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인터섹스, 치료 혹은 수술, 윤리

역시나 며칠 전 강의에서 사용하려고 메모한 내용. 비문, 오탈자 등이 난무합니다. ㅠㅠㅠ
===
한편 인터섹스의 몸을 둘러싼 수술 과정에 의료는 어떻게 개입하는가. 이 질문은 의학이 인간의 몸에 따라 어떤 윤리와 선입견으로 접근하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작업이기도 함. 의학이 사람을 살리는 작업이라곤 하지만 그 ‘살림’이라는 실천이 사회적 규범에 따른 규범화 작업이고 이에 따라 죽임 혹은 배제에 가까운, 죽임을 동반하는 ‘살림’이기도 함.
지난 강의에서 얘기했듯 인터섹스 수술은 외부성기 형태를 규범적 여성의 외성기, 규범적 남성의 외성기 형태에 맞추는 과정. 그리고 이 과정은 ‘모호’하다고 여기는 성기 혹은 섹스를 “모호하지 않게” 만드는 과정. 하지만 ‘모호’하다는 판단과 ‘모호하지 않게’ 만드는 작업은 인터섹스 본인의 의중이 아니라 의사가 느끼는 혼란, 모호하다는 선입견이 빚은 조치. 하지만 의사는, 아이의 인터섹스 성기 재구성 수술에 따른 젠더 변경이 친척의 혼란을 초래하고, 이런 혼란은 아이에게 악영향을 줄 거라고 가정하며 친척과 헤어지는 것이 인터섹스 아동을 위한 처방이라고 주장. 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수술 사실을 비밀에 붙일 것을 주장함. 아이에게 사실 대로 말하면 아이는 이 사실을 감당할 수 없을 테고 이로 인해 상당한 충격과 우울증 등 부정적 효과만 낳을 것이라고 얘기함. 아울러 의사는 종종 인터섹스의 부모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수술을 하는데, 이는 부모 역시 태아의 인터섹스란 조건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 그래서 종종 부모에게 어떤 얘기도 하지 않고 의사 임의로 수술을 시행함.
의사가 부모에게 직접 얘기할 때도, 의사는 아이의 성기관, 외부성기가 아직 다 발달하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났다는 식으로 주장하며 부모를 설득함. 소위 여성형 외부성기와 남성형 외부성기만이 규범적 형태라고 주장하고, 이런 형태만이 제대로 발달한 인간 형상이라고 주장함. 따라서 미발달 상태, 혹은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상태로 태어난 인터섹스는, 아마 이런 식의 수사는 많이 익숙할 텐데요, 외성기 수술을 통해 제대로 된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함.
그렇다면 인터섹스의 조건이 인터섹스 본인에게 건강상 부정적 효과를 줄 것인가? 의사는 인터섹스 태아가 태어나면 수술을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며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아이의 건강에 해롭고 이른 나이에 죽을 수도 있으며 불행한 삶을 살 것이라고 주장함. 그러며 수술과 이후의 적절한 의료 처방이 최선이라고 얘기함. 이런 주장에 부모는 설득될 수밖에 없고 그래서 태어나서 며칠, 혹은 몇 달 이내에 수술을 함. 그럼 이 수술은 정말 인터섹스의 건강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여기서 인터섹스 성인의 주장은 좀 다른데 ㄱ. 수술 후 어떤 성감도 느낄 수 없다고 증언, ㄴ. 인터섹스란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 것이 제 삶을 더 불행하게 만든다고 얘기함. 후자의 경우, 수술은 인터섹스의 프릭 혹은 기형 상태를 해소하기보다는 인터섹스 자신을 더욱더 기형으로 느끼게 함. 인터섹스는 타인 혹은 의사에게 동정 받으면서도 제 역사를 들을 수 없게 되면서 불행하다는 느낌을 가지며, 의사는 이를 통해 인터섹스를 심각한 기형으로 판단하고 인터섹스는 기형이어야 한다고 결정함. 의사가 인터섹스와 때때로 부모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런 기만은 인터섹스 본인에게 혼란과 부끄러움 만을 부추길 뿐. 실제 많은 인터섹스가 자신의 과거를 알 수 없는 상황, 의사의 쉬쉬하는 태도가 제 삶을 더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얘기함. 아울러 쉬쉬하는 태도에 많은 인터섹스가 비판하길, 환자가 암일 때도 당사자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의사 임의로 수술을 하느냐고 질문.
아울러 인터섹스의 ‘뭔가 좀 다른’ 외부성기 형태는 그것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는 있다고 해도 그 자체로는 겉모습이 단지 달라 보이는 것 뿐. 인터섹스의 조건은 당사자의 삶을 위협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저 인터섹스가 속한 문화를 위협할 뿐이다.
의사가 수술을 시행한 후, 그럼 인터섹스의 건강은 정말 좋아졌을까? 수술을 하지 않으면 정말 일찍 죽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서 의학 연구가 충분히 있는 것일까? 장기 팔로우업 연구를 확인한 결과에 따르면 그런 건 없다는 것이 현실. 의사는 장기팔로우업 연구를 시도하곤 하지만 대부분 몇 년 이내에 다 놓치기 마련. 그래서 수술을 겪은 인터섹스 혹은 수술을 겪지 않은 인터섹스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 이는 인터섹스에게 처방하는 표준처방이 실제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것. 표준처방이라는 것은 있지만 그것의 실질 효과에 대한 장기 연구는 없는 것이 현실.
이런 현실과 관련해서 아나스는 괴물윤리란 개념을 도입함. 예를 들어, 샴쌍둥이 태어나면 의사는 분리수술을 주장함. 분리해서 규범적 인간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 이 과정에서 한 아이는 죽을 수도 있지만 이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의학의 입장. 아나스는 이런 태도가, 샴쌍둥이는 너무 괴물스럽고 끔찍하니 그들을 규범화하기 위한 어떤 수술도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여기는 괴물윤리라고 비판함. 다른 수술 과정에선 진지하게 고려될 윤리 규정이 인터섹스나 샴쌍둥이에겐 무시됨.
이런 괴물윤리는 장애이슈에서도 매우 빈번하게 작용할 듯. 의사의 조언과 처방이 해당 당사자의 몸에 정말 적합한지, 의료적으로 증명되었는지는 논쟁적. 기존의 많은 의료적 처방은 비장애인의 몸을 토대로 삼아 이루어져 있음. 그것을 장애인에게 일방적으로 적용하거나 장애에 선입견을 가지고 적용함. 이는 저보다는 여러 분이 더 잘 알고 있고, 황지성 선생님 논문에도 잘 나와 있음. 이를 테면 장애여성이 임신하고 출산할 수 있는가의 개인적 조건과 상관 없이 장애여성은 출산해선 안 된다는 규범/선입견이 낙태와 불임시술을 의료적으로 적절한 처방이라고 주장함.

메모: 트랜스젠더, 장애, 인터섹스

01

스페이드는 젠더의 의료화를 비판하는 논문에서 장애와 트랜스젠더의 접점을 모색한다.
젠더는 인간을 인식하는 장치인 동시에 의료 진단 범주다. 젠더는 의학의 진단 범주로 등장했고, 병리현상 혹은 이상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 처음 쓰였다. 즉, 트랜스젠더의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 젠더란 범주가 필요했다. 타고났다고 여기는 몸과 일치하지 않는 자기 인식을 설명하기 위해, 내적 자기 인식을 명명하기 위해 젠더를 사용했다. 그래서 젠더는 언제나 의료병리화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트랜스젠더가 사회에 일으키는 ‘트러블’은 사회적 인식 뿐만 아니라 몸의 형태를 포괄한다. 누가 여성인가, 누가 남성인가와 같은 질문은 여성의 몸과 남성의 몸을 가르는 기준 자체를 흔든다. 하리수 씨가 여성이라면 여성의 몸을 이루는 ‘생물학적 공통 경험’은 무엇일까? 하리수 씨가 여성이 아니라 여전히 남성이라면 하리수 씨가 재현하는 여성성(혹은 어떤 다른 방식의 성성)의 물적 토대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트랜스젠더는 그 자신의 의도와 상관 없이 몸과 젠더의 관계를 재고할 것을 요구한다.
변호사인 스페이드는 젠더의 의료화를 비판하면서, 트랜스젠더가 겪는 차별을 법적으로 풀어가는 방법 중 하나로 미국장애인법을 사용했다. 이것은 미국장애인법에서 정의하는 장애 개념을 확장해서 적용했기에 가능한 전략이었다. 현재 한국의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선 불가능한 전략이다.
이 전략으로 승소한 스페이드는 장애와 트랜스젠더의 공통점을 한 가지 제시한다. 그것은 단 한 가지의 몸과 정신만을 규범으로 특권화하고 그 외의 몸과 정신은 모두 배제하는 인위적 조건을 ‘위반’한다는 점이다.
02
드레거는 몸을 규범화하는 장치 중 하나인 인터섹스의 수술 과정에서 발생하는 윤리 문제를 제기한다.
인터섹스가 태어나면 의학은 이 태아를 여성 아니면 남성에 적합한 몸이 되도록 수술한다. 이 수술은 현재 의학의 표준 처방이다. 드레거에 따르면 의사들은 인터섹스나 그 부모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며 때때로 엉뚱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 이유는 본인이나 자식이 인터섹스란 얘기를 들으면 본인이나 부모는 그 정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 하고 혼란만 느낄 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것은 의사들/의학계의 믿음이다. 많은 인터섹스 당사자와 지지자는 이를 비판한다. 이를 테면 암에 걸린 사람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상태(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면 환자는 혼란을 겪을 테니 알리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이유)로 의사가 수술을 한다면? 이것은 기본적으로 의료 윤리의 문제인데도 인터섹스에겐 기본적 의료 윤리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드레거는 비판한다.
인터섹스 관련 글을 읽고 있노라면, 의사가 얘기하는 혼란(당사자나 부모, 가족이 겪을 것으로 예상하는 혼란)이 사실은 의사 자신의 것이란 의심이 든다. 인터섹스란 존재 자체가 의사에겐 혼란스러움이란 뜻이다. 그래서 “인터섹스 조건은 당사자의 삶을 위협하지 않는다, 그것은 당사자의 문화를 위협한다.”(30)는 케슬러와 드레거의 지적은 매우 정확하다. 규범적 몸을 만들려는 기획이 인터섹스를 발명했을 뿐만 아니라 비윤리적 수술을 최상의 처방으로 만든다.
03
이것은 며칠 후에 있을 강의를 위한 메모. 더 자세한 것은 강의 때. 🙂
주제는 ‘의료기술과 비규범적 몸’이며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장애, 그리고 의료기술의 관계를 모색할 예정이나 실패할 가능성이 97.5%라 남은 2.5%에 희망을 걸어야 함… ㅠㅠ

태초의 인간은…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만들었다는 성경의 소설에 상상력을 덧붙이자면…

아담의 생물학적 기관으로 이브의 생물학적 기관을 만들었다는 얘기는 아담에게 이브의 생물학적 기관을 만들 토대가 있다는 뜻이며, 이브에겐 아담의 생물학적 기관의 일부가 있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남성에겐 여성의 생물학적 특징으로 불리는 흔적이 기본적으로 존재하고, 여성에겐 남성의 생물학적 특징이라 불리는 흔적이 기본적으로 존재한다. 그리하여 태초의 인간은 인터섹스거나 트랜스젠더였는지도 모른다, 성경에 따르면.
… 요즘 의료기술 발달과 인간이란 범주의 발명 관련 글을 읽다가 떠올린 상상. 하지만 이 상상은 20세기 초중반에 걸쳐 매우 중요한 이슈였다. 아울러 섹스와 젠더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둘러싼 중요한 이슈기도 하다. 더 자세한 것은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