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의 발견: 동성애 관련 논문들

예전에 전자사전을 쓰지 말고 종이사전을 사용하란 요지의 글을 읽었다. 이제는 출처도 저자도 다 잊은 글이다. 종이사전을 추천한 이유는 간단한데, 전자사전은 원하는 단어만 찾지만 종이사전은 단어를 찾으려고 페이지를 넘기는 과정에서 의외의 단어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나. 의외의 발견에 강조점을 찍은 글이었다. (잠깐 딴 소리하면, 난 전자사전을 쓰지만 종이사전을 더 좋아하는데 종이사전엔 필요한 정보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의외의 발견은 인터넷서점과 오프라인서점 혹은 도서관의 차이기도 하다. 구매를 결정한 책만 검색하는 인터넷서점에선 의외의 발견을 하는 경우는 드문 듯하다(나의 습관때문 이겠지). 물론 관련 서적을 제공하는 인터넷서점도 있지만, 그 서비스에 도움을 받은 적은 별로 없으니 생략. 하지만 오프라인 서점이나 도서관은 다른 듯. 도서관에 가면 도서반납대에 있는 책을 훑어 보는 걸 좋아한다. 내 전공서적이나 관심 도서가 있는 서가에선 대개 예측할 수 있는 책들만 만나지만, 반납대에선 의외의 책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
에 구비할 자료를 정리하는 일을 보조하고 있다. 대부분의 고생은 다른 분이 다 했고, 나는 약간의 추가 작업을 하는 정도다. 근데 이런 작업에서도 의외의 발견을 할 수 있어 즐겁다. 정리해야 하는 자료들은 모두 퀴어와 관련 있지만, 퀴어와 관련 있다고 모든 자료에 다 관심 있는 건 아니다. 평소라면 아무래도 조금 더 관심 있는 주제의 책들을 주로 읽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 권, 한 권 정리를 하다 보면 평소엔 관심이 없는 주제의 책들도 훑는 기회가 생긴다.

오늘 찾은 의외의 발견은 나치독일의 동성애 탄압과 아리안 민족성 형성의 관계를 다룬 논문이다. 자세히 읽은 건 아니고 논문요약과 목차 정도만 읽었는데 꽤나 흥미롭다. 히틀러 시대에 독일은 유대인 뿐만 아니라 동성애자, (현재의 범주로 환원해서)트랜스젠더와 크로스드레서, 집시와 같은 이들도 탄압했고 말살정책에 따라 많은 이들을 죽였다. 조일구씨가 쓴 이 논문은 그 자신이 동성애자였던 나치의 한 관리가 남성 동성애자들을 탄압하는 방식으로 독일인의 남성성을 형성하고, 이 과정을 통해 아리안족을 남성의 신체로, 남성다움으로 재현하는 과정을 밝히고 있다(고 조일구씨가 요약했다). 예전에 한국의 군입대 경험과 국민국가 형성을 탐구한 논문을 무척 흥미롭게 읽었기에, 동성애 탄압과 아리안족(더 정확하게는 독일 남성성)의 민족성 형성의 관계를 밝히는 논문을 기대하고 있다. 나중에 시간 나면, 아니 시간 내서 읽어야 할 듯. 근데 이렇게 기대하고 읽었는데 내용이 별로면 어떡하지? ;;;

다른 한 편, 국내에 있는 여러 신학대학에서 동성애를 주제로 다룬 논문이 의외로 많아 놀랐다. 워낙 보수적인 기독교의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관련 논의가 없을 줄 알았다. 근데 아카이브에서 소장하고 있는 논문만 13편 정도다! 그 중 몇 편은 대충 읽었는데, 읽다가 박장대소했다. 내용은 간단하다. 성서의 맥락에서 동성애를 죄로 여기지 않는 입장과 동성애를 죄로 여기는 입장을 개괄한 후 동성애를 죄로 여기지 않는 입장을 비판한 후 동성애는 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동성애자가 아무리 죄인이라해도 그들을 내쳐선 안 되고 감싸고 어떻게든 이성애자로 전향하도록 애써야 한다고 주장하며 적절한 목회상담 방법을 나열한다. 내가 웃었던 건, 이들의 글이 너무 진지했기 때문이다. 어찌나 진지하게 염려해 주시는지 웃는 게 미안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진지한 태도, 웃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심각하게 염려하지만, 그런 태도가 웃기다는 걸 알까? 한 가지 더 웃긴 거. 목차를 훑다가 깜짝 놀랐는데, 상당히 많은 논문들이 목차부터 내용까지 비슷하다. 미묘하게 다르고 대체로 비슷하다. 그래서 첨엔 내가 실수로 같은 논문을 다시 집은 줄 알았다. ㅡ_ㅡ;;

암튼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을 즐기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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