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리카, 5월 27일의 기록

01
그래서 내게 온 것이냐, 이 녀석아…
02
아침,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갈 때 바람은 당황했다.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혼자란 사실에. 내가 처음 문을 열고 나갔을 땐 방에 머물렀다. 밖에서 잠깐 기다렸다. 바람이 야옹, 울었다. 문을 여니 당혹스러운 표정의 바람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 표정을 뒤로 하고 나섰다.
기분은 괜찮았다. 26일 밤, 고양이용 혈당(?)주사 덕분에 리카가 살아났기 때문이다. 자리에 앉을 정도의 기력이 났기 때문이다. 식염수와 혈당(?)을 섞은 수액을 놓고 있으니 조금씩 살아날 것이라고 믿었다. 꼬리를 시원스레 흔드는 모습을 믿었다.
오후에 특강이 있었다. 몸은 무거웠지만 티낼 수 없었다. 사실 마지막에 티가 났다. 10분 정도 일찍 끝내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일찍 리카를 만나러 가고 싶었다. 질문을 하려는 학생이 있었다. 총 두 명의 질문과 10분 더 걸린 답변. 끝나고 짐을 정리하는데 한 학생이 질문을 했다. 열심히 답변을 하고 싶었는데, 말이 잘 안 들렸다. 내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걸 내가 깨달을 정도였다. 어렵지 않은 질문인데 학생은 자신이 말을 잘 못 해서 그렇다고 변명을 하며 열심히 질문을 했다. 나는 또 열심히 들으려고 애썼다. 쉽지 않았다. 열심히 답하려고 애썼다. 쉽지 않았다. 부끄러웠다. 리카의 일과 강의는 모두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구분하고 싶었다. 구분이 안 되어 부끄러웠다.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구분이 안 되어 부끄러웠다.
03
바로 리카에게 갈까 하다 집에 들렸다. 바람을 챙겼다. 리카에게 온 신경을 쏟다가 바람이 섭섭하면 안 되니까. 자리에 앉아 잠시 쉬면서 바람과 놀았다. 그러며 고민했다. 리카가 좋아하는 아미캣을 챙길까 말까로. 혹시나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면 아미캣을 주고 싶었다. 리카가 먹지 않아도 길고양이에게도 줄 수 있으니까. 결국 챙기지 않았다. 지금은 아미캣이 아니라 끈적한 영양제를 먹을 시기니까.
전날보단 발걸음이 가벼웠다. 병원에 갔고 의사가 나왔다. 표정이 어두웠다. “상태가 많이 안 좋아요…” 걱정하는 말투. 잠시 기다렸다가 리카에게 같이 갔다. 내가 앉을 수 있도록 준비해둔 의자가 먼저 보였다. 의자에 앉기도 전에 리카가 보였다. 리카는 옆으로 누워 있었다. 이불을 덮고 수액을 맞으며 누워있었다. 코엔 튜브가 달려 있었다. 입으로 음식을 계속 안 먹을 경우 취하기로 한 조치였다. 상태가 더 안 좋았다. 구토하는 것도 힘들다는 듯 입 주변엔 굳은 침으로 털이 뭉쳐있었다. 코 끝으로 간신히 숨만 쉬고 있었다. 의사는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며 보호자의 의지에 달렸다고 말했다. 일단은 하루 더 지켜보자고 답했다. 토요일에 혈액검사를 하기로 했으니 그때까지 지켜보자고 말했다.
잠시 내려가서 다른 고객을 보고 온 의사가 말했다. 코에 튜브를 끼우면서 제대로 끼웠는지 확인하려고 엑스레이를 찍었다고. 그러며 확인했는데, 간이 매우 작았다며(거의 없다고 했던가) 이건 급성이 아니라고 했다. 오랜 시간 진행된 일이라고 했다. 나는 몇 주 정도를 떠올렸다. 그러다 몇 달 정도 걸린 것일까요,라고 물었다. 의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 고민을 하더니 1년 정도, 1년 이상 진행된 상태라고 했다. 혈액검사를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난 중성화수술할 때 기본적 혈액검사를 했다고 말했다. 날짜를 가늠하니 그것이 일 년이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럼 그 전부터 진행되었던 걸까?
04
리카 곁에 앉아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래서 내게 온 것이냐?”라고 말했다. 넌 처음부터 네 간이 안 좋은 것을 알고 내게 온 것이냐. 그런데 왜 좀 더 좋은 집에 가지 않고 고작 내게 온 것이냐. 고작 1년 정도 더 살려고 내게 온 것이냐. 그럼 더 좋은 집으로 가지 왜 나를 선택한 것이냐. 작년 그 추운 겨울을 무사히 살아 남아 여덟 아가도 무사히 출산하고 양육했으니 이제 좋은 일만 있어야 하는데, 왜.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그래서 내게 온 것이냐고, 그래서 내게 온 것이냐고… 계속 중얼거렸다. 한쪽 코로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든 수액을 받아 들이는 모습을 보며 더 잘해주지 못 해서 미안하다고 웅얼거렸다. 한때 사이가 너무 안 좋았던 일이 떠올라, 속좁은 집사라서 미안하다고 입안에서 웅얼거렸다. 좀 더 빨리 병원에 데려왔어야 했는데 너무 둔하고 너무 속편하게 믿어서 미안하다고 웅얼거렸다.
직원 한 분이 화장지를 건네주고 갔다.
05
간신히 숨쉬는 모습을 보면서 미안했다. 이렇게 목숨을 연명하려고 조취하는 게 나의 욕심인 것만 같았다. 초점을 잃은 눈을 보면서, 뇌에도 독이 들어가 경련하는 발을 보면서, 온기를 잃어가는 싸늘한 몸을 쓰다듬으면서, 내가 리카를 괴롭히는 것만 같았다. 리카는 몸에 퍼진 독에서 해방되고 싶은데 나의 욕심이 리카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만 같았다. 리카는 이미 다른 곳을 떠돌고 있는데 내가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더 붙잡고 있는 것이 잘하는 일인지, 토요일에 하기로 한 혈액검사를 진행한 후 판단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좀 더 일찍 작별하는 것이 잘 하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반쯤 감긴 눈을 보면서, 억지로 눈꺼풀을 열면서 “제발 살아나”라고 말하다가 멈추곤 했다. 이젠 정말 뭐가 잘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리를 접고 의사에게로 가서 물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건지 모르겠다고, 지금 이렇게 계속 치료하는 것이 나의 욕심인 것만 같다고. 의사도 쉽게 대답을 못 했다. 생명이라면 단 1초라도 더 살고 싶지 않겠느냐고 의사는 말했다. 의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고, 고마운 대답이었다.
06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입술을 계속 깨물었고 얼굴을 자꾸 찡그렸다. 눈을 자꾸 찡그렸다.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오며 바람을 불렀다. 바람을 부르며 그 자리에 주저 앉고 싶었다. 그럴 수 없었다. 서둘러 옷을 벗고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었다. 알콜솜으로 손을 소독하고 나서야 바람을 쓰다듬었다. 아미캣을 주고, 바람을 꼭 껴안았다. 바람에겐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별 일 없다는 듯 행동하고 싶었다.
바람은 잘 견디겠지? 그런데 바람아, 우리 이제 어떡하지?

[고양이] 리카, 5월 26일의 기록

01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저 빨리 생을 마감하는 것이 좋은 걸까, 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고 몇 년을 더 사는 것이 좋은 걸까? 문제는 이틀 뒤의 상황도 예측할 수 없는데. 그래서 리카의 눈을 바라보며 무슨 일이 있어도 힘을 내라고 말을 하면서도 마음 한켠에선 이 말을 망설인다. 정말 힘을 내는 것이 좋은 것일까?
02
26일 오후 2시가 넘은 어느 시간. 문자가 왔다. 리카의 여덟 아깽 중 가장 먼저 분양된 참의 집사, 당고였다. 리카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문자였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답장을 쓰려고 답장쓰기 메뉴를 클릭하는데, 또르륵, 눈물이 흘렀다. 무슨 상황인지 몰라 잠시 당황했다. 갑자기 눈물이 고였고 뺨을 타고 흘렀다. 그때부터 참을 수가 없었다. 참으려고 했는데, 답장을 쓰려고만 하면 눈물이 흘렀다. 리카가 위태롭다는 말을 하려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 될 거 같아 무서웠다. 울지 않으려고 했다. 병원에 입원시키고 돌아오는 길에서도 울지 않았다. 리카는 건강을 회복할 테니 걱정할 것 없다고 믿었다. 믿고 싶었다.
알바하는 곳이라 우는 모습을 보이기도 난감했다. 말로 설명할 수도 없으니까. 그래서 꾸욱 참는데도 계속 …
03
알바가 끝나고 다른 곳에 들릴까 했다. 바람이 떠올랐다. 혼자 집에 머물고 있을 바람. 혼자 있는 것이 낯설 바람. 고양이는 집사가 걱정하는 것보다 훨씬 잘 지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걱정이었다. 리카에게 온 신경이 다 쏠려 바람이 섭섭할 수도 있겠다 싶은 걱정도 했다. 아픈 고양이가 걱정이라면 아프지 않은 고양이를 보살피는 것, 어차피 이것이 사는 거 아니었나? 아픈 존재에게 마음이 더 많이 가지만 그렇다고 아프지 않은 존재에게 소홀할 수도 없는 태도. 이것이 사는 거 아니었나. 슬퍼도 슬퍼할 여유가 별로 없는 것,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것.
바람은 구석에 숨어 있었다. 지난 토요일 매트리스를 바꿀 때 충격을 받았는지 종종 구석에 숨어 지낸다. 아미캣 몇 알을 내 손바닥에 올려 먹이곤 잠시 할 일을 했다. 시간을 가늠했다. 몇 시가 좋을까?
04
병문안 가는 것이 무서웠다. 솔직히 가고 싶지 않았다. 병원 근처에서 저녁을 최대한 천천히 먹었다. 평소보다 더 오랜 시간을 들여 밥을 먹었다. 평소보다 느린 걸음으로 걸었다. 시간을 늦추려 했다.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두려웠다. 알고 있지만 마주하고 싶지 않은 어떤 상황을 직면해야 한다는 현실이 두려웠다.
의사와 만나선 리카에게로 갔다. 참담했다. 얼굴은 반쪽이었고 그 곱던 털은 거칠었다. 침과 구토로 얼굴 주변 털이 다 떡져 있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은 수액을 하나 다 맞고 새 것으로 갈았다는 점이다. 입원하려고 병원에 데려갔던 날, 리카는 수액을 거부한다는 듯 수액이 들어가지 않은 자세를 취했다. 계속해서 자세를 교정해야 했다. 병문안을 갔을 때, 수액을 새 것으로 갈았다는 말에 마음이 놓였다. 아울러 26일 낮, 혈액검사를 다시 하니 혈당이 정상치로 돌아왔다고 의사가 말했다. 입원할 당시 스트레스가 상당해서 혈당이 높았던 거 같다고 했다(혈당이 높은 것은 스트레스와 긴장 때문일 수 있다고 첫날 말해줬다). 차도는 없다고 했다.
의사는 내게 의자를 챙겨줬다. 나는 리카를 쓰다듬으며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 말을 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눈물이 흘러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른 직원이 내게 “고양이가 주인을 알아보네요. 훨씬 안정감을 느끼네요.”라고 말해 조금 기뻤다. 리카의 눈을 들여다보며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힘을 내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힘을 내는 것이 정말 좋은 것일까? 이 고통을 지연하는 것이 정말 좋은 일일까? 힘을 내라고 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없었다. 힘을 내라고 말을 하는 한 편, 병원에 데려오지 않고 집에서 조용히 명을 달리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했다. 그 만큼 안쓰러웠다. 리카가 겪고 있는 고통을 내 멋대로 질질 끌고 있는 것만 같았다. 무엇이 최선의 선택일까?
05
조용히 있던 리카는 갑작스레 ‘와’와 ‘워’ 사이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순간, 가시나무새의 마지막 울음인 것만 같아 덜컥했다.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나와 같이 있을 때 떠나는 것이니까. 하지만 갑작스레 우는 모습에 힘을 내라고 말을 했다. 그 동안 어떻게 살아온 삶인데 이렇게 갈 수는 없다고 했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여덟 아깽을 출산한 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울던 리카는 힘이 빠졌는지 자리에 누웠다. 조금 불안했지만, 나는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다시 오겠노라고 인사를 하고,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했다. 의사는 현재로선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고 있으니, 정 안 되면 코에 관을 투입해서 억지로 음식을 먹일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며 결국 리카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왔다. 바람에게 밥을 주고 쉬려고 하는데 전화가 왔다.
06
의사의 목소리가 안 좋았다. 갑작스레 리카의 상태가 안 좋다며 아무래도 데려가는 것이 좋을 거 같다고 했다. 일단 데려갔다가 다음날 상태가 좋아지면 다시 데려오라고 했다. 전화를 받고 나서 잠시 머뭇거렸다. 가고 싶지 않았다. 이동장을 챙겨 터덜터덜 걸었다. 밤새 간호해야겠지,라는 고민과 다음날 있을 특강은 어떡하나 하는 고민을 함께 했다. 특강을 하기 위해선 특강에 적합한 몸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몸은 리카를 보살필 몸과는 다르다. 정말 상황이 안 좋다면 바람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도 걱정이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리카에게 가기를 조금 망설였다. 의사가 가보라고 했다.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리카는 옆으로 눕혀 담요를 덮은 상황이었다. 작은 코로 간신히 숨을 쉬고 있었다. 눈도 못 뜨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억지로 눈을 열어 ‘제발 일어나’라고 말했지만 리카는 아무런 반응을 안 했다. 다른 고객을 검사한 의사가 올라왔다. 어떻게 조심스레 집으로 데려갈 것인가를 얘기했다. 그렇게 병실에서 데려나와 이동장에 넣었다.
“잠시만요.” 의사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몇 가지 의료도구를 가져왔다. 리카의 귀에서 피를 뽑으려고 했다. 순간 이제 명을 다해 마지막을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착각했다. 무서워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묻지도 못 했다. 리카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데려 가는 도중에 이별할 수도 있는 것 같다고 판단하며 검사를 하는 것만 같았다. 아니었다. 혈당 검사였다. 휴대용 기기로 혈압을 검사했다. 의사는 조금 안도하는 표정으로, 저혈압이라고 했다. 고양이용 혈당주사를 놓기로 했다.
다 죽어가던 리카는 혈당주사를 놓자 꼬리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갑던 몸에서 온기가 조금 돌기 시작했다. 옆으로 누워선 일어서지도 못 하던 리카는 앉는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의사는 저혈압이면 온 몸이 마비되어서 그런 거라고 했다. 그러며 수액의 종류를 바꿨다. 지금까지는 독을 희석하기 위해 식염수만 사용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먹지 않아 위험한 상태라, 식염수에 혈당을 섞은 것으로 수액을 변경했다. 그 와중에 두 번 토했다. 검은 액이 나왔다. 의사는 피라고 했다. 더 이상 토할 것이 없어 피를 토하는 것이라고 했다. 회복한다면 앞으로도 종종 피를 토할 것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좋았다. 회복만 한다면…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던 리카는, 내가 이름을 부르자 꼬리를 겪하게 흔들었다. 다시 살아난 것일까.
의사는 나를 괜히 불렀다고 미안해 하며 다시 입원해도 된다고 했다. 순간,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퇴원은 곧 마지막을 뜻했다. 입원이 희망이었다. 퇴원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 집으로 데려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이렇게 고마울 줄 몰랐다.
리카를 다시 병실에 데려다 놓았다. 저녁엔 누워만 있더니 이젠 고양이 특유의 앉은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에 희망을 가지려는 의사는 캔사료를 조금 가져왔다. 혹시나 먹을까 해서라며. 난 사료를 손가락에 조금 덜어 리카의 입에 억지로 넣었다. 혀로 핥기를 바라며, 삼키길 바라며. 하지만 이빨 사이에 둔 사료는 그대로였다. 잠깐 희망을 품었던 의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07
빈 이동장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를 고민했다. 이 비싼 돈을 들여 치료하고 있으니 무조건 살아나야 한다는 농담 같은 간절함부터, 내가 리카의 선택을 방해하고 괴롭히고 있는 것만 같은 갈등까지. 어떤 선택도 쉽지 않았다.
리카… 넌 어떤 삶을 바라는 것이니?

[고양이] 리카, 5월 25일 전후의 기록

01
5월 25일 밤. 평소처럼 청소를 했다. 바닥을 닦고 화장실을 치우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냥 평소처럼 행동했다. 그러려고 노력했다.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이 정도 수치면 당장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죠…”
02
25일 수요일. 저녁 7시 55분 즈음 집에 도착했다. 고요했다. 평소라면 리카가 문앞에서 나를 기다릴 텐데 안 보였다. 전날 오후엔 세탁기 위에서 자다 내가 문을 열자 잠에서 깨지도 않은 상태로 뛰어내려 내게 오더니… 불도 켜지 않고 리카를 찾았다. 어딨니?
화장실 문과 박스 사이 좁은 공간에 웅크리고 있었다. 나를 보자, 낮은 소리로 우어엉, 울었다. 불을 켜지도 않았지만 토하는 모습이 보였다. 침을 흘리고 있었다. 시간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바로 노트북을 켜고 동물병원 전화번호를 찾았다. 평소 가던 곳은 7시 30분에 문을 닫았다. 집 근처로 검색했다. 펫토이동물병원이 나왔다. 8시에 문을 닫는다고 나와 있었다. 서둘러 전화를 했다. “며칠 전부터 밥을 잘 안 먹고, 위액 같은 걸 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는 기다리겠다고 했다.
03
언제부터였을까? 지난 16일에 리카가 밥을 잘 안 먹는다고 적었다(https://www.runtoruin.com/1809). 그때는 밥을 조금이지만 먹었다. 평소처럼 시원스레 먹진 않았지만 먹었다. 종일 아무 것도 안 먹는 것 같다고 느낀 건… 지난 21일 토요일이었나? 종일 집에 있었다. 아침부터 잘 때까지 아무 것도 안 먹었다. 평소라면 아침에 먹고 저녁에 밥을 먹는다. 그 사이 시간에 밥을 안 먹는 일은 익숙하다. 아침에 사료를 주고 밖에서 일을 보고 난 후 저녁에 집에 들어왔을 때, 리카와 바람 모두 사료 한 알갱이 안 먹은 상태일 때도 많았다. 내가 가면 그때부터 밥을 먹었다. 그래서 직접 밥을 줬을 때 안 먹는 모습을 보며 놀랐지만 그럴 수도 있겠거니 했다. 작년 이맘때도 그랬다. 육아로 한창일 때 리카는 하루에 사료 몇 알갱이로 버텼다. 외출한 상태에선 얼마나 먹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집에 있을 때 먹는 양은 매우 적었다. 밥그릇에서 사료가 줄어든 양도 매우 적었다. 그래서 같은 상황인 줄 알았다. 혹은 털갈이 시기에 우울증이 있거나 출산우울증이 있는 거 같다고, 혼자 망상했다.
토요일, 밥도 안 먹고 화장실도 거의 안 갔지만 그 이후 화장실엔 갔다. 변도 적은 양이지만 괜찮은 모양으로 누었다. 그래서 밥을 먹는 줄 알았다. 밥을 먹고 있겠거니 했다.
04
의사는 리카의 배를 한참 검사했다. 그러더니 장에 음식이 걸린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피검사를 해야 하는데, 금액을 얘기하며, 피검사를 할 것이냐고 물었다. 잠깐 당황했다. 보통은 혈액검사를 해야 한다고 말하며 당연히 하는 것 아냐? 난 하겠다고 했다. 혈액검사 결과가 나오는데 1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 검사 내용을 미리 확인한 의사가 나를 불렀다. 정확하게 언제부터 밥을 안 먹었는지 물었다. 나는 추정하건데 사나흘 정도 되었다고 말했다. 의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간수치가 너무 높다고 했다. 위험수위라고 했다. 집에 독극물이 있느냐고 물었다. 없다고 했다. 세재는 천장에 있는 싱크대에 보관하고 락스는 화장실에 보관하는데 화장실에 절대 못 들어가게 한다고 말했다. 의사는 두 가지 가능성이라고 했다. 하나는 독극물을 먹어 간수치가 급상승한 경우, 다른 하나는 일주일 이상 밥을 안 먹어서 지방간이 생긴 경우. 하지만 이 정도 수치라면 일주일 이상 밥을 안 먹어야 하기에 독극물 같다고 했다. 반박하지 않았지만, 독극물이 아니라 밥을 먹지 않아 발생한 일이라고 직감했다.
처방 방법을 알려줬다. 일단 수액을 놓아 지방간에 따른 독을 희석해야 한다고 했다. 차도가 있을 때까지 수액을 놓아야 하는데 입원을 할 때와 만날 직접 데려올 때의 비용이 다르다고 했다. 의사는 계속 가격을 알려줬다. 처음엔 낯설었고 시간이 지날 수록 신선했다.(집에 돌아와서야 그 의사의 태도가 매우 정확한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 난 일단 사나흘 정도 입원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의사는 금액을 생각하며 잠시 고민을 하더니 일단 오늘은 입원을 시키자고 했다. 당장 밤새 수액을 놓아야 한다면서.
05
리카와 바람의 중성화수술, 바람의 결석진단을 기준 삼았다. 중성화수술은 15분 정도, 결석진단과 처방도 15분 정도 걸렸다. 25일 야간에 병원에 갔을 때도 그럴 줄 알았다. 10분, 15분이면 끝날 줄 알았다.
의사는 내게 하나하나 다 확인시키면서, 하나하나 다 설명하면서 진행했다. 그리고 나의 역할을 강조했다. 수액을 놓기 위해 혈관을 잡을 때도 그랬다. 내게 붙잡고 있으라고 했다.(물론 그 시간, 의사만 있고 다른 직원은 모두 퇴근해서 없었다.) 입원시키고 나서도 나의 역할은 알려줬다. 일단 뭐라도 억지로 먹이기 위해 캔사료나 영양제를 줄 계획이라고 의사가 말했다. 난 캔사료는 준 적이 없다고 했다. 의사는 나의 말을 듣고, 그럼 영양제를 줘야겠다고 했다. 의사가 직접 주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의사는 내게 직접 주라며 방법을 알려줬다. 손가락에 묻혀서 입 안에 억지로 넣어 어떻게든 먹이라고 했다. 나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영양제를 먹이는 일은 사투였다. 먹지 않으려고 입을 앙다무는 리카와 어떻게든 먹이려고 하는 나. 나는 리카의 뒷덜미를 잡아 억지로 들어선 강제로 이빨에 영양제를 묻혔다. 그렇게라도 먹이려고 했다. 리카는 싫다고 거부했다. 침을 질질 흘리면서 거부했다(의사가 말하길, 독성이 뇌에까지 퍼져서 침을 흘리는 것이라고 했다). 침을 닦아 내면서 입 안에 영양제를 조금이라도 넣으려고 했다. 자꾸 거부해서 나는 화를 냈다. 안 먹으면 죽는다고 작게 말하며, 강압을 사용했다. 나와 15년 이상 살기 전에는 결코 보낼 수 없다고 중얼거리며 리카를 거칠게 다뤘다. 죽음을 기다리는 의지와 어떻게든 살리려고 발악하는 의지의 싸움이었다.
06
의사는 죽음이란 단어를 입에 직접 올리지 않았다. 리카의 상태를 말할 때, 위험 상황을 얘기할 때 리카가 없는 자리를 골랐다. 리카가 없는 자리에서, 검사 결과로만 보면 오늘 밤을 못 넘긴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다고 했다. 일단 사흘 정도 차도를 보자고 했다. 사흘 뒤 혈액검사를 해서 수치가 떨어지면 희망이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의사는 말을 줄였다. 정 안 되면 대학병원에 가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서울대나 건국대 병원을 알려주며, 필요하다면 소견서를 써주겠다고 했다. 그러며 혈액검사 결과 원본과 사본을 파일에 담아 건네줬다. 당연히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충 1시간 반 정도 병원에 있다가 돌아왔다.
07
의사는 항상 비용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땐 비용이 중요하지 않았다. 비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일단 살리는 게 중요했다. 집으로 돌아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청소를 했다. 바람에게 밥을 주고 메일을 확인했다. 바람에게 오늘 엄마가 입원했다고 말했지만 바람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바람은 나중에야 충격을 받았다). 평소 자는 시간에 자리에 누웠다. 바람은 그때부터 리카를 찾았다. 그 시간 같이 있던 리카가 안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듯, 평소 같지 않게 계속 울었다. 나는 평소처럼 지내고 싶었다. 뭔가 조금이라도 다른 태도를 취한다면 리카가 정말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별일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래야만 리카가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피곤했기에 쉽게 잠들 줄 알았다. 몸은 피곤한데 정신은 맑았다. 리카가 무사히 살아나길 기도하며, 누워서 한참을 뒤척이다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비용을 고민했다. 하루에 드는 비용은, 입원이건 방문이건 닷새 정도는 문제가 없을 거 같았다. 하지만 열흘 정도 걸린다면? 통장 잔고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한 달이 걸린다면? 아니다. 한 달도 가지 않는다. 그 전에 나는 파산한다. 의사가 모든 의료 행위를 설명하고, 그 전에 꼭 가격을 말한 이유를 알 거 같았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자신의 재정 상황도 충분히 고민해서 신중하게 결정하란 뜻이었다.
일단 사흘 후에 있을 혈액검사 결과를 확인하기까진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결과에 따라 두 가지 가능성만 열어두기로 했다.
08
26일 아침. 잠에서 깨어났다. 잔 것 같지 않았다. 리카가 보이지 않아 놀라진 않았다. 나보다 바람이 더 놀랐다. 태어난 이후 단 한 번도 혼자 지낸 적 없는 아이다. 알바하러 가려고 나섰을 때, 바람은 비로소 자신이 혼자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 듯했다. 바람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작은 소리로 야옹, 우는데 ‘혼자 두고 어디 가지 마’라는 말로 들렸다. ‘엄마 어딨어?’라는 말로 들렸다.
그래 안다. 리카는 이 집의 중심이다. 나와 바람이 든든하게 믿고 의지하는 기둥이다. 그런데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