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남성성 논의를 연결할 때

어제 시우 님 강의, ‘퀴어 페미니즘, 혐오를 말하다’를 들었다. 기본적으로 무척 좋았다. 강의 스킬이 무척 좋아 배울 부분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내용을 잘 조직하였다. 예전에 다른 곳에서도 여유 있게 발표하는 모습을 보며 감탄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강의를 들으며 혐오가 연대를 조직한다는 말을 통해, 혐오가 공동체를 구성하고 공동체의 성원권을 확인하는 작업임을 배웠다. 과거 글을 쓰며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었는데 시우 님 강의를 들으니 이 점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나로선 이것이 가장 큰 성과.
혐오와 관련한 강의를 하며 남성성의 구성을 논했는데 이것 역시 좋았다. 혐오 관련 논문을 읽고 있노라면, 잘 쓴 논문과 뭔가 아쉽거나 애매한 논문을 구분하는 핵심 중 하나는 남성성 범주를 어떻게 사유하느냐에 있다. 그리고 잘 쓴 논문의 대다수는 남성성 범주를 중요하게 분석한다. 혐오의 구성, 혐오를 사유함에 있어 남성성 개념은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에서 남성성 범주 구성을 질문하기도 할 뿐만 아니라 이번 강의에서도 이를 계속 탐문하는 작업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이 지점, 혐오와 남성성을 함께 사유하는 지점은 나에게 또 다른 고민거리기도 하다. 혐오와 관련한 괜찮은 논문은 거의 항상 남성성을 걸고 넘어지고 남성성 범주를 반드시 같이 고민한다. 남성성을 논하지 않으면서 혐오를 논하기가 어려운 것은 어떤 지점에서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저런 논문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고민, 어제 강의를 들으면서도 떠올린 고민은 어쩐지 혐오와 남성성의 연결이 만능 해결책처럼 읽힌다는 점이다. 즉 혐오 논의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남성성 논의를 경유하는 방식이 익숙한 해결책 같달까. 물론 나 역시 조만간에 쓸 혐오 관련 글에서 남성성을 문제 삼을 예정이다. 나라고 달리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남성성을 논하지 않고 혐오, 특히 여성혐오와 LGBT/퀴어 혐오를 논하기는 힘든 지점이 있다. 하지만… 그래, ‘하지만…’이란 어려움(아쉬움이 아니라!)이 남는다.
예를 들면, 이것은 의심에 불과하지만 시우 님이 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가 일단 딴죽부터 걸고 보는 사람이 모인 곳이라고 했으니(후후후) 일단 딴죽부터 걸자면 다음과 같다. 혐오와 남성성의 연결이 어쩌면 트랜스젠더퀴어 혐오, 바이섹슈얼/양성애 혐오 등을 삭제하거나 누락하며 혐오 논의 자체를 단순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란 강한 의심이 들었다. 동성애자 커뮤니티, 특히 여성 전용 커뮤니티에서 발생하는 바이 혐오는 남성성과 무슨 상관인가? 비트랜스 페미니즘이 트랜스젠더나 젠더퀴어 등 트랜스젠더퀴어를 향해 표출하는 혐오는 남성성과 무슨 상관일까? 물론 mtf/트랜스여성을 향한 혐오가 ‘사내 자식이 왜 기집애처럼 굴고 그러느냐’란 의미가 강하다는 점에서 이것은 남성과 남성성 논의에 해당한다. 하지만 젠더퀴어를 향한 혐오는 남성성’들’이라고 해도 여전히 한계가 명백하다. 자칫 젠더퀴어의 다층적 실천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른바 성적소수자 혐오에서 남성성 논의는 게이 남성을 향한 혐오나 가해자를 ‘남성’으로 한정할 때 등 몇 가지 상황으로 제한할 때 의미가 있다(다른 말로 이것은 여전히 중요하고 가치 있는 논의다!). 하지만 가해자가 이른바 ‘남성’이 아니라면? 즉 혐오 논의에서 남성성을 논하는 작업은 그것이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대체로 의도하지 않을 텐데, 트랜스젠더퀴어 혐오, 바이 혐오 등 더 복잡하고 미묘한 혐오를 누락할 뿐만 아니라 자칫 이원젠더 체제를 재구축할 수 있다. 그러니 혐오 논의를 진행할 때 남성성을 같이 논하는 동시에 다른 어떤 작업이 추가로 진행되어야 하지 않을까란 고민을 했다.
(물론 저는 다음 글에서 쉽게 쉽게 쓸 겁니다! ;ㅅ; )
사실 이건 어제 직접 질문할까 하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질문을 못/안 했다. 다른 사람의 질문이 훨씬 좋았으니까.
(끝나고 따로 잠깐 관련 이야기를 했는데 그건 비공개 대화니… 생략)
아무려나 어제 강의는 오랜 만에 만족스러운 자리였다. 시우 님께서 앞으로 더 멋진 연구를 많이 들려주시기를. 🙂
+
주말에 완전변태에서 진행하는 세미나에 갈까 말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크흡 ㅠㅠㅠ

10 thoughts on “혐오와 남성성 논의를 연결할 때

  1. 사실 드리고 싶은 말씀은 더 많은데 ;ㅅ; 쓰고 싶은 말도 더 많은데 ;ㅍ ;
    아아 아직은 못하겠어요 조, 조금만 시간을 더 주시면 , 다시 ;ㅍ ;

    1. 천천히 하셔요!
      살아만 있다면 시간은 넉넉해요. 6개월 뒤도 좋고 1년 뒤도 좋고 10년 뒤도 좋으니까 부담 갖지 말고 천천히 해주셔요! 🙂

    2.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언제까지 살아 있을지 아무도 모르죠 후후후 (?

  2. 혹시 시우님 이메일 다시 알려주실 수 있나요? 발표문 읽을 수 있는 링크라던가 ㅠㅠ

  3. 이것 걸려 넘어졌는데, 비록 더 이상 젠더 문제에 대해 공부하기를 거부 한 사람으로써 질문을 드리는 건 ‘네가 왜 공부 안하고 남한테 시켜’ 라는 반응을 받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일지도 모르겠다 싶지만, …

    http://m.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4291

    뭔가… 뭔가 … 뭔가 아주 불편해서 … 찝을 수는 없지만 … 일단 진화심리학을 잔뜩 인용한다는 것 부터가 불편한건가 싶기도 하지만 ….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의견주실 수 있으신가 해서 … ㅇ<-<

    1. 흠.. 블로깅으로 할까 댓글로 달까 고민하다가.. 일단 댓글로 달면요…

      기사 첫 문장인 “온라인 공간 일부의 소동처럼 여겨지던 여성혐오의 물결이 이제는 현실 세계를 덮치고 있다.”부터 에러라고 느꼈어요. 왜냐면 이 사회가 이원젠더를 강제하고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양식 중 하나가 여성혐오니까요.

      어떤 부분은 꽤나 괜찮은 분석이지만 가끔씩 화자가 비트랜스남성과 동일시하며 글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 무엇보다 진화심리학으로 넘어가면서부턴 특히 심각하더라고요. 여러 황당한 지점 중에서 “진화심리학의 기틀을 다진 연구자로 평가받는 데이비드 버스 교수(텍사스 대학)는 책 <이웃집 살인마>에서 “왜 어떤 남자들은 연인을 학대하는가”라는 독특한 질문을 던진다.”란 구절이 특히 그랬는데요. “왜 소수의 남자만이 연인을 학대하지 않는가?”로 질문을 바꿔야 할 것 같아서요. -_-;;

      기사에서 찾을 수 있는 몇 가지 미덕이 안타깝다 싶었어요…
      (그냥 블로깅할까.. ;;; )

    2. 저야 블로깅해주시면 감사히 읽겠죠 후훟

      이유를 설명할 수 없어도 뭔가 이상하다, 불편하다라고 느끼는 지점이 곱씹었을 때 생산적인 설명이나 배움의 시작점이 되는 것들이 너무 많은데, 과학적으로 혹은 논리적으로 당장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은 모두 배제되고 mute 되는 것 같은 느낌을 자주 받아요

      뭐 여튼 감사합니다… 총총총

    3. 정말 할지 안 할지는 모르겠지만 노력해보겠습니다… ;ㅅ; 흐흐흐

      그쵸? 불편한 지점을 곱씹었을 때 배움이 시작되는 듯해요. 하지만 우리가 모든 불편을 곱씹을 수는 없으니까요. 잊었다가도 어느 순간 떠오르고 되씹을 기회가 오기도 하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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