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좋은 이야기

이러나 저러나 요즘 좋아하는 음악 이야기가 가장 재밌지.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의 신보가 나왔다. 바로 들었는데 괜찮더라. 같은 날 베쓰 기븐스(Beth Gibbons)의 첫 솔로 앨범도 나왔다. 두 앨범이 같은 날 나오다니… 베쓰 기븐스는 몇 달 전부터 싱글과 뮤직비디오를 공개했기에 신보를 기다렸는데, 신난다. 곧 바로 들었고 역시 좋다. 베쓰 기븐스는 여전한데, 이건 두 가지 의미다. 베쓰 기븐스에게 기대하는 그것을 정확하게 제공해주고 있지만, 포티스헤드(Portishead) 이후로 계속해서 현재성을 만들기 위한 고민 혹은 변화 또한 담겨 있었다. 그리하여 여전하다는 말은 지금 듣기에 여전히 좋다. 동시에 빌리 아일리시와 베쓰 기븐스는 암울함 혹은 어떤 정서를 공유하지만 농도와 표현 방식이 매우 달라, 흥미롭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 올뮤직닷컴에서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나와 감상이 비슷하면 기쁘고 다르면 뭐 어쩔 수 없고. 또한 이런저런 정보를 알 수 있어, 음악 듣는 재미를 더해주니 올뮤직을 찾는다. 베쓰 기븐스는 곧바로 평가가 나왔고 나와 비슷했다. 그리고 빌리 아일리시는… 공식 평은 없는데 사용자 평이 싸우고 있더라? 지금은 다를 수 있는데, 암튼 며칠 전에 갔을 때는 사용자 리뷰가 5/5와 0.5/5가 번갈아 나와서, 요즘 가장 인기 있는 가수구나 싶었다.

둘은 최근에 나왔지만 뒤늦게 앨범 발매 소식을 듣고 열렬히 들은 음반도 둘 있다.

만수씨라고 부르고 싶은 이민휘의 두 번째 신보는 작년 말에 나왔는데 정말 좋다. 앨범 단위로 음악을 듣는 즐거움을 줄 뿐만 아니라 무키무키만만수 시절의 어떤 감성 역시 유지해줘서 기뻤다. 퇴근하는 길, 밤 길을 걸으며 들으면 더없이 좋아서, 신난다.

하지만 진짜 최근 며칠 사이 내 최애는 졸리 레이드(Jolie Laide)!!! 진짜!! 정말!! 좋다!!! 내가 20년 넘게 애정하며 들었고, 21세기에 데뷔한 가수나 밴드 중 가장 좋아하는 니나 나스타샤(Nina Nastasia)가 밴드처럼, 그룹처럼 만든 팀이다. 10년 가까이 활동을 중단했고 힘든 일을 겪은 뒤 2022년에 12년 만의 신보를 냈었다. 이후 새 앨범이 없나 하고 찾아보다 새로운 이름인 졸리 레이드로 신보 발매. 앨범 단위로 하루에도 대여섯 번은 듣고 있다. 이제까지의 정서를 유지하면서도 음악에 변화를 줬다. 리뷰에 따르면 초반에서 후반으로 갈 수록 보컬이 지쳐가는 식으로 디렉팅을 하는데 이게 가사의 흐름과 연결된다고.

그러며 알게된 것. 애석하게도 스티브 알비니(Steve Albino)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고… ㅠㅠㅜ 니나 나스타샤의 모든 앨범을 레코딩했고 내가 좋아하는 무수히 많은 밴드의 앨범을 담당했는데… R.I.P.

니나 나스타샤는 내게 음악 디깅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며 새삼 깨닫기를 디깅은 확실히 유튜브 뮤직과 같은 스트리밍 사이트가 아니라 오프라인 매장이 찐이라는 것이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의 디깅은 근본적으로 다른 경험이었다.

20년도 더 전, 니나 나스타샤를 처음 디깅했을 때 향음악사에서 정식 발매한 CD는 9,000원 정도 했던 거 같고 직수입한 앨범은 소량이면 17,000원(비싸면 20,000원이 넘었다)은 되었다고 기억한다. 정식 발매한 앨범은 미리 들어볼 수 있는 경로가 많았지만 가게에서 직수입한 음악은 정보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 그때는 스마트폰이 없었고 구글번역기도 없었으며 유튜브뮤직 같이 거의 모든 음악을 서비스하는 사이트도 없었다. 그러니 방법은 직접 구매해서 듣는 것 뿐이었다. 오프라인에서 디깅은 다른 말로 감으로 구매해서 직접 듣기 전까지는 알 수 없으니 망해서 눈물 나거나 끝내주는 결과여서 눈물 나거나… 정말 돈이 드는 일이라, 달리 말하면 자본의 경험(?) 그 자체랄까. 그러니 온라인 디깅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이었다… (내 돈…)

이렇게 생각하니 유튜브 프리미엄 월 결제 비용이 저렴한 거 같기도 하고? … 이상한 결론이지만 ㅋㅋㅋ 오프라인 디깅의 또 다른 즐거움은, 단골이 주는 이득도 있었다. 나는 오지은의 1집 앨범을 뒤늦게 구매했는데 매니저가 챙겨둔 오지은 초판을 내게 챙겨주셔서, 그 희귀한 초판을 구매할 수 있었다. 이것이 오프라인 디깅… 아니고 당시 알바비의 3할을 CD 구매하는데 들였던 인간의 최후…는 아니고 암튼 그런 이야기…. ㅋㅋㅋ

아무려나 요즘 새 앨범 듣는 재미가 상당해서, 신난다.

[9820]

불안을 견디기

시간이 지날 수록 망설임만 늘어나는데 그러다보니 언제 확신을 갖고 주장하고, 언제 의심을 하며 기다려야 하는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확신이 필요할 때 머뭇거린다면 그나마 낫지만 의심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확신을 가진다면 최악의 상황을 만들 것이며 그런 일이 쌓이다보면 불안이 누적된다. 이것은 피로함이라기보다 불안함이고 불안이 누적되다보면 실수와 잘못을 눈더미처럼 쌓여 내가 변했다는 또 다른 불안에 잠식된다. 사실 요즘 내 상태가, 뭔가 변했는데 그걸 명확히 포착하기 어려워 전전긍긍하는 상태다.

그러다보니 시간과 속도를 다시 고민한다. 좀 더 늦고 좀 더더더 느려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2016년 연말에 한 강의에서 트랜스 범죄와 관련한 주제를 다루며, 나는 이 주제로 글을 쓰기 위해 7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7년의 시간이 지났고 여전히 그 주제를 쓰기에 나는 부족하다. 그리하여 다시 7년의 시간을 더 줄 예정이다. 이런 느리고 느린 속도. 한 번 삶의 패턴이 무너진 이후로 나는 더더욱 느린 속도를 필요로 하고 느린 속도로 진행한다고 해서 무어 그리 큰 일일까. 나는 고작 그 정도의 사람이고, 이것은 비하가 아니라 비하하지 않기 위해 자신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내가 존경하고 역할모델 같은 분들처럼 살아가기를 바랐지만 나는 그렇기 힘들다면 적어도 어떤 태도, 의심해야 하는 상황에서 조심성을 갖추는 태도를 견고하게 훈련해야 하지 않을까…

뭔가 글이 두서가 없는데, 블로그 프로그램을 바꾼뒤 모바일로 글을 작성하기가 수월해졌고 그래서 X처럼 가볍게 쓰기가 쉬워졌다. 그렇다고 자주 쓰지는 않지만 두서 없더라도 메모라도 남기자는 기분이라.

말대꾸를 개념화하기

벨 훅스의 책 중 Talking Back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나는 이 제목을 말대꾸로 번역해서 이해하는데, 내가 이해한 뉘앙스로는 이것이 가장 적절했기 때문이다. 벨 훅스는 이 말을 가져온 것이 아이가 양육자나 어른에게 그러하듯, 자신보다 권위가 있는 이들에게 대응하는 말하기의 방식이었다. 즉 체제를 부정하지 않지만 온전히 순응하지 않으며, 권력과 규범의 틀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지만 또한 그것을 승인하지 않고 툭툭 내뱉듯 균열을 내는 말을 하는 방식, 이것이 내가 이해한 말대꾸다. 언제나 어른에게 혼날 것을 알면서도 이어이 내뱉는 말이며, 그리하여 얻어맞을 결과를 알고 있으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말하기. 저항의 의도성이 없을 때에도 가장 강력하게 규범을 위협하고 분노케하는 말하기.

어찌보면 비동일시로 독해할 수도 있는 이 용어를 나는 오랫동안 활용해보고 싶었지만 언제나 성공하지 못 하고 있다. 그래서 어디 강의나 다른 어떤 자리에서 말할 수는 있지만 제대로 개념화시키지도 이론화하지도 못했다. 물론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닌지라, 이미 누군가는 개념화했겠지. 그랬겠지. 그럼에도 뭔가 내 방식으로 설명하고 싶은 욕심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말대꾸라는 용어가 꽤나 몸에 들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