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력이… 이름과 얼굴을 기억 못 해서 그만…

슬프게도 나는 나를 아는 분을, 그것도 예전에 어떤 형태로건 인사를 나눈 적 있는 상대방을 못 알아 본다면 그건 예의가 아니라고 믿는다. 이것이 슬픈 이유는 내가 사람 얼굴과 이름을 정말로 못 외우기 때문이다.
“비염을 배우다”(https://www.runtoruin.com/3053)란 글의 댓글을 읽으며 배웠다. 비염이 생활 방식과 성격 자체를 좌우하기도 함을. 이 배움을 조금 다른 곳에 연결해보자.
나는 이미 어느 정도의 오프라인에서 친밀감을 형성한 사람이거나 친구가 아닌 이상 내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는 다소 간절한 바람을 품고 있다. 이 바람은 내가 사람 얼굴과 이름을 정말로 못 외운다는 점과 강한 상관성이 있는 것일까? 예를 들면 10년 넘게 친구로 지내온, 당시엔 유일했던 친구를 예기치 않은 곳에서 마주하곤 못 알아본 적이 있다.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마주하면 절친 얼굴도 긴가민가하는 수준의 인지력은 관계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관계를 확장함에 있어 상당한 영향을 끼치겠지. 어느 정도 당연히.
그렇다면 내가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간절하게 품는 건 다른 여러 이유와 함께 이런 이유도 있는 것일까?
가끔 어떤 사람이 매우 반갑게 인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럼 덩달아 나도 반갑게 인사한다(항상 ‘덩달아’는 아닙니다). 이 정도면 나름 임기응변을 발휘한 것이다. 그리고 상황이 여기서 끝나면 다행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상대방이 내 근황을 묻고 이런 저런 인사를 길게하기 시작하면 나는 곤혹스러움을 느낀다. 그런 말걸기가 곤혹스러운 게 아니라 내가 상대방이 누군지 도저히 기억할 수 없는 상황인데, 상대방에게 누구냐고 질문할 타이밍은 이미 한참 전에 지나갔는데, 나도 상대에게 뭔가 질문을 해야 하는 분위기기 때문이다. 우오어. 나는 이것이 정말로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믿는다. 그래서 이런 곤혹스러움을 피하고자 하는 간절함이, 내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만들고, 강의를 기피하도록 하는 걸까 싶기도 하다.
그럼 새로운 친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란 중요한 문제가 발생한다. 기존의 친구만으로도 충분히 좋다고 고민하지만 여전히 다른 많은 좋은 사람이 있으니까. 친구하고 싶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도 몇 조우했고. 반복적으로 여러 번 만나지 않는 이상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지 못 하는 나는 이런 고민과 마주할 때마다 몸이 복잡해짐을 느낀다.
(고백하자면 같은 사무실에 일하는 분의 이름도 몇 달만에 간신히 외우곤 한다. 심지어 그 이름 자체가 유명할 때도 그렇다. 하지만 이 글(https://www.runtoruin.com/2995)을 이미 읽으신 분이라면 지금 글 따위 전혀 안 놀랍겠지. 뉴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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