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거친 글에 이어서.
퀴어영화 혹은 LGBT 영화라는 포괄적 장르에 속하는 영화가 반드시 퀴어나 LGBT에게 우호적인 것은 아니며 때때로 강한 혐오를 포함할 수 있다. 단지 퀴어나 LGBT를 포함하는 영화란 뜻이 아니라 퀴어나 LGBT의 어느 중첩하는 범주에 속하는 이들을 긍정적으로 재현하는 영화인데 이것이 혐오 행위일 수 있다. 이 말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느냐 아니냐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경험을 반영한다. 혹은 최소한 퀴어나 LGBT란 용어를 둘러싼 자신의 고민을 반영한다.
지난 일요일 밤에 본 영화 <질, 이성애 도전기>Heterosexual Jill은 어떤 사람에겐 가볍고 코미디 영화겠지만, 이 영화는 심각한 바이 혐오를 공공연히 전시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다음의 인식 수준을 공공연히 전시한다. ‘바이는 너네들끼리 살아, 레즈비언인 우리는 우리들끼리 살 테니까.’ ‘레즈비언은 자신의 범주를 견고하고 자연스럽게 구성하는 집단이야, 바이는 그렇지 않겠지만.’ ‘바이 여성은 비록 여성과 연애를 하고 싶어 한다고 해도 남성과 연애하고 싶어서 안달난 존재야, 또한 남성의 음경에 열광하지.’ 물론 스토리 전개 과정에서 강부치 제이미가 흔들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나는 그 찰나에 레즈비언 범주 자체를 뒤흔드는 성찰이 나오길 바랐다. 그래서 영화가 재현하는 바이 혐오가 매우 문제가 많음을 역설하길 기대했다. 하지만 영화는 레즈비언 범주를 매우 견고하고 변할 수 없는 것으로 사유한다. ‘레즈비언은 아무리 노력해도 레즈비언이다. 그리고 여성과 연애한 경험이 있지만 남성과 연애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전직레즈비언이며 이성애를 지향하는 존재다.’ 이것이 이 영화의 실질적 메시지다. 기분 더럽다. 도대체 어디가 재밌지? 아, 그래, 재밌는 장면이 딱 하나 있었다. 부치는 비슷한 스타일이라 다른 사람이 쉽게 구분 못 할 거라는 장면.
나는 커다란 스크린으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퀴어영화 세션에서 퀴어와 LGBT를 혐오하는 영화를 봤다. 정확하게는 게이와 레즈비언은 긍정하고 다른 범주는 혐오하는 영화를 봤다. 도대체 왜?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매우 짧은 장면도 애매했다. 물론 내 기억에 그 장면을 뭐라고 하긴 애매하지만. 아울러 영화의 인종 인식은 좀 당혹스럽다.
그래서 이미 예매한 다른 영화도 그냥 취소했다. 극장에 가서 볼 기분이 안든다. 물론 수요일에 보고 싶은 영화가 하나 있지만 그건 표를 못 구해서 어떻게 될지…
답변(만을 목적으로 한 글은 아니시겠지만 ㅎㅎ) 감사해요.
어쩌면 뵈었을지도 ㅎㅎ 다음에 뵈면 제가 “진냥이에요”라고 인사할께요 ㅎㅎ
빨리 뵐 수 있는 날이 있으면 좋겠네요^^
흐흐흐.
그러게요. 언젠가 뵐 수 있길 바랄게요. 🙂
안녕하세요. 루인 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정말 오랜만이죠? 가끔 블로그 들려서 종종 글 읽고 가고는 했어요. 댓글은 못 달고. ^^
이번에도 이 영화제에 다녀오셨군요. 저는 갈까 말까 망설이다 결국 가지 않았어요. 용기가 안 나서요. 제가 전에 만나던 사람은 이런 영화제에 (혹은 여성영화제에) 함께 가는 걸 두려워했던 사람이에요. 아웃팅 염려때문이죠. 그래서 그런 성향이 저에게도 내재화된 걸까요? 언제부터인지 이런 곳에는 오히려 가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 영화제 때문에 지금 애인이랑 엄청 크게 싸웠어요. ㅎㅎ 저는 이 사람도 전 사람처럼 마찬가지로 이런 곳에 함께 가는 걸 싫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까 지레짐작으로 판단하고는 같이 가자는 말도 안하고 그냥 넘어간 거죠. 그런데 나중에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애인이 “너는 네가 그런 사람이면서도 왜 그걸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그 사람들 안에 자유롭게 속하지 못하느냐”고 하더라고요. 그런 두려움을 갖고 용기도 없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좋은 글을 쓰면서 살 수 있겠느냐고 하더라고요. 저는 좀 멍했어요.
주변의 몇몇 친구들에게는 오픈도 하고 그래서 저는 제가 나름 내 성향에 대해 자유롭게 인식하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오히려 애인은 더 힘든 상황임에도(애인은 굳이 그런 범주에 자기 자신을 넣고 싶어하지는 않지만 이 영화에서 말하는 몹쓸 바이에 속하는 지라 ㅎㅎ) 그런 자기를 받아들이고 당당하게 살고 싶어하거든요….. 저는 자유로운 척했지만 오히려 스스로 저를 더 벽장 속에 가뒀던 거죠.
애인한테 가끔 루인 님 이야기를 했어요. 내가 예전에 가깝게 지내던 블로그 이웃 중에 이런 저런 분이 계신다… 그 사람이 공부하고 사는 방식에는 용기가 정말 많이 필요한 것 같다. 닮고 싶은 면이 많다고. 뭐 그런 이야기들요. 루인 님은 여전히 공부도 열심히 하시고 치열하게 사는군요.
루인 에게는 몇 번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던 적이 있어요. 왠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에 루인 님 블로그 눈팅하던 때도 그랬고. ㅎㅎ 그런데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하기까지 시간이 참 오래 걸렸네요. 어쩌면 시간이 많이 흘렀기 때문에 가능한 건지도 모르겠고. 잘 모르겠어요.
요즘도 길에서 우연히 루인 님을 만나면 알아볼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가 이제부터 이런 영화제에도 가고(그때는 지금 애인과 같이 가겠죠?) 그러다 우연히 뵙게 된다면 아주 예전에 신촌 비빔밥집에서 만났을 때 인사했던 것처럼 알아보고 인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계속 블로그에 좋은 글 써주세요. 힘이 되니까.
정말 오랜만이에요. 반갑고요. 저도 가끔 눈팅하고 가곤 해서 기분도 묘하고 더 반갑기도 해요. 헤헤헤.
길게 적어주신 글을 읽으면서 많이 고맙고 또 감동적이고 그랬어요. 뭐라고 답글을 달면 좋을까 싶었는데, 달아주신 댓글의 고마움과 감동이 제 괜한 답글로 깨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어서랄까요.
제 입장에서 저는 정말 용기도 없고 엄청 소심하다고 믿어요. 정말 겁이 많아서 속으론 벌벌 떨 때도 많거든요. 그래서 용기가 많다고 누군가가 말씀해주실 때면 속으로 ‘그게 아닌데, 겁이 너무 많아서 큰일인데’라고 중얼거려요. 하하. ;ㅅ;
언젠가 또 우연히 뵐 수 있으면 정말 반가울 거같아요. 저는 예전과 별로 변하지 않은 모습이라서 어렵지 않으실 거고요.. 으하하.. (며칠 전, 7년째 같은 모습이란 얘기를 들은 적 있거든요.. ;ㅅ; 흐흐흐)
저도 종종 눈팅하러 갈 테니 꾸준히 글 써주셔요. 비공개님 특유의 분위기가 좋아서 글을 읽다보면 계속 읽게 되어서 좋거든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