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민인권헌장, 단상

지금 HIV/AIDS(에이즈)를 밑절미 삼은 반동성애, 더 정확하게는 게이 남성을 지칭하는 혐오가 만연하고 이를 타겟 삼은 시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시위에 대항하며 레즈비언, 바이,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등 여러 성적 지향과 젠더 정체성의 사람들이 모여 대응집회를 하고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혐오발화를 하거나 미디어에서 재현하는 양상은 반동성애 혹은 게이 남성 혐오가 중심이지만 실제 혐오 대상은 동성애 혹은 게이 남성만이 아니라 바이,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무성애, 인터섹스, 에이즈 감염인, SMer 등 비이성애-트랜스젠더로 분류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이다. 하지만 20년 정도 지난 어느 시점에서, 어느 게이 역사학자나 활동가는 2014년의 한국 상황을 설명하며 게이가 가장 탄압받았고 게이가 가장 열심히 운동했다고 해석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지금 시점에서 이것은 막연한 추측에 불과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 미국의 LGBT/퀴어 운동의 역사가 그렇고, 한국의 LGBT/퀴어 역사가 그렇다. 한국에서 1990년대 초반에 등장한 모임과 운동은 LGBT가 함께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동성애 운동의 역사로 전유된다. 그렇다면 대표적 혐오 발화로 반동성애, 더 정확하게는 게이 남성이 회자되고, 게이 남성 혐오가 가장 두드러질 때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2014년의 한국은 어떻게 기록될까? 게이 남성 중심으로 기록될 수도 있는 일이다.
이것은 이른바 사회적 소수자 운동이 범하기 쉬운 역사해석이기도 할 것이다. 온갖 다양한 집단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지만 가장 대표적 혐오 대상으로 호명된 집단이 가장 두드러지게 인식되는 것 말이다. 그리하여 그 집단이 유일하게 중요한 집단으로 등장하는 것 말이다. 드문 일이 아니라서 문득 이런 망상을 했다.
다른 한편, 현재 서울시민인권헌장(농담처럼 말하자면, ‘반동성애’ 운동을 하는 집단과 함께 박원순 규탄 대회를 열고 싶을 지경이다)에서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이 차별금지사유로 들어가 있는데, 이것을 분리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니까 ‘성적지향’과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으로 구분한 안이 있고 성적지향만 표기한 안은 통과될 가능성이 높고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으로 표기한 안은 통과될 가능성이 낮다고 할 때, 현재 LGBT/퀴어에 속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물론, 며칠 전 ㅅㅇ와 얘기했지만, 현재 시점에선 성적지향은 빠져도 성별정체성은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클 수도 있다. 이유는? 성별정체성이 정확하게 뭔지 몰라서. 혹은 성별정체성이 여성을 지칭하나보다 해서. (정확한 건 아닌데 둘을 병기했다가 성적지향만 남기려고 했던 헌장 혹은 조례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것은 확인이 필요하다.)
이런 고민을 하는 이유는 한국 LGBT/퀴어 운동에서 성별정체성 개념을 말하기 시작한 것은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의 역할이라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차별금지법의 차별사유에 성적지향이 빠졌을 때 많은 사람이 이에 분개하며 모였다. 그때, 용어 정의 항목에서 젠더가 빠졌음을 지적한 매우 적었고 그 중 하나가 지렁이였다. 당시 젠더 정의는 트랜스젠더를 포괄하는 개념이었고 이것이 빠졌다. 그럼에도 이를 언급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끊임없이 성적지향, 더 정확하게는 동성애만 이야기했다. 성적지향이 동성애만을 지칭하지 않는데도 동성애로 대표되고 회자되었고 많은 바이 활동가가 함께 했지만 바이는 완전히 누락되었다. 이후 대응 운동을 하면서, 한국 문서를 외국어로 번역하거나 영어문서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때 ‘sexual orientation & gender identity’로 적혀 있는 항목이 모두 성적지향 혹은 성정체성으로 바뀌는 걸 목격했다. 이것은 ‘성적지향 및 젠더정체성(혹은 성별정체성)’으로 번역해야 하는 부분이다. 통상 미국 맥락에서 gender identity는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등을 포괄하거나 트랜스젠더 이슈를 같이 논할 때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특히 차별사유 같은 것에서). 하지만 이것이 성정체성으로 번역될 때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복잡한 젠더 이슈는 삭제되고 누락된다. 지렁이는 당시 이를 비판하는 글을 긴급행동 게시판에 올렸고 이후 성별정체성이 조금씩 같이 사유되기 시작했다(고 나는 기억하고 또 해석한다). 그리고 이후 SOGI(성적지향, 성별정체성)법정책연구회 등 여러 단체, 모임, 활동가의 노력으로 성별정체성을 같이 논하고 있다.
(매우매우 지렁이 중심의 해석이지만, 나는 별다른 활동을 한 것이 없는 것 같은 지렁이의 활동에서 이것은 지렁이가 성취한 매우 중요한 성과 중 하나라고 믿고 있다.)
아무려나 트랜스젠더는 1990년대 초반 한국의 LGBT/퀴어 운동에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여전히 덜 사유되거나 동성애에 퉁쳐지는 상황이다. 물론, 바이와 바이 이슈는 여전히 거의 무시되고 있지만…
아무려나 서울시민인권헌장을 둘러싸고 몸이 복잡한 나날이다. 확실한 건 진보정치한다고 주장하거나 인권에 관심이 있다고 주장하는 정치인이 가장 나쁘다는 것, 가장 반인권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나날이다. 더 정확하게 노회찬과 박원순은 정말 나쁜 정치인일 뿐만 아니라 매우 위험한 정치인이다. 그러니까 가장 신뢰할 수 없는 정치인이다.
(인권을 만장일치로 처리할 수 있다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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