠 수 있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이태원이 기지촌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시작했습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대중가요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미8군이 용산에 있으며, 이태원 근처라는 사실 자체를 몰랐죠. 하긴, 10년을 살았던 동네의 옆 동네 이름도 모르는 인간이니, 당연한 걸까요? ;;;

암튼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추적하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자료가 없더군요. 몇 가지가 문제였습니다. 기지촌 관련 글 자체가 많은 게 아니란 것, 이태원을 다루는 글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 한국에서 트랜스젠더 이슈를 다루는 글은 더더욱 드물다는 것(트랜스젠더 이슈를 다루는 글의 상당수는 아는 사람들의 글이라는 것;;). 각각의 자료도 드문데, 이 모두를 조합하니…. *애도*

그렇다고 포기할 제가 아니지요. 직접 관련 있는 자료가 없다면 우회하는 수밖에 없죠. 옛날 책들을 무작정 뒤적이기 시작했습니다. 200~300쪽의 책에서 “게이”, “동성애”, “성전환”, “이태원”과 같은 단어가 단 하나라도 나오길 바라면서요. 나오면 다행이고 안 나오면 어쩔 수 없는 거죠. 어차피 흔적을 찾으려는 거니까요. 일례로, 1920년대 신문기사에서 “성전환”이란 단어를 찾았을 때 너무도 많은 상상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흔적 찾기란 그런 거죠. 찾는 자료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아도 뭔가를 상상할 수 있는 구체적인 토대를 찾는 거니까요.

이렇게 자료를 찾다보니, 봐야 할 자료는 방대한데, 제가 아는 지식은 일천하다는 걸 깨달았죠. 아울러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고요. 그 자료를 모두 뒤적여서 필요한 자료를 하나도 못 찾는다면, 괜히 억울하니까요. 시간제약이 없다면 괜찮지만 지금은 촉박하거든요.

암튼 이제 글을 써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얼 써야 할까요? 저는 여전히 헤매고 있습니다. 그저 이태원과 트랜스젠더란 주제로 한 권의 책을 쓴다면, 이번 글은 서론을 겸한 1장에 들어갈 내용이길 바라고 있습니다. 아울러 흔적 추적하기의 서론 격이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욕심 다 버리고 이 정도만 하려고 했는데, 이 역시 과분한 욕심이네요. 걱정만 많고 하는 일은 없는 요즘입니다.

어쨌든 이번 일로 깨달은 것 하나. 저는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도서관에서 옛날 책을 뒤적이는 걸 좋아하는 거죠. 대인기피 경향이 있으면서 지역연구를 한다는 건, 참 …. 뭐, 나름 즐거운 일이긴 합니다. ;;

트랜스젠더, 이태원, 관습

알바가 끝나면 곧장 玄牝으로 돌아가지 않고 카페에서 두어 시간 머문다. 음료를 주문하는 비용이 부담스럽지만 玄牝의 찜통 더위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다. 카페에선 후치랑 놀 수도 있고 글도 읽을 수 있지만 玄牝에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저 더위에 지쳐 널부러질 뿐.

카페에 머물 수 있는 건 저녁에 카페에 머물 정도의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알바를 한 결과다. 만약 저녁에 카페에 머물 여유가 없었다면 그냥 玄牝에 갔겠지. 아무튼 이것도 한철. 가을에도 생활비에 여유가 있을까? 알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가을이면 玄牝도 그렇게 덥지 않으니까 카페에 머물 이유가 없다. 이렇게 살아가는 걸까? 어떤 시기엔 당장 내일 생활비가 없어 전전긍긍인데 어떤 시기엔 약간의 사치도 가능하다. 그래서 불안하지만 내 삶이 이러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이태원에서 살아가는 트랜스젠더 몇 명을 만나며 재밌는 얘길 많이 듣는다. 이태원에선 별스럽지 않은 경험이 이태원이 아닌 지역에선 생경하다. 몇 해 전 신촌 근처 가게에서 신발을 고를 땐 점원의 끊임없는 간섭에 시달렸다. 그는 나의 취향을, 나의 선택을 간섭했고 통제했다. “손님, 그건 여성용이고 손님은 저쪽으로 가셔야 합니다.” 이 말은 내가 구경하고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자격을 박탈했다. 이건 한국의 여느 지역에서도 빈번한 관습이다. 그리고 나는 점원이 지시하는 곳으로 가지 않고, 가게를 떠났다. 이태원에서 내가 ‘여성용 운동화’를 고른다면? 점원은 나를 “언니”라고 부르거나, 그렇진 않아도 최소한 간섭은 하지 않는다. 이것은 문화의 문제일까, 자본 아니 돈의 문제일까? 물론 이렇게 분리해서 질문할 수 없다. 이런 저런 요소들이 뒤엉켜 있으니까.

하지만 자본의 문제라고 해도 이태원에서의 태도는 감동이다. 신촌이라고, 동대문이라고 자본의 문제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니까. 내가 무얼 팔건 점원은 돈만 벌면 그만일텐데, 점원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간섭하고 통제한다. 가게에선 바로 그들이 젠더규범의 감시자다. 그들은 나의 선택에 개입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 듯하다. 그들의 개입에 호응하지 않으면, 그들은 나의 행동에 화낸다. 하지만 이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점원의 행동은한국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개인이 타인의 행동을 통제하는 방식을 반복했을 뿐이니까. 그래서 점원들의 입장에선 그들의 행동이 문제가 아니라 나의 행동이 문제고, 골칫거리다. 이런 나의 행동을 골칫거리로 여기더라도 개입하지 않는 태도, 바로 이것이 일종의 ‘감동’이다. 한국이기 때문에 이태원에서 접할 수 있는 태도가 감동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태원은 낯설고,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이태원은 낭만적인 곳으로 변한다. 이태원이 주거공간인 이들에게 나의 태도는 매우 불편하겠지만, 가끔은 이런 낭만적인 망상이라도 해야 숨통이 트이잖아.

암튼 이태원에서 살아 가고 있는 트랜스젠더들을 만나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을 고민하는 한편, 나의 미래도 상상한다. 10년 뒤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여전히 지금처럼 끔찍할까? 지금보다 더 끔찍한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학교에 속해 있을까? 밤이면 트랜스젠더 클럽에서 알바를 하고 있을까? 아니, 살아 있긴 할까? 글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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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글에서 mtf/트랜스여성을 트랜스젠더로 썼다. 일부러 그랬다. 요즘 트랜스젠더와 관련 있는 용어들을 처음부터 다시 고민하고 있다. 예전에 한 번 쓴 적이 있는데, 만약 다시 쓸 기회가 생긴다면 상당히 다른 내용을 쓸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