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없는 존재”

몇 달 전, 공무원시험이라도 볼까, 하는 고민을 진지하지 않게 했다. 내겐 ‘공무원시험을 준비해볼까?’ 하는 고민이라도 했다는 게 중요했다. 먹고 살기 막막함. 운동도 좋고 공부도 좋은데 먹고 사는 게 너무 불안정하니 이런 고민도 했다.

특강을 나가 특강료를 받는 건 덜 부담스럽다. 주최하는 측 대부분이 돈이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학교나 정당 같은 경우, 특강료에 허덕일 정도의 재정은 아니지 않나. 단체에서 불러도, 대부분은 정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불렀다. 프로젝트의 경우 이미 강사료가 책정되어 있어 부담이 덜하긴 마찬가지. 하지만 원고료의 경우엔 이야기가 다르다. 대부분이 자치언론이거나 재정이 열악한 곳이다. 어떤 경우엔 고료가 전혀 없기도 하다. 그래도 어지간하면 소액이나마 고료를 준다. 그리고 이런 고료를 받는 게 쉽지가 않다. 고료야 내가 부르는 게 아니라 청탁하는 곳에 주는 대로 받지만, 그래도 부담스럽다. 계좌번호를 알려주기까지 몇 번이고 고민한다. 그냥 후원할까? 하고. 이런 곳의 재정이 얼마나 열악한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결국 계좌번호를 보낸다. 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ㅠ_ㅠ (물론 먹고 살아야 해서만은 아니다.) 그래서 ‘공무원 시험’이란 고민까지 해봤다.

하고많은 직종 중에서 왜 공무원이냐고? 어릴 때부터 하도 많이 들어서 그런 거 같다. 친척 중에 하위직이지만, 아무려나 공무원이 많다보니 공무원 하라는 얘길 많이 들었다. 그리고 아마 중학생인가 고등학생인가 그때부터 결코 하지 않으려고 작정한 직종이 공무원이다. 공무원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갑자기 이런 옛일이 떠오른 건, [시사인] 이번 호(49호)를 읽다가 “영혼 없는 공무원”이란 구절을 봤기 때문이다. 기사는, 정권에 따라 자신의 정치적 소신도 버리고 현정권을 옹호하는 이들을 지적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 탄생에 기여한 이춘발 KBS 이사는 정연주 사장 퇴임에 앞장서고 있다. 김장수는 “난 참여정부 장관이다.”며 현 정권의 국방부 장관 유임을 거절했지만,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이다. 이런 저런 인물들을 언급하며, 그 중 “영혼 없는 공무원”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말을 한다.

내가 공무원만은 하지 않겠다고 한 이유도 이거였다. 적어도 내 주변에 있던 이들은, 항상 당시의 정권을 지지했다. 노태우정권 땐, 선거에서 노태우를 찍었고 노태우를 지지하고. 김영삼정권 땐, 선거에서 김영삼을 찍었고 김영삼을 지지하고. 김대중정권 땐, 선거에서 김대중을 찍었고 김대중을 지지하고. 노무현정권 땐, 선거에서 노무현을 찍었고 노무현을 지지하고. 이명박정권인 지금 선거에서 이명박을 찍었다. 지지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땐 이런 신분이, 이런 모습이 혐오스러웠다. 아니, 어떻게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있는데 전혀 다른 성격의 정권을 지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공무원만은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지금은 혐오스럽기보단 안쓰럽다. 공무원이란 자리가 요구하는 정치적 입장을 고려하기 시작하자, 안쓰러웠다. 어떤 위치나 자리에 오르면, 그런 공간에 들어가면 그에 주어진 역할이 있다. 정치적 신념도 중요하지만 이런 위치, 주어진 역할도 무시할 수는 없다. 이런 위치에도 다른 방식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있고, 변화를 모색하는 이들도 있다. 공무원노조를 만들겠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고, 현재 정권에서 일하지만 현재 정권을 지지하지 않고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는 이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매 정권을 지지한다고 말하는 이를 비난/비판할 수는 없지 않는가. 이는 조금 다른 문제이지 않은가.

매 정권을 지지한다고 말하는 이들 중, 내가 아는 이들은 대체로 보수주의자이긴 했다. 분배보다 성장이 중요했고, 기업 세습을 지지했고, 직급이 올라가면 하는 일 없어도 월급 많은 걸 당연하다고 얘기했다. 그래서 조금 달리 접근해야 한다는 나의 말을, 나도 의심한다. 그럼에도 어떤 이는 개혁을 주장하는 데 넌 왜 “영혼이 없느냐?”고 묻는 건, 이걸 한 개인에게 책임 소재를 돌리는 건 문제가 있다. 물론 그 개인이 차지하는 자리에 따라 다르다는 건 분명히 하고.

아무려나 [시사인] 기사에 실린 한 구절, 공무원을 일컬어 “영혼 없는 존재”란 표현이 참 적절하구나 싶었다. 없을 수도 있고, 포기한 걸 수도 있다. 직장에 있을 때만 잠시 젖혀둔 걸 수도 있고. 아무려나 슬펐다. 공무원이라도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있기 마련. 그러니 자신이 누굴 찍건 직장에서 자리를 유지하는 건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영혼이 없어야”만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라서. 공무원이란 직장을 선택하는 순간, 자신의 정치적 입장은 잠시 젖혀둬야 한다는 의미라서. “대한민국 국민은 표현의 자유가 있다”지만(정말?) 공무원에겐, 현 정권을 지지하는 것 이외의 정치적 입장은 없다는 의미라서. 현 정권을 지지하지 않는 입장을 발설해선 안 된다는 의미라서. 애당초 이런 건 포기하란 의미라서.

+
그나저나, 내가 경험한 공무원 개인은 왜 그리도 거만한 걸까? 학교 교직원 중 일부는 왜 그리도 오만한 걸까? -_-;;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소리. 예전에 행정조교하던 시절과 행정기관을 이용하던 시절이 떠올라서. ;; 그래도 오늘 학사문제 해결해준 분은 꽤나 친절했음.

8 thoughts on ““영혼 없는 존재”

  1. 학교 교직원이 오만한 이유는 ‘학생이라고’ 쉽게 봐서 그런 듯 해요.
    학사문제 해결되서 다행이네요!!

    1. 그러니까요. 더구나 학교는 기업에 학생이라는 제품을 납품하는 곳이란 인식이 강해지면서 이런 태도가 더 심해지는 거 같아요. 학교가 기업이라고 할 때도 고객에 학생은 없는 거 같아요.

  2. 일전에 이명박에게 영혼을 팔아, 일을 했던 기억이 났어요.ㅋㅋ
    그 때 영혼 파는게 쉽지 몸파는 건 너무 괴로워, 라며 울부짖었다는..

    1. 서울시 사업이었나요? 흐흐.

      그러고 보니 곧 또 다른 라디오 방송 하겠어요. 흐흐

  3. 제 대학친구 중 두명이 공무원입니다. 거의 뼛속까지 세뇌되어 2mb 지지하는 편이라 요즘 연락도 안해요. 한때 공무원(교사 포함)되려고 했었으나, 결국엔 정말 맘에 안들어서 때려쳤을 듯.

    1.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지만, 정말 공무원인 사람들과 얘기하는 건 힘들 때가 많아요. 라디오에서 인터뷰 하는 걸 들어도 답답할 때가 너무 많고요. -_-;

      근데 미즈키님이 공무원이 되었으면 어떨지 상상이 안 가요. 흐흐.

  4. 전 이번에 임시신분증 만들면서 공무원에 대한 호감이 생겼다는; (단순하다) ㅋㅋ 예전보다는 친절한 사람이 많은 거 같아요~ 루인님이 공무원 되시면 친절한 공무원 되실 듯.. 하지만 공무원 자체가 잘 안 어울리시는 ㅋㅋ

    1. 크크크크크크 제가 공무원이 되면 까칠한 공무원 1등이거나 가식적인 친절함으로 무장한 공무원이 될 거 같아요. 흐흐흐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