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ㅅ은 대학에 입학하고 두어 달 정도 지나, 동아리 선배 ㅁ과 사귀기 시작했다. 이 둘은 아마도 ㅅ이 졸업할 때까지는 연애관계를 유지한 듯하다. 같은 동아리에 ㅁ의 동기인 ㄴ은 ㅅ을 처음 본 순간 반했지만 고백이 늦었다. 망설이고 있을 때 ㅅ과 ㅁ이 사귀기 시작했고, 이후 ㄴ은 속만 태웠다. ㄴ이 ㅅ을 좋아한다는 건 ㅅ과 ㅁ을 포함한 동아리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ㅅ과 ㅁ이 헤어질 것 같진 않았다. ㄴ 역시 드러내놓고 ㅅ에게 감정 표현을 하진 않았다.
나는 그 동아리에 잠깐 속했다가 탈퇴했기에 이후의 자세한 소식은 모른다. 그저 몇 해 전, ㅅ이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아는 사람에게 전해들었다. 상대는 ㄴ이라고 했다.
02
ㅇ과 ㅂ은 연애를 하고 싶다는 말을 했지만, 둘이 사귀지는 않았다. 이런 건 웹에서도, 오프라인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데, a도 b도 c도 연애를 하고 싶다며 커플들을 부러워하지만, 부러움을 표현하는 이들 각자가 만나고 연애를 하진 않는다. 지극히 당연한 이 풍경. 서로 연애를 하고 싶다는 푸념만 반복할 뿐이다.
다시 ㅇ과 ㅂ의 경우. 주민등록번호의 성별이 같은 ㅇ과 ㅂ에게 ㅊ은 서로 사귀면 어떻겠냐고 말했는데, 이 말과 동시에 둘은 “나는 동성애자가 아냐!”라고 답했다. 하지만 ‘동성’이 사귄다고 동성애인 건 아니잖아. ㅊ은 ㅇ과 ㅂ의 반응이 무척 흥미로웠다고, 내게 말해줬다.
나의 경우를 상상하자. 연애를 안 하고 있지만, 하고 있다고 치고. 나의 파트너가 레즈비언이라면, 바이라면, 이성애자라면 각각의 상황은 어떻게 다른 걸까? 이 모든 관계가 피상적으론 이성애관계로 보일까? 그렇다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곳에선 동성애일까? 레즈비언이 레즈비언과 연애를 한다고 반드시 그 관계가 동성애/동성“연애”일까? 레즈비언과 바이의 연애는 동성애일까, 양성애일까? 레즈비언과 이성애 ‘여성’의 연애는 동성애일까, 양성애일까, 이성애일까? 아니, 다 필요없고 그냥 변태성애일까? 흐흐.
다른 한편, 나의 성적지향과 상대의 성적지향은 반드시 일치해야 할까? 레즈비언과 이성애 ‘여성’의 연애를 상상할 때, 이성애 ‘여성’은 이 관계를 이성연애관계로 설명할 수도 있다. 이성애 ‘여성’의 파트너가 레즈비언 트랜스며 ‘여성’보단 ‘남성’으로 더 잘 통하는 외모라면. 파트너가 여성으로 더 잘 통하는 외모라도 상관 없다. 만나는 둘(혹은 그 이상의) 사람 각자가 자신의 상황을 다르게 설명할 수 있지만, 다를 수 있는 가능성은 무시된다. 한 사람이 동성애자라면 상대로 동성애자, 한 사람이 이성애자라면 상대도 이성애자란 식이다. 개인의 외모로 젠더를 단정하는 것과 꼭 같다.
이런 고민은 일상 생활에선 크게 문제될 것 없지만, 그냥 개개인이 만나는 순간엔 문제가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설명을 해야 하는 순간, 누군가에게 ‘해명’해야 하는 순간 심각한 문제가 된다. 동성애자는 동성애자끼리, 이성애자는 이성애자끼리(그럼 바이는 누구와?) 만난다는 인식이 만연한 사회에서 개인의 다양함을 설명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니까. 그럼에도 이성애 여성과 이성애 여성이 연애를 할 경우 둘의 관계를 어떻게든 분류해야 한다면 어떻게 부를 수 있을까? 글쎄 ….
03
암튼 제목처럼 저의 연애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요즘 연애하고 있다는 글을 기대하셨다면 낚이신 거죠. 케케. 😛
댓글에도 푸념을….
(에잉.)
으헝…
참 쉽지 않아요..
저는 동성을 사귈 땐 ‘난 레즈비언이야’라고 생각하고 이성을 사귈 땐 ‘난 바이야’라고 생각해요. 곧 죽어도 ‘이성애자’라는 말은 안 함;;;;; 솔직히 저 같은 경우엔 동성을 사귈 땐 별로 무리가 없는데 이성을 사귀면 레즈비언 친구들이 이성 애인을 혐오해서 난리이기 때문에 좀 괴롭다고나 할까;ㅁ;
이성애 여성이 레즈비언을 사귈 때 이렇게 설명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듯해요. ‘난 이성애자지만 동성애를 하고 있어. 지금은 여자를 사귀고 있다는 거지. 이게 끝나면 난 다시 남자를 사귀겠지.’ 그 관계 자체를 이성애로 설명하기보다는 이런 경우가 더 많을 것 같기도;
동성이라서 좋아하면 동성애고, 좋아했는데 우연히 동성이면 야오이란 말이 떠오르네요. 흐흐. -_-;;
댓글을 읽다가 관련 논문을 준비 중인 사람이 있어서 나중에 소개시켜 주고 싶다는 바람이 생긴달까요… 아하하;;;
저도 이런 생각을 해봤었어요 ㅋㅋㅋ
분류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머리 아프겠지만, 포기하면 편한데ㅎㅎㅎ
양성애 동성애 이성애 이렇게 분류한다고 끝나는게 아니더라구요.
생각해보면, 인간마다 성격 다르듯이, 각 커플마다 자기들만의 사랑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저는 여기서 포기 ㅋㅋ
그러게요. 정말 그냥 포기하면 편한데, 워낙 분류하는 걸 좋아하는 사회다보니 쉽지 않아요. 문제는 분류도 간결해야지 이것저것 복잡하면 싫어하잖아요… 흐흐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