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덕분에 범죄자를 잡았다는 소식은 썩 유쾌하지 않다.
며칠 전 어느 지하철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탔는데 저 위에 CCTV가 나를 비추고 있었다. 내가 어디서 무얼 하는지 CCTV는 알고 있다. 지하철에서 내려 역 입구를 나서기까지, 내가 지나가는 모든 동선이 CCTV에 기록되어 있으리라. 범죄예방인 건지 존재하는 모든 사람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여기는 건지 헷갈린다. 범죄예방이 목적인 건지 개개인의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는 건지 헷갈린다. 그래서 [본 아이덴티티]란 영화가 떠올랐다. 거의 모든 곳에 CCTV가 있어서 어디로도 숨을 수 없는 상황.
감시가 일상으로 변한 것 중 대표적인 게 주민등록제도다. 박정희는 명목상 국가안보를 위해 주민등록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정희 이전의 정부들이 주민등록제도를 만들고자 했던 이유 역시 간첩을 색출하고 병역인구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이승만 정부 때부터 이런 기획이 있었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까지도 많은 ‘남성’들은 병역을 기피했다. 주민등록제도는 병역기피를 원천 차단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이었다. 1960년대 중후반에 북한과의 충돌이 잦았는데 박정희 정권은 북한과의 긴장관계를 가장 잘 활용한 인물 중 하나다. 박정희야 말로 통일을 바라지 않았던, 북한과의 평화를 바라지 않았던 인물인지도 모를 일. 북한과의 긴장이 없다면 일사 분란한 국민통제가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역인구를 파악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건 대외홍보용 언설에 불과하다. 병역인구 관리가 목적이 아니란 건 여러 목적 중 하나일 뿐,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다. 당시 공무원들이 주민등록제도를 기획하며 공공연히 했던 말은 국민 관리와 통제다. 주민등록제도를 실시하면 국민들을 효율적으로 관리, 통제, 감시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기록에 따르면 한국에서 현재와 같은 형태의 주민등록제도가 정착한 시기는 1960년대 후반으로 이제 40년 정도 지났다. 하지만 지금 한국사회에서 주민등록제도(주민등록번호, 주민등록증)가 없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 주민등록번호 하나로 모든 것이 효율적으로 관리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주 작은 규모의 인터넷 쇼핑 업체도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한다.
주민등록제도를 정비하던 1960년대 후반, 1970년대 초반의 자료를 읽던 와중, 박정희가 ‘똑똑’하다고 느낀 부분이 딱 하나 있다. 그는 새마을운동을 비롯한 당시 자신의 정책을 시행하는데 있어, 국민들이 자신의 정책을 몸에 익히도록 지시했다는 점이다. 앎은 암기하는 지식이 아니다. 몸이 곧 바로 반응토록 하는 것이다. 어느 시인이 군대에서 제대한 후에도 군용 차량을 보면 저도 모르게 경례를 하게 된다고, 경례를 해야 할 것 같아 긴장한다고 쓴 것처럼. 그렇게 주민등록제도는 국민감시체계가 아니라 ‘한국의 특수성’, ‘한국의 일상’으로 변했다.
최근 뉴스에서 CCTV를 통해 범죄자를 잡았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의심스럽다. 이런 뉴스는 CCTV를 통한 국민감시를 정당화하려는 사전 정지작업은 아닌가 하고. CCTV가 법률상의 범죄자들만 기록하는 건 아니기에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시선 아래 있다. 구글의 스트리트뷰가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뜬다. 역시 의심스럽다. 구글 스트리트뷰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CCTV가 일상적으로 개인의 동선을, 행동을 감시하는 건 숨기려는 건 의도이지 않을까 해서. 혹은 구글 스트리트뷰와 관련한 기사를 끊임없이 생산함으로써 장기적으로 CCTV의 감시와 기록을 중화하려는 의도이지 않을까 해서.
감시가 일상이다. 내가 감시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길 정도로. 언젠간 감시의 시선이 없는 상황에 스스로 불안함을 느낄까?
민증 만들때 손가락에 찐득한 꺼먼잉크 처덕처덕 발라서 지문 다 찍어간것도 불쾌했어요. 내 지문을 동사무소에서 가지고 있다는 것도 기분나쁜데 공무원은 또 좀 친절해야죠;; 완전 범죄자 된 기분이었음 ㅡ_ㅡ+ 민증받고 몇달 후에 한국을 떴지만…지금도 어딘가에 제 지문이 서류더미에 싸여 잠자고 있을걸 생각하면 유쾌하지는 않네요.
그쵸그쵸? 저도 그 검은색 인주가 너무 기분나빴어요. 공무원 양반들은 또 어찌나 친절하시든지, 그냥 손을 막 끌어 잡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요.
한국 정부에게 국민은 모두 잠재적인 범죄자 집단인가봐요. -_-;;
루인 오래간만이에요.^^ 학교에서는 종종 인사했지만, 블로그에 인사남기기는..흐흐…대학원 여성학과정의 강의계획서를 보다 루인,의 이름이 적힌 걸 보고 생각나서 바로 접속^^
이 글, 루인의 예측, CCTV의 확대는 예정된 일인거 같아요. 얼마전에 한 정부산하 기관에서 관련 정책 조사를 하는걸 봤거든요..;; 흐미…;;
와, 블로그로는 정말 오랜 만이에요! 🙂
혹시 여성학과 그 과목 들을 예정인가요? 그럼 왠지 너무 재밌을 거 같아요. 흐흐.
사회 뿐만 아니라, 학교 안에도 CCTV가 부쩍 늘어서 당황하고 있어요. 이른바 ‘지켜보고 있다’랄까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