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인의 삶의 의제 중 하나는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이다. 그냥 이렇게 적으면 자본주의사회란 맥락에선 “우습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루인이 채식주의자vegan라는 말을 하면 좀 다르게 보려나. (실제 이런 경험이 있다. 채식주의자라고 말을 하자 다르게 반응한. 이런 반응은 그 자체로 할 이야기가 많은 지점이다.) 그렇기에 루인에게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는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란 의미를 지닌다.
글을 쓰는 것은 경계를 만나고 경계가 흔들리는(여러 의미로) 경험에 의해서이기도 하지만 어떤 글을 통해 과거의 기억이 환기되어서이기도 하다(비슷한 내용이긴 하지만 조금 구분하자). 이 후자의 경우가 참 어렵다. 비록 직접적으로는 어떤 특정한 글/경험이 촉매제가 되긴 했지만 그 글/경험이 아니라 그로 인해 환기한 다른 여러 경험들, 몸에 숨어 있던 언어들이 말을 걸어 왔기 때문이며 그래서 그 글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환기된 ‘다른’ 기억/몸에 대해서이다. 하지만, 쓴 글의 내용이 그다지 유쾌한 내용이 아닐 때는 문제가 된다. 글의 시작은 촉매제가 된 상황에서 시작해서 촉매가 된 그 상황 자체가 아니라 촉매 작용을 통해 깨어난 몸을 쓰는 것이지만 이런 “의도”가 무슨 상관이랴. 더구나 글이 여전히 서툴고 때론 많은 가시를 품기까지 하는 루인의 글쓰기에서, 글은 루인의 “의도”완 상관없이 폭력이 된다.
그래서 빨간부리님에게 죄송하고 고맙다고 몸앓는다. 아래에 쓴 궁여지책이란 글이 빨간부리님을 향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충분히 그렇게 읽힘을 미처 몸앓지 못했고 그래서 가해가 발생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란 말 밖에 달리 뭐라고 해야 할 런지…. 그러면서도 고맙다고 느끼는 건 그 부분에 대해 지적해 주셨기 때문이다(왜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것이냐!). 일전에 다른 곳에도 쓴 적이 있고 이곳에도 쓴(자주 떠올리는 글, (가시 돋힌) 질문과 (당혹스러운) 반응) 적이 있듯, 루인이 피해 경험자가 되고 그래서 가해 상대에게 문제제기를 했을 때, 상대가 무조건 잘못했다고만 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 (그렇다고 빨간부리님이 루인에게 무슨 가해를 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가해와 피해라는 이분화되고 고정된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욕망하지만 아직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부족함으로 이 언어들을 쓰고 있다. 하지만 가해와 피해란 말은 때로 너무 무서운/무거운 말이기에 사용함에 있어 두렵기도 하다. 다만 지금 말하는 가해/피해의 상황은 루인이 링크를 건 내용으로의 그것이라고 ‘양해’를 구해도 될 런지.) 당연히 가해에 대한 사죄가 있어야겠지만 그렇다고 피해 경험자의 말이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며 피해 경험자의 문제제기 과정에서도 가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피해 경험자의 말에 무조건 동의 하며 가해자가 무조건 잘못했다고만 하는 건, 오히려 피해 경험자를 타자화하는 방식이라고 몸앓는다. 루인이 바라는 건, 이 때, 피해 경험자의 가해 상황에 대해서도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지점이 소통의 시작점이라고 몸앓는다. (물론 대부분의 상황에선 피해 경험자가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가능하다고 해도 그 자체를 폭력으로 간주해서 문제이다.) 이런 이유로 빨간부리님에게 죄송하면서 고마움도 같이 느낀다. 빨간부리님이 루인의 글로 인해 느낀 감정(감정은 곧 정치다)이 생기지 않는 글쓰기를 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고 그로 인해 폭력이 발생했고 그 지점에 대해 지적해주신 것이 고마운 것이다.
다시 한 번, 정말 죄송합니다.
#아시겠지만 혹시나 해서 적으면, 색이 다른 글씨는 링크되어 있어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서로 조금은 여유가 있는 대화로 인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나날, 루인님이 지향하고자 하는 것들이 이루어 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 글에 어울리는 덧글은 아니지만.. 다른 여러 사람들의 블로그 글을 접하면서 자주 접하게 되는 단어가 ‘타자’, ‘타자화’ 입니다. 전 사실 그 전에는 그런 단어가 있는지조차 몰랐어요. 대충 그 단어를 사용한 글들을 읽으면서 이해해 보지만 정확한 감은 잡히지가 않더라구요. 사전이나 지식인도 이용해 보았지만 이해되거나 명확한 설명도 아니다 싶구요. 웃기게 말하자면 타자화는.. ‘뒷담화’ 같은 느낌이랄까요? 🙁 무식의 극치지만.. ㅋㅋ 그래서 루인님께 물어보고 싶습니다. 타자, 타자화란 대중적으로 어떤 의미지인지… ㅜ.ㅡ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으아앙..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사실, 루인도 잘 몰라서, 이 리플에 덧글 다는 일을 어떻게든 피해보고 싶은 몸이었어요.. 엉엉.. 흐흐;;;;;;;;;;;;;;
루인은 타자, 타자화를 대충, 대상화와 “비정상”이란 의미로 사용하는 편인 것 같아요…(“같아요”? 엉? 한땐 안다고 착각했는데, 질문을 받고 고민을 하니, 말 그대로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더라고요.;;;;; 부끄럽지만… 고맙습니다… ^^)
일테면, ‘이성애’-젠더 사회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방식들, 상대방을 관계를 맺어가는 사람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이나 불안을 대입할 수 있다고 여기고 그렇게 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일테면 “남성”중심사회에서의 “여성”, ‘이성애’주의 사회에서 이반queer들,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의 “장애”인들, 뭐 이런 식으로 한 사회에서 “비정상” 혹은 “비정상”은 아니어도 “정상”이나 기준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루인의 해석에서 타자/타자화의 핵심은 단순하고 고정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해요. 일테면, 이주노동자 딱 한 명을 우연히 마주치고선, “이주노동자는 다 그래”라는 식으로 얘길 하거나, “옛날부터 여자들은 다 그래”라는 식. “동성애자들은 어떤 색깔을 좋아하나요?”란 질문을 통해 “동성애”자들은 모두가 똑같고 “이성애”자들과는 달라도 너무도 다른 사람이라고 여기는 방식이랄까요…;;;;;
으으, 아닐 수도 있지만, 아마 비슷하거나 얼추 근접할 것 같아요ㅜ.ㅡ 흑흑흑
그래서, “”뒷담화” 같은 느낌”이란 말에 감동받았어요. >_< 너무 정확하잖아요. 잘 모르면서 소통하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그저 '뒤'에서 말하듯이 그렇게 재단하는 것이랄까.. (말을 못 잇고 표현이 너무 좋아서 혼자 감동하고 있어요>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