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LGBT인권포럼을 합니다.

2009 LGBT인권포럼을 합니다.
많은 참가 바라요. 🙂

주최: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www.lgbtact.org)
일시: 2009년 11월 21일 토요일 13:00-
장소: 이화여대 ECC155호(Gate2)

13:00- 등록
13:30- 전체마당: 포럼소개, 인사나누기
14:00- 그룹토론1: 지역에 기반한 LGBT 운동의 가능성과 전망
          그룹토론2: 청소년 성수수자 운동 어디로 가야할까?
16:30- 전체토론: 성소수자 정치를 만나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 리뷰를 쓰면서

01
패트리샤 힐 콜린스의 책 『흑인 페미니즘 사상』(박미선, 주해연 옮김. 서울: 여이연, 2009)의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 애초 협의한 날짜는 이미 지났지만 원고를 청탁하신 분의 말을 믿고 다음 주 중에 발송하려고요.

이 책의 리뷰는 매우 간단하게, 단 한 줄로 쓸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이제까지 읽은 페미니즘관련 책에서 당신의 언어를 찾을 수 없었거나 아쉬움이 남았다면 이 책을 읽으세요.”

미리 얘기하자면 이 책의 교정에 참여했습니다. 그래서 [Run To 루인]에 이 책 관련 글을 쓰는 게 겸연쩍기도 해요. 하지만 이런 이유로 더 애정이 가기도 합니다. 책 자체가 좋기도 하고요. 🙂

02
리뷰의 형식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른 리뷰들을 뒤적이기도 합니다. 책이 논하는 이론적 배경을 설명하고, 이런 맥락에서 해당 책의 위치를 설명하고, 이 책이 현재 어떻게 유용한지를 밝히고. 이건 리뷰나 독후감의 기본 형식입니다. 반드시 이렇게 써야 하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책의 맥락을 설명해주고 책과 리뷰를 쓰는 사람의 긴장 관계를 드러내는 식이죠. 그러니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리뷰를 쓴다면 미국에서 흑인여성의 상황, 페미니즘에서 인종 논의, 젠더와 인종을 논한 이론 개괄, 흑인 페미니즘의 현재 등이 리뷰에 들어가겠지요. 하지만 이런 관습적인 방식의 글을 쓰기에 저는 적절한 글쓴이가 아니죠. 해당 전공자도 아니거니와 이런 내용을 저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수십, 수백 명은 되니까요. 제가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리뷰를 쓰면서 미국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역사적인 맥락을 훑는다면, 적어도 저에겐 코미디입니다. 벨 훅스 조금 읽었을 뿐이고, 오드리 로드 글 몇 편 읽었을 뿐인 걸요. 사실 상 아는 것이 없죠.

이런 고민은 조금 나중에 했습니다. 흑인 페미니즘 전공자, 미국현대문학전공자, 미국흑인문학전공자, 미국 사회학 전공자, 이주와 인종 이슈 전공자들이 매우 많은 상황에서도 굳이 저에게 이 책의 리뷰를 청탁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를 먼저 고민했습니다. 아니 고민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전공자들이 쓸 거라 예상하는 글이 아닌 다른 어떤 리뷰를 바란다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사회학자나 미국문학전공자가 쓸 수 있는, 쓸 거라 예상하는 글을 바랐다면 애당초 저에게 리뷰를 요청하지도 않았겠죠. 즉, 트랜스 활동가의 맥락에서 이 책을 어떻게 읽을 수 있는가를 바랐던 거겠죠. (아…, 아닌가? ;;)

03
트랜스젠더 혹은 퀴어 활동의 맥락에서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리뷰하기. 쉬운 일은 아닙니다. 쉬운 일이 아닌 건, 제 블로그 [Run To 루인]에 쓰는 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글을 싣는 매체의 성격과 형식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요.

처음 계획은, 리뷰를 쓰는데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 글이었습니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인식론과 방법론를 밑절미 삼아, 콜린스가 한국어판 서문에도 밝혔듯, 이 책이 “배타적으로 흑인여성의 소유물로만 그치지 않”(7)고 “사람들과 대화를 촉진하는 논의”(8)로 활용하는 글쓰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문제가 있더군요. 이렇게 쓸 경우,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읽은 사람은 왜 이런 리뷰를 썼는지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읽지 않은 사람들로선 황당하겠죠. “리뷰라는데 『흑인 페미니즘 사상』은 단 한 번도 언급을 안 해? 도대체 이 리뷰와 책은 무슨 상관이지?”라는 식으로.

저의 욕심은 간단했습니다. 이 책이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에 무관할 것만 같은 이슈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도 중요하다는 것. 고민을 풀어가는 데 있어 매우 소중한 조언이 될 것이란 것. 어쩌면 활동을 하고 공부를 하는데 등대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 이런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결국 저는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봉합사 삼아 글을 풀어가기로 했습니다. 최근 제 고민들, 활동들을 엮고 꿰매는 봉합사로서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리뷰하기. 한 가지 다행인 건 그 매체가 형식 자체를 따지진 않는다는 거죠. 글쓴이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거죠. 그래서 좀 편하게 쓰고 있습니다. 수필도 아닌 것이 논문도 아닌 것이 리뷰도 아닌 것이 일기도 아닌 것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떤 형식으로.

그래도 걱정인 건 어쩔 수 없네요. 제가 나름 소심해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밀어붙이고선 나중에 벌벌 떠는 타입이거든요. 하하.

+
이 글은 옮긴이들에게 미리 변명하는 글이기도 합니다?
흐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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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쓴 관련 글
『흑인 페미니즘 사상』: 매우 짧은 리뷰
인용: 『흑인 페미니즘 사상』 + 이종태 기자의 기사

의외의 발견: 동성애 관련 논문들

예전에 전자사전을 쓰지 말고 종이사전을 사용하란 요지의 글을 읽었다. 이제는 출처도 저자도 다 잊은 글이다. 종이사전을 추천한 이유는 간단한데, 전자사전은 원하는 단어만 찾지만 종이사전은 단어를 찾으려고 페이지를 넘기는 과정에서 의외의 단어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나. 의외의 발견에 강조점을 찍은 글이었다. (잠깐 딴 소리하면, 난 전자사전을 쓰지만 종이사전을 더 좋아하는데 종이사전엔 필요한 정보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의외의 발견은 인터넷서점과 오프라인서점 혹은 도서관의 차이기도 하다. 구매를 결정한 책만 검색하는 인터넷서점에선 의외의 발견을 하는 경우는 드문 듯하다(나의 습관때문 이겠지). 물론 관련 서적을 제공하는 인터넷서점도 있지만, 그 서비스에 도움을 받은 적은 별로 없으니 생략. 하지만 오프라인 서점이나 도서관은 다른 듯. 도서관에 가면 도서반납대에 있는 책을 훑어 보는 걸 좋아한다. 내 전공서적이나 관심 도서가 있는 서가에선 대개 예측할 수 있는 책들만 만나지만, 반납대에선 의외의 책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
에 구비할 자료를 정리하는 일을 보조하고 있다. 대부분의 고생은 다른 분이 다 했고, 나는 약간의 추가 작업을 하는 정도다. 근데 이런 작업에서도 의외의 발견을 할 수 있어 즐겁다. 정리해야 하는 자료들은 모두 퀴어와 관련 있지만, 퀴어와 관련 있다고 모든 자료에 다 관심 있는 건 아니다. 평소라면 아무래도 조금 더 관심 있는 주제의 책들을 주로 읽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 권, 한 권 정리를 하다 보면 평소엔 관심이 없는 주제의 책들도 훑는 기회가 생긴다.

오늘 찾은 의외의 발견은 나치독일의 동성애 탄압과 아리안 민족성 형성의 관계를 다룬 논문이다. 자세히 읽은 건 아니고 논문요약과 목차 정도만 읽었는데 꽤나 흥미롭다. 히틀러 시대에 독일은 유대인 뿐만 아니라 동성애자, (현재의 범주로 환원해서)트랜스젠더와 크로스드레서, 집시와 같은 이들도 탄압했고 말살정책에 따라 많은 이들을 죽였다. 조일구씨가 쓴 이 논문은 그 자신이 동성애자였던 나치의 한 관리가 남성 동성애자들을 탄압하는 방식으로 독일인의 남성성을 형성하고, 이 과정을 통해 아리안족을 남성의 신체로, 남성다움으로 재현하는 과정을 밝히고 있다(고 조일구씨가 요약했다). 예전에 한국의 군입대 경험과 국민국가 형성을 탐구한 논문을 무척 흥미롭게 읽었기에, 동성애 탄압과 아리안족(더 정확하게는 독일 남성성)의 민족성 형성의 관계를 밝히는 논문을 기대하고 있다. 나중에 시간 나면, 아니 시간 내서 읽어야 할 듯. 근데 이렇게 기대하고 읽었는데 내용이 별로면 어떡하지? ;;;

다른 한 편, 국내에 있는 여러 신학대학에서 동성애를 주제로 다룬 논문이 의외로 많아 놀랐다. 워낙 보수적인 기독교의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관련 논의가 없을 줄 알았다. 근데 아카이브에서 소장하고 있는 논문만 13편 정도다! 그 중 몇 편은 대충 읽었는데, 읽다가 박장대소했다. 내용은 간단하다. 성서의 맥락에서 동성애를 죄로 여기지 않는 입장과 동성애를 죄로 여기는 입장을 개괄한 후 동성애를 죄로 여기지 않는 입장을 비판한 후 동성애는 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동성애자가 아무리 죄인이라해도 그들을 내쳐선 안 되고 감싸고 어떻게든 이성애자로 전향하도록 애써야 한다고 주장하며 적절한 목회상담 방법을 나열한다. 내가 웃었던 건, 이들의 글이 너무 진지했기 때문이다. 어찌나 진지하게 염려해 주시는지 웃는 게 미안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진지한 태도, 웃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심각하게 염려하지만, 그런 태도가 웃기다는 걸 알까? 한 가지 더 웃긴 거. 목차를 훑다가 깜짝 놀랐는데, 상당히 많은 논문들이 목차부터 내용까지 비슷하다. 미묘하게 다르고 대체로 비슷하다. 그래서 첨엔 내가 실수로 같은 논문을 다시 집은 줄 알았다. ㅡ_ㅡ;;

암튼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을 즐기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