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경제학자 케인즈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말하는 “장기”란 결국 우리가 죽고 난 이후를 말한다고 일갈한 바 있다. 맞다. “장기적인 관점”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거나 예상할 수 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키지만, 미래는 언제나 예측을 불허한다. 예측한 방식으로 미래가 온다면 그건 미래가 아니지. 불안을 유발해야만 미래지.
그렇지만 긴 시간을 염두에 두고 현재를 판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재 상황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서두르거나 조급하게 판단하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나는 조금 덜 속상할 텐데. 하지만 현재 조급하기에 살아가는 거다. 일생을 조망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없기에 악착같이 살아가고 있는 거다. 그 뿐이다.
어제는 즐거웠고, 오늘은 흐르고 있고, 내일은 모르겠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즐거운 어제는 현재를 견딜 수 있는 힘을 주고 현재와 미래의 고통을 유발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제가 즐거웠다는 사실 만으로 충분하다.
케인즈의 말이 오싹하네요..-_-ㅋ
그러고보면
‘멀리, ‘넓게’, ‘장기’를 생각한다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를 배려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옛 인디언들은 ‘7대 이후’까지 생각해는 것을 권했다는데..
‘기업이 자기 주위의 사회를 생각한다는 것.’
‘사람이 자기 주위의 환경을 생각한다는 것.’
‘오늘을 사는 이가, 내일을 사는 또다른 나 혹은 타인을 생각한다는 것’.
이런식의 생각은 어렵지만, 소중하겠죠.
그런데 ‘장기’적 생각으로 ‘나’만을 바라본다면.
그건 끔찍하겠죠. 대부분의 자기계발서와 성공서와
미래를 인질로 현재를 착취하는 모든 시스템.
뭐, 대충 이런 구조가 될 듯.-_-;
타인을 생각하는 것. 마을을 생각하는 것.
음…어려워요.어려워요.ㄱ-ㅋ
흐흐. 정말 그래요. 타인의 입장에서 장기는 중요한데 나의 입장에서 장기는 너무 막연한 거 같아요. 그래서 너무 어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