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기 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 2013년 3월 소식입니다.

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엔 3월에도 몇 가지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ㄱ. 일단 한국시간 3월 31일 기준으로 새 연구원이 두 분 오셨습니다. 시우 님과 이브리 님입니다.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퀴어 이슈와 이론을 공부하는 분들이란 점에서 무척 기뻐요. 두 분 모두 환영합니다! 🙂
ㄴ. 2월에 검색서비스를 개시한다고 했는데요.. 처음으로 검색서비스를 신청한 분이 계셨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습니다만… 주제가 주제인지라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내드리진 못 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제가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고 또 특정 주제의 자료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고마움과 미안함을 함께 전합니다.
ㄴ-1. 검색서비스가 필요하신 분은 언제든 연락주세요!
ㄷ. 연구소 도메인을 구입했습니다. www.transgenderqueer.com 입니다. 매우 솔직한 주소지요. 근데 아직 연구소 블로그는 개설을 못 하고 있습니다. 두어 시간만 붙어서 작업하면 되는데.. 끄응.. 최대한 빨리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ㄹ. 명함은 디자인 중에 있습니다. 담당하고 있는 모 연구원께서 많이 바쁘신지.. 좀 늦어지고 있네요..
ㅁ. 연구소에 함께 하는 분들과 무엇을 공유하면 좋을까하다가 떠오른 게 있습니다. 뭔가가 있다는 것만 얘기하지요. 이런 건 대외비! 😛
ㅂ. 퀴어 이슈로 개입할 사건이 많은 3월이었습니다. 모든 이슈에 다 개입할 순 없지만 그래도 각자 여력이 되는만큼다양한 방식으로 개입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고 있습니다. 🙂

모두에게 완자가(모완)의 윤리: 무지로 무지를 얘기하기 혹은 트랜스-바이 맥락으로 읽기 시도

참고글
ㄱ 모두에게 완자가. 82화 “트렌스젠더에 대하여”에 대하여 https://www.runtoruin.com/2138
ㄴ ‘모두에게 완자가’에 대해 어제 쓴 글에 덧붙여서[약간 추가] https://www.runtoruin.com/2139
ㄷ 이것저것 잡담: 읽은 거, SNS, 구글플러스, 모두에게 완자가(모완), 무한도전-노홍철 https://www.runtoruin.com/2140
모두에게 완자가(모완)을 논하는 글을 썼을 때, ‘이 삐리리한 삐리리한 삐리리야’라고 쓸 수도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모완을 읽으며 너무 싫어서 다시는 읽지 않겠다고 다짐하셨을 수도 있고 어떤 분은 욕을 하며 비판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텍스트를 해석하는 방법은 다르며 각자의 맥락에 따라 이를 표현하는 방법도 다양하니까요. 트랜스젠더 이슈를 다룬 82화와 83화에 문제가 있은 표현이 상당하단 점에서 저 역시 “야이 삐리리야”라는 식으로 글을 쓸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 그럴 수 없었습니다. 제 판단에 저는 그럴 위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제가 완자 작가보다 낫다고 얘기할 부분이 없거든요.
자신이 모르는 이슈, 열심히 고민하지 않은 이슈에 있어선 ‘누구나’ 미디어에서 재현하는 수준으로 얘기한다고 정희진 선생님께서 지적한 적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모든 이슈에 아무런 문제 없이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럴리가요. 어떤 이슈에서 저는, 저도 깨닫지 못하는 상태로 논쟁적이고 혐오발화일 수도 있는 말을 했을 겁니다. 제가 주로 염두에 두는 맥락에선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얘기를 한다고 해도 제가 염두에 두지 않은 맥락에선 문제가 될 발언이 상당합니다. 장애이슈에 있어선 어떤 ‘사건’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지금 떠올려도 이불 속에서 하이킥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일입니다. 제가 주로 글을 쓰고 제 전공이라고 얘기하는 트랜스젠더 이슈라고 예외일까요? 오히려 트랜스젠더 이슈에서 훨씬 더 논쟁적인 얘길 더 많이 했을 수도 있습니다. 트랜스젠더 이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얘기는 고작해야 제가 경험한 방식의 일부만 떠들 수 있을 뿐인 걸요. 저는 다른 트랜스젠더의 경험을 대표하지 않으며 다른 트랜스젠더의 경험을 대리하지 않습니다. 그저 제 경험과 역사만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저의 논의가 다른 트랜스젠더에겐 문제가 많고 혐오로 독해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완에 관한 논평을 쓸 때, 그 잣대를 저에게도 들이댈 수 있는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얼마나 잘 할 수 있나? 자신없어요. 모완보다 더 잘 할 수 있다고도 자신할 수 없습니다. ‘너는 얼마나 잘 하나 보자’는 식으로, 타인을 비평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어떻게 비평할 것인가를 얘기하고 싶습니다. 트랜스젠더가 이 세상의 최대 약자, 최대 피해자라서 모든 언설을 판단하는 기준도 아닌데, 트랜스젠더 역시 다양한 권력을 지니고 있으며 혐오발화를 하는데 감히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어요. 더구나 각자의 맥락에서 얘기하자는 건, ‘나는 이게 싫어’라는 식으로 그냥 툭 내뱉자는 게 아니니까요. 나의 감정을 정치적으로 맥락화하자는 거죠. 밑도 끝도 없이 ‘그건 혐오야’, ‘그 말이 난 불편해’라고 말하는 건, 적어도 비평적 글쓰기엔 … [그냥 생략할 게요.]
물론 사람마다 다 다른 윤리가 있기에 제 글쓰기 윤리가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진 않습니다. 그저 저는 이런 고민으로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는 거죠. 제 기준에 제가 잘 부합하는 것도 아니고요.
어쩌면 제가 모완을 1화부터 계속 읽었기에 이렇게 판단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만약 82화만 읽었다면 또 한 편의 트랜스혐오 텍스트가 나왔다며 “이 삐리리한”이라고 비판했을지도 모릅니다. 다행이라면 1화부터 읽었고 모완이란 작품의 흐름을 대충은 짐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에서 완자 작가는 자신의 무지를 통해 무지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누군가 어떤 낯선 이슈를 얘기할 때면 다양한 전략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학부 <성과 사회>란 수업 조별 발표 자리에서, “저희 조는 트랜스젠더라는 (신기한)존재를 만났는데..” 운운할 수도 있죠. 혹은 “너네들 트랜스젠더 잘 모르지? 내가 어제 트랜스포머 아니 트랜스젠더를 만났는데 내가 가르쳐 줄게”라는 식으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 발언의 수위는 달라도 많은 경우 타인을 얘기할 때 이런 형식입니다. 말투만 조금 순화되었냐 아니냐의 차이지 내용에선 아무런 차이가 없는 그런 타자화 혹은 우아하지도 않은 혐오일 때가 많죠.
모완은 어떤가요? 조금만 세심하게 읽으면 완자 작가는 윤리적으로 그리기 위해 상당한 고민을 한 걸 짐직할 수 있습니다. 글에 나타난 문제적 표현을 잠시 덮어둘 수 있다면, 트랜스젠더 이슈에 접근하는 태도, 트랜스젠더 이슈를 얘기하려는 태도가 그러합니다. 자신이 안다고 말하지 않고 자신이 얼마나 모르는지 자신에게 어떤 무지가 있는지를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작가의 바이 범주가 만든 성찰이지 않을까라고 추측합니다.
완자 작가는 야부와 7년 정도 파트너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이 시간이라면 자신을 그냥 레즈비언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 편이 설명하기 더 편할테고 사람들이 더 쉽게 받아들이니까요. 완자 작가가 자신을 바이라고 밝혔음에도 모완이 동성애 웹툰으로 이해되는 걸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개별 관계에선 자신을 바이라고 얘기하면서 공적 자리에선 레즈비언이라고 밝히기도 했고요. 이것이 현재 바이 범주가 갖는 위치를 상징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제가 특강에서 얘기할 때, 동성애나 트랜스젠더는 그래도 참조할 대상이 있어서인지 고개라도 주억거리지만, 바이나 무성애 이슈에선 다들 어떻게 인식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분위기기도 하고요. 그렇기에 완자 작가는 자신을 바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작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그럴 작가가 아니죠. 완자 작가는 자신이 바이란 점을 분명하게 밝혔고 바이 범주를 설명하기 위해 적잖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어느 화에서 바이에 관한 오해를 설명한 적도 있는 듯하고요(다시 정주행을 하지 않고 쓰는 글의 문제;;). 자신을 바이로 설명하면서 완자 작가는 자신의 범주 및 삶과 관련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설득하고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겠죠. 바이가 아닌 거의 모든 사람, 동성애자건 이성애자건 상관 없이 끊임없이 자신의 범주를 설명해야 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감수성과 성찰이 있을 테고요. 그렇기에 타인의 삶에 대해 감히 함부로 말할 수 없고 함부로 아는 척 얘기 할 수 없다는 걸 정말 잘 아는 듯하단 인상입니다. 이제 완자 작가가 트랜스젠더와 관련해서 얘기를 할 때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뿐입니다. 웹에서 자료 좀 검색해서 떠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직접 만나서 듣고 그 얘기를 전하는 것, 그렇게 들은 얘기로 아는 척하기보다는 자신의 무지를 먼저 밝히며 무지를 통해 무지를 얘기하는 것이죠.
물론 저는 어떤 글을 비판할 땐 “야이 삐리리야”를 글쓰기 언어로 바꿔서 쓸 때도 있습니다. 이경이나 김정란의 글을 비판할 때 그렇습니다. 비트랜스젠더는 무조건 옹호하고 트랜스젠더는 비난부터하는 글에 저는 지금까지 적은 글쓰기 기준을 적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완자는 제가 판단하기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런 글에 “야이 삐리리야”라는 식의 비판을 할 순 없습니다. 솔직하게 말해, 제가 모르는 이슈와 관련해서 글을 쓸 때 완자 작가 수준으로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며 글을 쓸 용기가 있느냐면 아니요, 제겐 그런 용기가 없습니다. 저는 완자 작가보다 잘 쓸 자신이 없습니다. 완자 작가보다 잘 할 수 있는 사람만 비판하라(“너희 중에 죄 없는 자만 돌을 던져라”?)가 아닙니다. 그냥 저는 이런 판단을 했다는 것 뿐입니다.
그랬기에 트위터에 제 글이 유통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만약 둘 다 유통된다면, “모두에게 완자가. 82화 “트렌스젠더에 대하여”에 대하여”보다는 “‘모두에게 완자가’에 대해 어제 쓴 글에 덧붙여서[약간 추가]”가 더 많이 유통되길 바랐습니다. 지금이라면, 앞의 두 글보다 지금 이 글이 더 많이 유통되길 바라고요. 하지만 글의 소비와 유통은 제가 판단하고 바랄 수 있는 게 아니죠. 제가 원한다고 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도 않고요. 이를테면 지금까지 출판한 글 중에서 ‘다른 어떤 글보다 지금 이 글을 사람들이 더 많이 읽으면 좋겠어’라는 글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사람들이 읽어주는 글은 다른 글입니다. 제가 기대하는 글보다는 다른 글을 더 좋아해주시더라고요. 그러니 그 글 말고 이 글을 읽어주세요, 이 글을 유통해주세요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건 제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라 읽은 분이 판단할 사항이니까요. 제가 고민하는 부분과 사람들이 공감하는 부분은 다르단 뜻이겠지요. 그러니 지금까지 쓴 글은 당연하게도 저 한 사람의 사소한 주절거림에 불과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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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알바하러 오고가는 지하철에서 넥서스7(7인치 태블릿)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생산성 최고인 넥서스7 만세!

‘모두에게 완자가’에 대해 어제 쓴 글에 덧붙여서[약간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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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딴소리.
어쩐 일인지 평소보다 방문자가 늘었습니다. 변방의 무명 블로그, [Run To 루인]에 평소엔 스무 분 가량 씩이나 들리셨는데(고맙습니다!) 어쩐 일인지 어젠 서른 분 가량 씩이나 들리셨습니다! 오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모르는 게 속편하지요. 안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고요.

추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검색로봇의 방문이 증가했거나(해킹 연습용이라면 트래픽 초과로 접속을 할 수 없었을 테니  해킹 연습용은 아닐 테고요) 텍스트큐브의 방문자 기록에 문제가 있거나겠지요. 텍스트큐브 자체의 방문자 기록과 구글 애날리틱스 방문자 기록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을 믿어야 할지도 고민이긴 하죠.
아무려나 방문자의 앞자리 숫자가 달라져서 신기했다는… 후후.
(2005년부터 이곳을 운영하고 있는데, 아직도 이런 일이 신기한 속물 블로거 루인입니다… 크.)
01
어제 쓴 글의 공개 시간을 기준으로 한 시간 이내에 오셨다면 좀 다른 글을 읽으셨을 듯합니다. 네, 서두에 쓴 글 일부를 들어냈습니다. 지금 공개하기엔 좀 더 정리해야겠다 싶어서요. 말줄임표는 글 일부를 덜어냈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한 표시입니다. 문단 연결이 어색한 상태라 죄송합니다.
(그렇다고 평소엔 잘 쓴 글을 공개했냐면 그것도 아니라 새삼 무슨 사과냐 싶지만요..;; )
02
어제 쓴 글에 적어야지 하고 못 적었는데요. 제 글이 ‘모완은 그럴 줄 알았어. 역시 문제야’라는 식으로 독해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럴 목적이 아닙니다. 저는 모완이 오래오래 연재되었으면 합니다. 82화의 트랜스젠더 이슈는 논쟁적이지만, ’80화 청소년 구독불가’나 ’69화 어쩌면'(엄마의 여고시절을 다시 해석하려고 했던 내용)은 정말 좋으니까요. 초기의 모완과 지금의 모완은 다르고 앞으로의 모완도 다를 거라고 믿습니다. 82화에 비해 83화는 또 느낌이 다르고요.
아울러 82화가 비록 제겐 어떤 불편을 야기했다고 해도 네이버 웹툰을 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트랜스젠더 이슈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는 점에선 고맙기도 합니다. 일전에 경향신문 기사가 했던 것처럼 그렇게 문제를 야기할 거면 차라리 쓰지 않은 것이 좋다고 하겠지만, 모완은 좀 다른 맥락이니까요. 더 좋은 만화를 그려주길 바라는 애정이지 ‘역시 별로야, 이제 볼 필요도 없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논평을 하지도 않았겠지요. 아시는 분은 아시지만 전 아니다 싶으면 아예 존재 자체를 무시합니다. 그리고 논평이라는 것 자체가 애정 없인 불가능한 일이고요.
03
저의 과도한 해석일 수도 있지만, 모완의 82화는 무지를 드러냄으로써 무지를 환기하려는 시도는 아니었을까 합니다. 작품에도 나와 있듯 작가는 자신이 트랜스젠더와 관련해서 잘 모른다고 했습니다. 알기 위해 참새 씨를 만나고 얘기를 나눴고요. 작품 속에도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라고 해서 서로를 잘 아는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지요. 이런 무지를 드러내는 방법 중엔, ‘나도 잘 모르지만 너희도 잘 모르지?’라고 쓰며 무언가를 알려주는 형식을 취할 수도 있지만, 무지로 작품을 구성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전 모완이 후자의 전략을 취한 것은 아닐까라는 고민도 하고 있습니다. 과도한 해석일 수도 있지만, 모완의 지금까지 작품이 ‘너희들이 뭐라고 해도 내 갈 길을 가겠다’는 느낌이라는데서 가능성이 없진 않은 듯합니다.
04
어제 쓴 글은 연구소 태그를 붙였기에 연구소 입장일 수도 있지만(연구원 중 한 분의 지지의견이 있었습니다만) 더 정확하게는 저의 입장에 불과합니다. 어제 쓴 글은 저의 맥락에서 제가 느낀 감정을 쓴 글에 불과합니다. 모든 트랜스젠더의 감정은 아닙니다. 그럴리가요. 만약 제가 쓴 글을 모든 트랜스젠더의 입장으로 혹은 어떤 일반적/보편적 트랜스젠더의 비평으로 읽으신다면 그건 제가 가장 바라지 않은 방법입니다(‘… 읽으신다면 이곳을 폭파시켜야죠’라고 적으려고 했지만… 그렇게 읽으셔도 이곳을 유지할 거라..;;; 크). 보편적/일반적 비트랜스젠더의 입장과 논평이 없듯 보편적/일반적 트랜스젠더의 입장과 논평도 없습니다. 혹시나 해서요..
05
동성애와 관련해서, 양성애와 관련해서, 트랜스젠더와 관련해서 다양한 입장과 삶의 경험이 있듯, 모완이란 만화도 다양한 입장의 하나로 이해되면 좋겠습니다. 모완이 어떻게 모든 퀴어의 삶을 대변할 수 있겠어요. 퀴어 이슈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모완을 읽고 동성애를, 양성애를, 트랜스젠더를 모완에 나오는 식으로 이해할 수 있으니 ‘제대로’ 그려줬으면 한다는 바람은 비퀴어가 퀴어를 이해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이 아닐까 합니다. 이것은 모완의 잘못이 아니라 비이성애자-트랜스젠더를 단순하게 이해하려는 이성애-이원젠더 규범에 초점을 맞추 이 지점을 비판해야겠죠. 규범적 이성애-비트랜스젠더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만화 한 편 읽고 모든 이성애-비트랜스젠더는 그 만화와 같다라고 하진 않잖아요. 모완의 내용 중 문제적인 부분은 비판해야겠지만, 그 비판은 많은 퀴어 만화 중 한 편으로 위치짓는 방식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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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오랜 만에 댓글을 읽고 든 감상입니다. 신문기사의 댓글은 하앍하앍.. 아, 아니, 그냥 진중하게.. 아, 아니, 아무려나 읽고 캡쳐하는데;; 네이버 웹툰의 댓글은 평소에 안 읽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대충 훑다보니 이런 고민이 들더라고요. 물론 댓글을 쓰신 분이 제 블로그에 들릴 가능성은 매우 낮겠지만요…
05-1
그럼에도 어떤 아쉬움이 있으시다면, 모 님께서 준비 중인 레즈비언 만화를 기대하시면 어떨까 합니다. 우연한 기회에(우연한 기회는 아니지만 ‘우연한 기회’라고 써야 할 것만 같은 느낌.. 크) 현재 준비 중인 만화의 시놉시스를 읽었습니다. 흥미로운 소재에 모완과는 다른 입장에서 레즈비언의 삶을 다룰 듯합니다. 본격 공개되면 다시 소개할게요. 🙂
모 님께서 이 글을 읽으신다면, 힘내시라고 쓴 글입니다!
아울러 김비 님의 자서전과 소설, 줄리 앤 피터스가 쓰고 정소연 님이 옮긴 <루나> 같은 작품을 읽으셔도 좋을 듯합니다. 모완을 통해 트랜스젠더 이슈가 논쟁이 되었다면 그냥 논쟁으로 끝나지 않고 관련 글을 읽어보는 것도 좋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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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즈음 추가.
83화에서 또 다른 히트 구절이 몇 개 나왔지요.. 이를 테면 “누가 봐도 남자인 참새씨를” “그때는 누가 봐도 여자인 참새씨를”…
전 이런 표현이 딱 모완 작가의 맥락[수준이라고 적을까 하다가 ‘수준’이란 단어의 뉘앙스가 애매해서 ‘맥락’으로 바꿨습니다]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일일이 논평할 정도의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며칠 지나 키워의 본성이 튀어나와 다다다다다 글을 쓸지도 모릅니다만…
최근 자료를 검색하다가 찾은 어느 책(2010년에 나왔음)에서 “동성연애자를 차별하는 표현”이라는 목차가 있더라고요. 83화는 딱 이 목차 같아요. 부연 설명을 하려고 하는데 그 설명이 더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랄까요.
일단 수업 준비를 하면서 논평을 더할지 말지 고민해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